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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팔현 칼럼]‘친한파’미즈노 교수, 日 극우잡지에 수차례 한국 비하 글 기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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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07-28 18:14:00 수정 : 2005-07-28 18: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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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그는 “96년에는 월드컵 축구 일한공동개최가 결정되어, 이러한 분위기를 고양시키기 위한 필요성으로부터 일한공동으로 ‘일한연애드라마’제작이 구상된다. ‘프렌드’(MBC=한국문화방송)TBS,2002년) ‘소나기’‘Star''s Echo’(MBC 후지,04년) 등이지만, 거기서 묘사되고 있는 것도 예외 없이 ‘한국 남자와 일본 여자’와의 연애. 명확히 40년의 역사를 가진 ‘일한연애드라마’의 흐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다만 일본에서도 공개되었기에 사정상, 역사적인 문제와 일본인에 대한 매도용어, ‘순종적이고 음란한 일본여자’와 같은 요소, 일상생활에서의 키모노착용과 같은 시대착오는 전부 제거되어 있었다. ”라며,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드라마를 만들 때에만 일본여자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은 바뀌었노라(물론 일본 측의 입김?)고 분석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 그리는 일본 남자는 -“야비하고 잔인하며 비열”항상 악역의 일본인 남자-로 그려진다고 주장한다. 즉, “그런데, 한국 영화․드라마에 그려진 ‘일본 여자’는 현실과 괴리되어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긍정적이다. 반면, 한국에 있어서의 ‘일본 남자’의 이미지는 극히 부정적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직접적으로 체험했던 세대를 제외하면, 한국인이 가진 ‘일본 남자 이미지’라고 하는 것은 ‘왜구’ ‘문록(임진왜란) 경장의 역(정유재란)’‘조선인을 고문에 거는 헌병’ 등이다. 더욱이 일찍이 일본남자가 한국에서 행했던 ‘계집질(기생관광)’도 이미지 악화에 한 역할을 사고 있다.

이러한 ‘일본남자’의 부정적 이미지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한국의 영화 드라마에서 ‘일본남자’가 완성하는 역할이란 ‘야비하고 잔인하며 비열한 증오 받는 역’이다.”라며, 대표작으로 ‘장군의 아들’(90년)과 ‘장군의 아들2’(91년)를 들고 있다.

때문에 미즈노씨는 “한국에서 영화, 드라마에서 일상적으로 묘사되는 일본, 일본인 왜곡 프로를 보지 못하고 이러한 부분이 제거되거나 일본, 일본인 비판이 없는 것만 보고서 한류에 빠져듦은 어리석다.”고 일본인들에게 자랑스러운 듯 한국사정을 속속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아니, 절대로 일본에서 공개될 수 없는 일본, 일본인이 심하게 왜곡된 한국 영화나 드라마들 보고나서야 진짜로 한류 팬이 될 수 있다고 핏대 올리고 있다.

따라서 그의 결론은 “일본인 취향의 수출 작품만을 보고서 ‘한류’에 빠져들어, 한국영화 드라마 팬이 되어버린 분들이 많겠지만, 진짜로 한국영화․드라마 팬을 자칭한다면 ‘일본에서 공개 되지 않은(할 수 없는)’영화․드라마를 먼저 봐두라고 권하고 싶다.”라고 글을 맺고 있다.

일본을 지극히 사랑하는 우익인물 미즈노씨의 울분에 찬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왜곡 비판에 대해 일본우익들은 손뼉을 치며 한류를 하루라도 빨리 종식시키기 위해 합동작전을 꾀하는 것 같다. 유치한 발상과 일본인들이 한국인에 대하여 느끼는 ‘우월과 콤플렉스’가 믹스된 일본우익 인사들의 후안무치한 쇼를 보는 것 같다.

과연 미즈노씨가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대하여 그러한 비판 자격이 있다고 보는가? 오늘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식민지 시대의 미화와 역사교과서 왜곡도 모자라 독도조차 일본 땅이라 주장하는 일본이 과연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비판할 수 있는가 되묻고 싶다. 미즈노씨는 그러한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비난에 앞서 먼저 일본이 일제 시대에 한국, 한국민에 가한 징용으로부터 종군위안부 강제 차출과 관동 대지진 때의 6300여명에 이르는 대학살에 대하여 반성부터 해야 할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 없다고 미미한 사안을 가지고 그 원인을 찾지 않고 생떼를 부림은 마치 어린 아기가 질투와 시샘으로 자꾸 응석부리며 어리광부리는 것과 같다.

한일간에 모처럼 훈풍이 부는 문화면에서의 한류조차 거부하라며 일본인을 향해 선동 질하는 미즈노씨는 후안무치하며 우익인사들과 똑같은 사상을 가진 그렇고 그런 보통의 일본인에 다름 아니다. 일본인들이 과거에 한국민들에게 행한 악행은 묻어두고 억지주장만 일삼는 미즈노씨는 먼저 자신의 조국, 일본이 행한 근현대사나 제대로 배우고 대한민국을 비판할 지어다!

④‘쇼쿤(諸君-SHOKUN)’2004년 8월 177쪽~184쪽
제목:특집 안에서도 밖에서도 ‘반일’의 회오리바람.엣, ‘욘사마’마저도 반일!? 코이즈미수상이 ‘후유소나(겨울연가)’통(通)임을 거드름피우며 요이쇼(얼씨구!)했다. (그러나)욘사마는 타케시마(독도)문제 때문에 매우 화가나 날뛰고 있어요.

“한국 드라마 ‘일본혐오’사정”
상기 ‘쇼쿤’이라는 잡지는 일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익잡지 중의 우익 잡지이다. 한국 때리기와 비난에 있어 최선봉의 용장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출판사에 예의 노히라(미즈노)씨가 ‘SAPIO’에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비판했듯이 이곳에서도 한국의 영화 드라마를 비난하면서 한류스타 배용준마저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당연하고도 당연한 주장을 두고 비난하면서 반일파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가히 그가 일본 우익인사에 진배없는 인물이며 지한파(知韓派)이자, 반한파(反韓派)일 가능성도 엿보이는 근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음이다.

미즈노씨가 일본 우익잡지에 한국 드라마를 열심히 비난하고 있을 때 한국의 국영방송은 물론 SBS, MBC마저 그를 무슨 대단한 친한파라도 되는 듯 경쟁적으로 그를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를 향해 아까운 전파를 타게 했으니, 이 아니 얼빠진 일이더냐?

이 기고문에서 그는 김진명 저술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영화화한 것 마저 남북이 공동으로 개발한 핵병기로 일본을 향해 발사한다고 극히 불쾌해하고 분개해 한다. 물론 역사왜곡으로 배운 보통의 일본인의 지식으로는 매우 불쾌할 것이다. 그러나 일제 때의 일본인들의 악독한 행위를 알지 못하고 먼저 비판하지 못한다면 미즈노씨의 분노는 그저 그렇고 그런 양심 없는 학자의 넋두리에 지나지 않음이다.

우선 도입부부터 보자! “‘배용준씨는 일본의 여성들 사이에서 [욘사마]라고 불리며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더욱 최근에는 일본의 톱스타보다도 더 인기가 높다.”

지난 6월3일 밤에 도쿄에서 행해진 국제교류회의 석상에서의 고이즈미 수상의 발언이다, 베트남의 환 반 카이 수상,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전 수상 등을 앞에 두고 고이즈미 수상은 “겨울연가”의 아시아적 일체감과 친근감, 매력을 조화와 공감을 기초로 한 코뮤니티의 형성에 활용하고 싶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아마도 아시아의 지도자들 앞에서 ‘겨울연가’통임을 자랑스레 보여서, 친 아시아적인 자세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행해진 발언일 것이다. 확실히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하는 한국 드라마와 배용준은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조화와 공감을 기초로 한 코뮤니티의 형성’과 다소간의 공헌을 하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유행하는 한국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의 극히 일부이고, NHK가 일본인의 기호에 맞는 것을 엄선해서 방영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실제로는 한국에서는 일본인의 기호에 맞지 않는 드라마도 방영되고 있고, 배용준도 ‘친일가(친일파)’이지 않다. 본고에서는 일본에서는 절대방영 되는 일 없는 ‘일본인의 기호에 맞지 않는 드라마’와 배용준의 ‘속내’를 소개, 한국 드라마 붐의 허실을 조망해보려고 생각한다.

천황을 저격하는 역사드라마

현재 일본에서는 한국 드라마에 관한 서적이 대량으로 발생되고 있지만, 그 대부분이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에 관한 것으로 한국의 드라마 사(史)를 취급한 것은 극히 소수이다. 그 드라마 사를 취급한 서적이라도 거의 대부분 건드리지 않은 드라마가 있다.

그는 겨울연가보다 일본인 야쿠자 두목을 때려눕히는 ‘야인시대’가 훨씬 한국인에게 인기 있었음에 불쾌해 한다. 그가 ‘’후유소나‘보다 인기의 ‘야인시대’라는 부제목으로 주장한 글이다. 그에 의하면 “한편, 맨손대결에서 일본인을 때려눕히는 드라마도 건재 한다. 2002년 7월부터 2003년 9월까지 SBS는 ‘야인시대’라고 하는 대하드라마를 방영했다. 출연자는 5백4인, 엑스트라도 포함하면 4만명이라는 대작이었다.

내용은 ‘장군의 아들’과 같이 식민지 하에 있어서의 김두한의 ‘활약’을 그린 것으로, 볼만한 곳도 김두한과 마루오까 경부(警部)와 하야시 오야붕과의 한판승부라고 하는 ‘일본과 한국의 대결’이었다. ‘장군의 아들''과의 차이는 식민지 해방 이후의 김두한까지를 묘사한 점이지만, 전체적으로 일본과 식민지시대를 묘사한 부분의 시청률이 높았다. 식민지시대를 묘사한 제1부의 평균 시청률은 무려 40.00%, 식민지 해방 이후를 그린 제2부는 25.0%(닐센 미디어 조사). 그리고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장면은 역시 김두한과 하야시의 대결로 무려 51.5%를 기록했다.

이 장면에서 5명의 부하를 데리고 온 김두한은 40인이나 있는 하야시의 조직에 대결을 자청, 놀랍게도 이겨 버리고 만다.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어쨌든 (한국)시청자는 일본인을 때려눕히는 김두한에 갈채를 보냈던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김두한을 연출한 안재모는 2002년도 SBS연기대상이라는 10대 스타상을 수상. 드라마의 프로듀서도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 때의 일본은 월드컵배의 공동개최로 친한 무드 일색. 월드컵배 준결승의 한국대 독일전에서는 자발적으로 한국을 응원하는 일본인이 있다는 현상마저 일었다. 설마 한국인이 일본인을 때려눕히는 드라마에 박수를 보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고 있을 때였다. 실은 일본에서는 거의 대부분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만, 일본인에 대한 매도용어도 보통으로 쓰여 진 이 ‘야인시대’의 시청률은 같은 시기 방영된 ‘겨울연가’보다도 훨씬 높았다. 한국 방영 시 ‘겨울연가’의 최고 시청률은 27.6%, 최종회의 시청률도 25.4%였다는 일을 고려하면 인기의 차는 확실히 드러난다.

일한공동개최로 행해진 W배의 직후에 방영 된 반일색이 강한 드라마에 한국인이 갈채를 보냈다......이 일은 일본인의 대한감정과 한국인의 대일감정의 엇갈림의 크기를 상징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182쪽)

미즈노씨가 화난 이유는 아마도 일본인들이 좋아하고 열광하는 겨울연가(시청률 최고 27.6%)보다 야인시대 장면 중 김두한과 일본인 하야시와의 대결 시 보인 최고 시청률 51.5%에 경악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정도로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을 때려눕히고 승리해야만 좋아하면서 박수친다고, 모든 드라마, 영화가 그렇다며 그는 화를 잔뜩 내고 있음이다.

특히 한류스타 배용준마저 “독도망언에는 화가 난다(2004년 1월 19일 스포츠투데이 기자회견)”며, 미즈노씨는 화를 내고 있다. 먼저 그의 글을 인용해보자.
“그런데, 여기서 배용준의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본고의 서두에서 ‘배용준은 친일가(핀일파)이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일본에서 알려지고 있는 배용준의 모습은 드라마 속에서 연출된 것으로, 드라마에서는 실제의 배용준의 속내가 말해지지 않고 있다.’라고 하는 의미이다.

사실, 배용준은 자기 자신의 대일감정에 대하여 언급을 피하던가, 극히 신중한 발언으로 일관해 왔다. 예를 들면, 일본의 월간지 ‘현대’(2004년 7월호)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한국인의 반일감정에 관한 질문에 “‘우리들 한국인이, 일본으로부터 받은 과거의 식민지 지배를, ‘그것은 모두가 옛일이다.’라고 결론내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상처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이고, 더욱이 현재보다 중요한 것은 미래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반일감정과는 별도로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은 배우자라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을 빙빙 돌려서 답하고 있다. 이 ‘일본은 과거에 한국을 식민지화한 용서할 수 없는 국가이지만, 그래도 배울 점은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은, 배용준의 세대에 공통된 일반적인 대일감정이다.”

또한 ‘Newsweek''(일본판, 2004년 4월21일호)와의 인터뷰에서는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질문)아시아에서 대단한 인기자가 된 당신은, 아시아제국의 ‘관계개선대사(關係改善大使)’와 같은 존재이다.
-(배용준)그 점에서는 매우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싸움이나 오해는 서로를 잘 몰라서 일어난다. 서로의 언어와 문화에 흥미를 가지도록 하면, 알력도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인이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인도 일본을 알도록 하면 좋다.

그러나 (배용준씨는) 일한간의 알력이라 함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배용준이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일본인의 기호에 맞지 않는 드라마가 일본에서 방영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결국 일본에 대한 ‘(그의) 속내’가 일본인의 기호에 합치하지 않기 때문이다.”(183쪽)라고 결론 내리며, 일본인들은 배용준씨의 속내(반일감정?)에 속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음이다.

결국, 일본에서 알려지고 있는 배용준의 모습은 드라마 속에서 연출된 것으로 그 곳에서는 실제 배용준의 속내가 말해지지 않고 있다.”라고 주장하며, 일부 호도하고 있음이다. 배용준이 “나도 한국인으로서 독도망언에는 화가 난다.”고 말함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미즈노씨는 일본역사부터 제대로 배우고 독도문제 또한 학자적 양심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봐야할 것이다. 그가 독도를 일본영토라 주장하는 고이즈미 수상이나 일본우익인사들의 발언에 동조함은 여러 기사에서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안이다.

또한 미즈노씨는 배용준씨가 독도문제에 있어, 일본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불평도 늘어놓고 있다. 즉, 그의 글을 다시 인용해보면, “올해 1월에 배용준의 대일감정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은 한국정부가 일한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독도(타케시마) 기념우표를 발행한다고 한데서 시작한다. 일본정부는 그것에 반발, 한국정부에 우표의 발행 중지를 요구했다. 1월9일에는 고이즈미 수상이 ‘타케시마는 일본의 영토이다’라고 발언, 이것을 ‘망언(망령된 말)’이러고 보는 한국 국내에서는 격렬한 반발이 일어났다. 이번에 일어난 반발의 특징은 반일데모 등 종래의 항의행동에 더하여 인터넷상의 반일운동이 눈에 띄었다.

배용준의 일본공식 사이트의 게시판에도 한국인에 의한 매도하는 쌍스런 말이 올라와, 사이트가 일시 폐쇄되는 사퇴가 일어났다. 이것은 배용준을 대상으로 한 항의가 아니라, 사이트를 이용하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배용준이 튀기는 물을 뒤집어 쓴 꼴이 되었다. (183쪽)

한편, 배용준 자신은 1월19일 ‘스포츠투데이’라고 하는 한국의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도 한국인으로서 독도망언에는 화가 난다.’ ‘그러나 홈페이지의(일본인)회원들은 망언과는 관계없다. 오히려 한국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모이는 작은 공간을 지키고 싶다.’라고 말하고 있다.”라며 상당히 불편해 하고 있다. 그도 학자적 양심보다는 그렇고 그런 틀림없는 한 일본인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음이다.

미즈노씨는 “겨울연가=우호는 (일본인들의) 짝사랑”이라며, “여기서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배용준이 고이즈미 수상의 타케시마(독도)관련 발언을 망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배용준도 한국의 일반적인 애국자로서 ‘독도는 한국의 영토’ ‘고이즈미수상의 발언은 망언이다’라고 보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것은 한국인, 특히 한국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으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라고 보인다. 만일 고이즈미 수상의 발언에 이해를 표시하는 사람이라면 한국 국내에서 ‘매국노’ ‘친일파(원래는 일본 식민지 지배에 협력한 조선인을 가리키는 말로써 매국노와 같은 의미)라고 하는 비판이나 매도를 당해 연예활동 중단으로까지 내몰려 버렸을 것이다.

전술한대로 고이즈미수상은 배용준을 ‘조화(調和)와 공감을 기초로 한 코뮤니티의 형성’에 기여했다고 보고 있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수상에 한해서 말한다면, 그런 물러빠진 달콤한 상념은 빨리 버리는 편이 낫다. 고이즈미 수상이 배용준과 가까이 지내고 싶다면, 우선 ‘타케시마(독도)는 한국의 영토이다’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더욱이 배용준의 입장도 괴롭다. 혹시 한국인 시청자의 감정에 너무 배려한 나머지 ‘고이즈미 수상의 발언은 잘못된 역사인식에 기초한 망언입니다’ 등이라고 ‘속내’를 공언하면 이번에는 일본 내에서 반발을 자초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것은 일본에서의 연예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배용준 자신은 ‘속내’를 공공연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연예인에게 ‘조화와 공감을 기초로 한 코뮤니티의 형성’을 바라는 것은 다소 기대과잉이란 감이 든다.

일한 양국의 문화교류라고 하는 시점으로부터 볼 때, 한국의 영화․드라마가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은 나쁜현상은 아니다. 일본의 중년여성이 배용준과 ‘겨울연가’에 이루지 못한 꿈을 기대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을 확대해석해서 ‘일한우호’와 ‘국제코뮤니티의 형성’까지 기대한다는 것은 일본인의 짝사랑이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도저히 일본에서 방영될 수 없는 드라마와 영화가 존재하고, 한국인이 그것에 갈채를 보내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184쪽) 라고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그야말로 자가당착도 유분수처럼 일본인을 향해 배용준과 한국인을 믿지 말라고 일갈하고 있었다.

이어서 그는 “배용준의 ‘속내’가 그렇듯이 한국인에 있어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영토문제는 증오와 원념(怨念), 반감의 대상으로 일본과 타협할 여지 등은 없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로부터 쭉 눈을 돌린 채 일본인의 기호에 맞는 드라마에 도취해서 ‘일한우호’를 얘기하고 있는 것은 자기만족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한국영화․드라마, 매우 좋아함’이라는 수준의 문제라면 , 그래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이 한국영화와 드라마의 전부이지는 않다.

일본에서 공개할 수 없는, 그리고 일본인기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영화, 드라마야말로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속내가 잘 표현되어 있다. 배용준의, 아니 한국인의 속내를 잘 알고 싶다면, 그러한 영화․드라마는 반드시 봐 둘 필요가 있다.”(184쪽) 라고 자못 심각한 마음으로 일본인들에게 훈수를 두고 있다.

⑤‘현대코리아’ 2004년 12월호/2005년 1․2월호
제목: 한국 미디어워칭(39)
-김충선(沙也可)에 관한 논쟁(상, 하)-
1961년에 설립된 극우성향의 ‘현대코리아’에 두 차례에 걸쳐 임진왜란 때 조선에 침략군으로 온 ‘사야카’가 조선에 귀화했다는 사건에 대하여 노히라(미즈노)씨가 찬․반 양론을 소개하면서 결론을 내리고 있는 기고문이다. 여기서 잠시 ‘현대코리아’에 대하여 알아보자! ‘현대코리아’의 연구소장은 사토(佐藤勝巳)씨로 1958년부터 64년까지 재일동포들을 지상낙원이라는 북한으로 보내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의 저서를 보아도 ‘북조선‘한’의 핵전략‘, ‘북조선의 붕괴와 일본’, ‘북한정세를 읽는다’등 북한 비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혐한론자 중의 한사람이다.

상기 잡지에 미즈노씨의 기고는 한․일 양국민간의 교류가 학술적 정설 없이 행해지므로 이를 시정한 다음에 진정한 교류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일관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네 편의 글과는 달리 학술적인 냄새를 풍기고는 있으나 예의 한국을 바라보는 기본 시각이 고정된 탓으로 학술적 근거를 입에 달고 주장하나, 그 속내는 “3천여 명이나 되는 부하를 이끌고 왔던 일본 장수가 조선에 귀화했다.”는 사실 부정에 무게를 둔듯하다. 이는 한국에 우월성을 갖고 있는 일본인 입장에서는 기분 상하는 일이요, 절대 역사적 사실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인 것 같다.

때문에 상편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사야카=김충선이 아니라는 역사작가 아라야마 토오루(荒山 徹)씨의 주장을 주로 인용하면서 싣고 후반부에 김충선=사야카 지지 글을 싣고 있다. 이는 일본 우익작가가 “수상스러운 인물이 큰 얼굴(과대포장)을 하고 활보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사야카”라고 하면서, 일본과 한국 사료(史料) 어디에도 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때문에 “어떤 인물인지도 잘 모르는 한 일본인(사야카)이 조국을 배반한 소인배가 틀림없거늘, 너무 큰 인물인 것처럼 하면서 알려진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주장인 것이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한일우호의 상징으로 보려는 일부 역사학자의 책임이며, ‘조선왕조실록’선조30년 11월 기유조의 동음이자의 ‘사야카(沙也加)’라는 인물명이 보일 뿐이나, 그를 사야카(沙也可)라 단정 지을 수 없다.”고 강변한다. 즉 사야카의 마지막자인 ‘가(可)’와 ‘가(加)’는 다른 한자이기에 같은 인물이 될 수없다는 무식한 작가의 억지 주장이다. 고대의 구리거울 명문 같은 금석문에서도 ‘구리 동(銅)’과 같은 자(字)를 청동에 새기기 힘들다보니, 쇠금(金) 변을 생략하고 ‘같을 동(同)’자로 새긴다던가, ‘상서로울 상(祥)’자조차도 ‘양 양(羊)’으로 대신 썼다.

금석문에 번거로운 자를 생략하여 새김이 기본이거늘, 거꾸로 칠지도(七支刀)에 관한 연호 ‘泰․’에 대해서는 안 보이는 뒷부분마저 ‘화할 화(和)’자라 주장하면서 ‘태화(泰和)’라 억지 주장하는 일본 학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중국 동진(東晋)의 연호 ‘태화(太和)’에 꿰어 맞춰 ‘일본서기’기록대로 ‘백제왕이 왜왕에게 칠지도를 바쳤다.’는 ‘헌상설(獻上說)’로 뒤바꾸기 위한 작은 꾀에 지나지 않는다. 쇠붙이에 글을 새겨 넣는 어려운 일에 어찌 간단한 4획의 ‘클 태(太)’자를 새겨 넣지 않고 복잡한 10획의 ‘클 태(泰)’자로 새겨 넣었다고 일본 학자들은 반대로 주장하고 있을까?

그리고 김충선의 일본 이름인 사야카의 마지막 자인 ‘가(可)’와 ‘가(加)’는 우리말로도 모두 ‘가’로 발음되고 일본어에서도 모두 ‘카’로 발음되기에, 같은 인물로 봐도 무방하다. 이는 선조실록에 기록 할 때 ‘가(可)’를 ‘가(加)’로 오기했다고 보는 것이 여러 상황으로 볼 때 옳다. 때문에 우익작가로 판단되는 아라야마씨가 ‘가(可)’와 ‘가(加)’의 한자(漢字) 표기가 달라 김충선이 사야카일리 없다는 주장은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일본서기’에도 백제 ‘구수왕’을 ‘귀수왕(貴須王)’이라 다르게 표기했어도 어느 학자 하나 이를 다른 인물로 보지 않는다. 하물며 ‘사야카((沙也可)는 절대로 사야카(沙也加)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은 가히 독보적이다 못해 일본 우익작가의 콤플렉스만 보여준 꼴이다.

아라야마씨의 주장에 대하여 미즈노씨는 후반부에 사야카=김충선 지지파의 글을 싣고 있다. 나름대로 사야카=김충선 지지내지는 반대파의 글을 올려 비교하면서 객관성을 갖추려 노력한 것 같다.

하편에서는 아라야마씨를 비롯한 사야카=김충선 부정파(否定派)의 논거와 지지파의 논거를 구체적으로 들고 있다. 특히 부정파 중의 한 사람인 야마미치(山道襄一)씨의 ‘모하당문집’의 자료가치에 대한 비판은 우익적 시각을 잘 나태내고 있다. 즉, 인용해보면, “이것을 요약하면 ‘모하당문집’이라는 것은 아군(왜군) 중의 비천한 잡졸이 포로가 되어 목숨을 구걸했던가, 아니면 왜구(원문은 화구<和寇>로 표현)의 무리와 선인(조선인)과의 혼혈아인 가짜 일본인이던가, 누군가가 자가(自家-가문) 옹호를 위해 이와 같은 기록을 가짜로 꾸몄던 것, 혹은 조선남부 유생 등이 민심고취의 필요성 때문에 조선찬양을 위해 (일부러) 제작한 것일까.

둘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라고 하여 사야카의 조선귀화 자체를 부정하거나 한․일 양국의 혼혈인, 또는 왜군의 잡졸(雜卒)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에게 ‘조선에 귀화한 왜군장수’는 비겁자이자, 조국을 배신한 인물로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결국 일본 우익작가의 결론은 사야카=왜군장수가 되어서도, 될 수도 없다는 그들 관념상의 새롭게 조작된 인물에 다름 아니다. 사야카라는 인물은 일본우익인사들이 생각할 때 ‘대한(對韓) 콤플렉스’의 한 표본이자, 일본의 ‘대한 우월성’을 지키는데 장해가 되는 인물에 불과할 뿐이다.

미즈노씨의 주장은 이처럼 한․일 간에 첨예한 논쟁거리로 대두되는 사야카라는 인물에 대하여 ‘한․일우호’를 위해서도 그 진실을 밝혀야한다는 것이다. 한일우호의 상징처럼 이야기되는 사야카(김충선)조차도 일부러 꺼내어 그 진위를 명명백백히 밝혀야 진정한 한일교류라는 주장이다. 즉, 미즈노씨는 엉성하거나 왜곡되어진 역사나 유적을 가지고 교류해봤자, 의미 없는 일이니, 학술적 근거가 가장 중요하다는 논리이다. 그러한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줄 곧 왕인 유적지, 홍길동 유적지, 한고천원 유적지 등 한국의 역사 왜곡은 물론 이제는 김충선 문제까지도 메스를 들이대며 이를 통한 한.일간의 교류를 못마땅해 하는 입장 같다.

학자는 객관적이고 양심적인 학술연구로써 올바른 결과를 내면 되는 것이지, 기존에 지방자치단체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교류마저 미즈노씨는 아직 정설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본인들에게 한국과의 교류에 대하여 따끔한 충고를 계속 보내고 있음이다.

이는 일본 우익인사들이 느끼는 대 한국, 한국인에 대한 우월감 내지는 콤플렉스의 반증으로 확실한 근거만을 찾는 미즈노씨 또한 일본 역사부터 확실히 연구하여 정설을 만들어 놓아야할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여러 우익잡지에 낸 기고문을 보자면, 그도 어쩔 수 없는 보통의 일본 우익인사들처럼 교묘하게 한국인과 일본인들의 교류를 ‘날조’, ‘정설 없음’이라는 근거들 들이대며 방해하고 있음이다. 그의 가면이 자꾸만 벗겨지면서 필자는 말 할 수 없는 한 일본 우익인사의 겉모습과 속내의 이중성에 엄청 놀랄 뿐이다.

미즈노교수 “일본 왜곡 놔두면 한국은 없다.”

물론 상기 제목은 2003년 3월 10일 부 ‘굿데이’에서 뽑은 기사제목이다. 당시 저자는 미즈노씨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오마이뉴스에 연속하여 글을 올릴 때이다. 저자의 미즈노 추적에 위기의식을 느꼈던지, 아니면 변명이라도 하려고 추동되었는지는 몰라도 일본에서 노히라 슌스이라는 필명으로 2001년에 냈던 ‘엉터리 책 한일전쟁발발!?’이라는 서적을 한국판으로 냈던 것이다. 책 제목은 ‘한국인을 바보로 만드는 엉터리책 비판’으로 나왔다. 물론 일본에서와는 달리 실명으로 냈음은 당연하다.

굿데이가 쓴 기사 중에 "일본이 한국의 역사를 왜곡했다고 비난하면서 한국 사람도 똑같이 하면 안 되겠지요∼잉."이라는 멘트가 미즈노씨의 속내이지 않을까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전여옥의 베스트셀러인 ‘일본은 없다’는 일본에 대한 비난과 매도가 끝없이 이어지는 반일 서적계의 괴물이며, 강철수의 만화 ‘밤사쿠라’는 일본 여자는 무조건 한국 남자와 하고 싶어 한다는 망상이 벚꽃처럼 만개한 성인용 국제연애 만화라는 악평”이라 질타했다.

이밖에도 미즈노씨는 상기 책 속에서 한국의 대표적 일본역사 왜곡이라며 총34권의 엉터리책(미즈노씨 표현)을 골라 근엄한 일본인으로 되돌아가 엉터리 책과 저자들에게 비판과 비난을 가하였다. 엉터리 책 중에는 한일전쟁 대결을 다룬 김경진 저술의 ‘데포콘’과 이철준의 ‘제3의 쿠데타’, 이규형의 ‘일본대란’, 안봉선의 ‘대지진’, 최정재의 ‘일본의 침몰’, 류지만의 ‘태극기가 펄럭입니다’, 김하인의 ‘왕목’, 만화인 김산호의 ‘대조선제국사’, 부지영의 ‘일본, 또 하나의 한국’, 구본일의 ‘한반도개조론’, 김문학,명학 형제의 ‘일본문화의 수수께끼’, 손석우의 ‘터’, 정영모의 ‘신선이 남긴 동양화’ 등을 선택하여 사무라이 일본인의 근엄한 자세로 마구 찔러대고 있다. 아니 울분과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미즈노씨의 한국인에 의한 일본왜곡이라는 책 선정에 한국 역사교과서가 하나도 없음에 감사를 드린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본인들의 역사왜곡을 비판함은 소설이나 만화가 아니라, 어린 학생들에게 세뇌교육 시키듯 역사왜곡 시킨 교과서이다. 일례로 일본 우익인사인 니시오 칸지 같은 인사가 대표 주필로 쓴 ‘새로운 역사교과서’와 같은 왜곡서가 기본이다. 반면에 미즈노씨는 한국인이 쓴 소설과 만화를 주 공격대상으로 울분을 토하고 있으니, 그의 비판과 비난이 아무리 정당하다할지라도 책 선정에 문제가 있음이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일본에서 아무근거 없이 한국, 한국인을 비난하는 소설, 만화 또한 부지기수로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즈노씨의 ‘엉터리책 한일전쟁발발!?’은 그의 비판수준을 나타낼 뿐이다. 이제 소설이나 만화에서 고른 엉터리 책(미즈노씨 표현)만 비난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학자라면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와 한국의 역사교과서를 비교분석하여 객관적이고 양심적인 판단을 내려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한다. 그런 연구야말로 진정 “한국은 제2의 고향, 애정 있어 비판 할 수도 있다.”(2005년 3월 3일 ‘중앙일보’, ‘일간스포츠’기사)라고 말한 것과 부합될 것이다. 학자로서 수준 있게 한․일관계를 객관적이고 양심적으로 비교분석해 달라는 주문이다.

친일파들이나 일본 우익들이 빠지는 모순은 바로 ‘일본을 지고지선의 모델국가로 봄’에 있다. 때문에 그들의 한․일 비교대상은 ‘일본의 최대 장점 대 한국의 최대 단점’이라는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을 비교랍시고 선택하여 무자비한 칼질을 한다는 점이다. 이는 매우 야비한 짓으로 학자로서는 특히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할 것이다. 때문에 한일관계를 제대로 비판하려면 ‘한국의 장점 대 일본의 장점’ 또는 ‘한국의 단점 대 일본의 단점’을 비교함이 공정하고 객관적이라 할 것이다. 비교의 대상을 한쪽은 장점을 한쪽은 단점만을 극대화한 자의적인 선택을 놓고 비판 아닌 비난을 해대서야 되겠는가? 상술에 눈이 멀어 가십거리를 골라 돈만을 추구한다면, 이는 3류 학자 축에도 끼지 못 할뿐 아니라, 그의 수준과 정체만을 만천하에 드러낼 뿐이다.

전형적인 일본인, 미즈노씨의 추적을 끝내면서

혼네와 타테마에라는 이중성으로 일본인을 평하지만, 두 얼굴의 한 일본 우익인사를 추적하여 왔다. 그가 일본에서 출간한 ‘한국에서 반일소설 쓰는 법’, ‘한국인의 일본위사’, ‘웬일인지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일본인’, ‘한일전쟁발발!?한국 엉터리책의 세계’등과 ‘SAPIO’, ‘SHOKUN’, ‘현대코리아’ 등에 실린 그의 글을 분석해 보면서 그의 이중성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는 전형적인 일본인으로 두 개의 가면을 준비 해두었다가 일본에서는 일본인들이 좋아할 한국비판이나 비난 내용을 주로 씀으로써 거꾸로 한국, 한국인을 왜곡전달 시켰음이다. 이는 그가 주장하는 경계인으로서 심히 잘못하는 점이다. 한국의 장점과 일본의 장점 배울 점을 서로 소개하여 진정한 교류를 위해 일해야 할 사람이 한국에서는 바보상자에 나와 “김치 맛있어요!”, “ 한국 좋아요!”라는 말을 남발하면서 이중플레이를 했음은 “일본인을 경제적 동물이다.”라고 비판하던 사람들의 말처럼 그는 어쩌면 경제적 이해득실에 밝은 이재가(理財家)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그의 본 모습을 일본 유학 중일 때부터 추적해오던 필자가 이제는 국민들에게 그의 진면목을 알리게 되었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끝을 맺으려한다.
작금 일본은 독도문제로부터 역사왜곡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한국을 욕보이고 업신여기고 있다. 이러할 때에 검증되지도 않은 한 일본 우익청년을 국립대학에서 교수로 임용하고 바보상자에서 친한파로 알려지게끔 처신한 것은 매우 잘못한 일이다.

특히 정부의 한 조직에서조차 그를 교통 홍보대사로 임명했다하니, 얼마나 한국을 우습게 알고 ‘웬일인지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일본인’이라고 미안한 듯 속내를 밝히며 한국을 조롱했을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전남의 한 국립대학에서 임용재계약 해지를 2005년 2월28일부로 했는데, 한달도 안 돼 또 다시 부천의 가톨릭 대학에서 강사로 임용했다 함은 부정적 이미지를 광고에 이용하는 선전효과 때문인지, 참으로 부끄럽고 창피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도 ‘요한’이라는 세례명으로 있지만, 일본의 우익인사로부터 우리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라고 그런 실수를 자꾸만 하는 것일까?

외국인 영어강사들에 의한 한국 우습게 알기에 이어 일본 우익인사들마저 한국, 한국인을 노예로 여기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인정 많고 빈틈 많은 우리를 보고 치밀하고 계획적인 일본우익인물들이 얼마나 한국알기를 쉽게 알고 파고들겠는가? 왜 우리는 수백 년 전부터 그렇게 일본에 당하고도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까마귀처럼 잊어버리는가? 그것은 우리에게 혼이 없음이요, 지독하고 끈질긴 악착같음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1909년 안중근 의사의 의거로부터 배워야한다. 동양의 평화를 깨던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민족의 울분을 토하며 기쁜 마음으로 대도적(大盜賊)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던 그 늠름함과 기개를 본 받아야지, 어찌 천주교에서 세운 대학에서 또다시 실수를 하는가?

당시에도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를 빈 라덴과 같은 일개 살인범이자 테러범처럼 발표하여 겨우 몇 년 전에 그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했으면서 또다시 한․일 간에 엄청 큰 파고가 엉클샘(미국)의 감독 하에 진행 중인데 또다시 일본 우익인사를 교수로 임용함은 무슨 작태이더냐? 진정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100여 년 전의 실수를 되풀이하는가? 답답하고도 답답 할지어다.

남쪽나라 일본에서는 임나일본부라는 허황된 왜곡으로 한반도 남부 땅을 아직도 유린하고 있으며, 중국은 우리 조상들의 역사인 고구려사까지 왜곡 날조하여 만주지역은 물론 북한 지역까지도 연고권을 주장하려 하고 있지 않은가?

미즈노 슌페이 그는 우익인물 맞다! 미즈노씨의 서적이 주로 우익성향의 ‘소학관(小學館)’이나 ‘문예춘추(文藝春秋)’에서 출간되어 나오듯이 ‘SAPIO''나 ‘쇼쿤(諸君)’도 그 이상의 우익성향 잡지사임은 불문가지이다. 때문에 한국전문가라고 일본에 알려진 노히라(미즈노씨의 필명)씨의 기고문이 우익잡지에 올랐다하여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니 미즈노씨의 본심(혼네)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으니, 어쩌면 그의 두 개의 가면 중 일본용 가면이 벗겨지는 좋은 증거가 될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많은 독자들도 판단이 섰겠지만, 필자는 미즈노씨가 틀림없이 일본 우익들과 맥을 같이하는 인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현 상황은 1875년 일본이 한국침략을 목적으로 군함 운양호를 우리의 서해로 몰고 와 강화도사건을 일으키던 때와 비슷하다. 당시는 조선의 개항을 명분으로 침략했으나, 지금은 동해를 일본해라 우기고, 독도마저 타케시마라 억지주장을 펴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한반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목적은 똑같다.

때문에 한국은 군사대국화와 정치대국화로 매진하며 우경일변도로 흘러가는 일본을 철저히 연구하고 대비해야, 조선말처럼 쉽사리 당하지 않을 것이다. ‘지피지기 백전불태’와 유비무환은 수 없이 얘기해도 일본에 관한한 지나치지 않다.

아울러 2만여 명의 재한 일본인 중 일본의 우익사상 전파와 노골적으로 일본의 국익을 위해 그 첨병 역할을 하는 쿠로다 카츠히로와 미즈노 슌페이와 같은 인물에 대하여 우리는 철저히 알고 대응해야지, 섣불리 이용당하면 안 된다.

/장팔현 문학박사

<전교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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