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자는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대상작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원작보다 충격의 정도를 훨씬 약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원작의 성적 표현과 수위는 강했다는 것인데, 영진위에서 이 시나리오에 대상을 준 것은 사회비판적 함의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초보적인 시나리오의 문제점은, 극적 상황과 인물의 심리를 대사로만 설명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영상예술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클럽 버터플라이'의 상황전개와 대사는, 뛰어난 시나리오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충격의 강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짜임새 있는 내러티브와 그것을 표출하는 연출의 힘이다. 특히 스와핑 같은 자극적 소재를 잘못 다루면 말초적 흥미에 치우치게 된다.
부부간의 완벽한 합의하에 성적 교환이 이루어지는 것은 법으로 막을 수 없다. 그것은 사회 일반의 도덕적 문제일 뿐이다. 스와핑은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해주고 있는 일부일처제의 성적 계약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클럽 버터플라이'에서 우리는 결혼제도에 대한 고통스러운 질문이나, 가족의 해체에 대한 화두를 발견할 수 없다.
감독은 모든 인간에 내재하는 일탈에 대한 갈망과 성적 혼란을 '혼돈' 그 자체로 표현하려 했다고 한다. 그런 연출의도가 영화의 혼돈스런 표현에 일조한 것일까.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의 머리 속에 남아있는 것은 빈번하게 등장하는 섹스신과 전라를 드러내며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뿐이다. 그것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야외에서, 혹은 욕탕에서, 혹은 페인트를 엎지르며 창고 속에서 격렬하게 치르는 섹스는 하나같이 애정 없는 동물적 관계일 뿐이다.
가장 희화화된 것은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집단 스와핑이다. 중산층 부부의 황폐화된 내면을 드러냈던 리안 감독의 수작 '아이스 스톰'이 그랬던 것처럼, 파티에 참석한 부부들이 남녀를 구분하여 각각 번호를 뽑아 파트너를 정한 뒤 방으로 사라지는 이 신은 물 위에 뜬 거품처럼 덧없기만 하다. 카메오로 출연한 '삿뽀로 여인숙'의 작가 하성란이나 신승수 감독의 모습도 초라하게 보인다.
'클럽 버터플라이'가 성적 혼돈의 소용돌이에 놓여 있는 부부의 내면탐구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물에 빠진 사람이 발버둥치듯이 높은 수준의 기교와 형식을 담아내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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