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강경 일변도 유지 중국 권력서열 2위인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16일부터 21일까지 영국, 그리스를 방문한다. 이번 방문은 국가정상 자격도 아니고 경제·비즈니스 협력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리 총리는 영국 방문 조건으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의 면담을 내걸어 국제외교가의 관심이 쏠렸다. 이에 대해 케리 브라운 시드니대 중국학센터 소장은 “중국이 힘을 바탕으로 외교관례도 새롭게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의 공세적 색채가 갈수록 짙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사태, 이라크 내전 사태 등 각종 주요 현안에서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영유권 분쟁 등 해상 패권을 놓고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면서 전략·경제적 유대 필요성이 큰 국가들과 적극 다가가는 치밀하고 정교한 모습도 두드러진다고 진단한다. 시진핑(習近平)체제의 외교정책 기조가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의 힘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에서 탈피해 ‘유소작위(有所作爲: 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뤄낸다)’와 ‘돌돌핍인(기세가 등등해져 남에게 압력을 가한다)’으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시 주석체제의 공격적 외교 성향은 지난달 초부터 이어진 남중국해 실력 행사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중국은 파라셀제도(베트남명 호앙사·중국명 시사군도) 인근 해역 석유시추작업에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필리핀과 분쟁 중인 스프래틀리제도(중국명 난사군도) 융수자오(永暑礁·영어명 피어리 크로스 암초)에는 활주로와 항만시설을 갖춘 인공섬 건설까지 추진 중이다. 군사기지로 활용될 이 인공섬은 지난해 11월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에 이어 향후 남중국해에도 CADIZ를 확대 선포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해석된다. 핵심이익에 관한 중국의 집착이 더욱 노골화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이라크 사태 대응도 주목할 만하다. 중국 외교부는 13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이라크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면서 “이라크 정부의 국가 안정 노력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이미 ‘제2의 르완다 사태’가 우려되는 아프리카 남수단의 정부와 반군 간 내전을 종식하기 위한 휴전협정 과정에도 적극 개입하고 있다. 타국 내정 불간섭 원칙의 변화가 본격화하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해석이 따른다. 중국은 이라크, 남수단 석유이권 사업에 개입하고 있어 자국민 보호를 들어 개입할 명분이 충분한 상황이다.

시 주석은 지난해 10월 주변외교공작(업무) 좌담회를 주재한 자리에서 주변국 외교를 강조했다. 당시 의리와 이익도 중시한다는 의리관(義利觀)과 함께 ‘친하게 지내며 성의를 다하고 포용하며 더불어 지낸다’는 의미로 친(親)·성(誠)·혜(惠)·용(容)을 제시했다. 최근 이 같은 경향은 나라별로 차별화한 맞춤형 정책으로 표출되고 있다. 현재 중국과 국경을 맞대거나 인접한 나라는 20개국 정도다. 이 가운데 중국은 영유권 갈등 중인 일본, 필리핀, 베트남에는 강경책을 구사하지만 여타 국가들과는 우호 증진에 주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한국이다. 7월 초로 알려진 시 주석 방한은 혈맹으로 간주하던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한다는 점에서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파격적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3차 핵실험을 강행했을 뿐 아니라 이후 국제 사회에서 책임 있는 대국인 중국의 체면을 구긴데 대한 보복성 조치라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관측이다. 반면 한국과는 경제적 관계와 국가전략적 관점에서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지역 주요국 중시 전략
중국은 독일,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의 관계 강화에 공들이고 있다. 이들 국가는 각 대륙이나 경제공동체 권역에서 영향력이 큰 나라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중국은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역할 확대에 매진하고 있다. 시 주석은 7월 중순 브라질 월드컵 축구 결승전을 참관한 뒤 곧바로 제6차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의에서는 브릭스개발은행 설립이 구체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은 브릭스개발은행을 통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중심의 국제금융 체제 변화도 꾀하고 있다. 초기 자본금 500억달러인 브릭스개발은행 본부는 국제금융 중심지인 중국 상하이에 설립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앞으로 더욱 정교하고도 강력해진 중국 외교를 체험할 날이 많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베이징=신동주 특파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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