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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의감성엽서] 51년 만에 돌아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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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30 00:30:20 수정 : 2025-04-30 00:3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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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51년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간 책을 반납하러 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그것도 이미 장서 목록에서 사라진 책을? 아마 대부분은 받았다가 폐기하거나 그냥 가지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책이 1899년에 출간된 ‘오브리 비어즐리의 초기 작품’이라면? 아마 너무 놀라서 연체료는 물론 사유도 묻지 않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할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2024년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이 기사를 접한 나도 깜짝 놀랐으니까. 짐작건대 1973년 누군가가 도서관에서 이 책을 대출해갔다가 비어즐리가 너무 좋아 반납하지 않았거나 혹은 불의의 사고를 당해 반납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다 51년이 지난 후 눈 밝은 다른 누군가가 책 정리(유품일 수도 있는)를 하다가 그 책의 중요성을 깨닫고, 고심 끝에 도서관에 돌려주어야겠다고 결심, 51년간 행방불명되었던, 장서 목록에서도 삭제된 이 책이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온 것이다. 도서관 측에선 얼마나 고맙고, 기적 같았겠는가.

그만큼 이 책의 저자 오브리 비어즐리(1872∼1898)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가 낳은 뛰어난 예술가로 ‘내가 그로테스크하지 않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일념으로 흰색 배경에 검은 잉크를 사용, 흑백의 강렬한 대비로 에로틱하고 퇴폐적인 기괴한 일본풍의 삽화를 그린 화가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삽화로 팜므파탈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 영어판 삽화와 강렬한 에로티시즘의 결정판이라 불리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라시스트라타’의 삽화가 있다.

이 책 역시 그의 전기와 함께 그의 걸작 150점이 담겨 있는 소중한 책이다. 단순하고 평면적인 기법으로 그 어떤 색깔의 그림보다도 장식적이고 화려한 느낌을 자아내는 비어즐리의 작품 150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 책이 다시 공공도서관에 배치된다는 것은 비어즐리 애호가뿐 아니라 현대 그래픽 아트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큰 선물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비록 그는 이 책이 출판되기 1년 전인 1898년, 25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결핵으로 요절했지만. 죽기 전 그가 작업한 1000점이 넘는 작품만으로도 그는 아르누보, 유미주의, 에로티시즘, 포스터 양식은 물론 오늘날의 그래픽 노블 장르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친, 순간을 불꽃처럼 살다간 탐미적 댄디였다.

25세 꽃다운 나이에 죽은 세기말 천재 작가의 책. 그런 소중한 책이 매우 양호한 상태로 51년 만에 다시 공공도서관으로 돌아왔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분명 그는 비어즐리를 그 책만큼 사랑한 사람일 것이다.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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