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성공 여부는 양국 독자들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을 터이지만, 일단 두 작가가 ‘최홍’과 ‘준고’라는 한국 여자와 일본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각자의 시각으로 그려낸 두 권의 동명 작품을 읽어본 소감은 긍정적이다.
기획소설이라는 게 문학적으로 성공하기 힘든 작업이기도 하고, 게다가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적 배경도 판이한 두 작가가 참여했으니 작품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만도 한데, 용케 그 난관을 극복하고 나름의 애잔한 감동과 함께 한국과 일본의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 정서적으로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는 차원에서다.
한국 여자 홍이가 일본에 어학연수를 갔다가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서너 개씩 뛰어야 하는 가난한 일본 남자 준고를 벚꽃이 난무하는 공원에서 우연히 만났다가 사랑에 빠져든다.
사랑의 시작에는 다른 어떤 이물질도 개입할 여지가 없었으나, 늘 바쁜 준고와 그를 기다리는 홍이의 고독이 일차적인 균열의 위험성을 제공하고 종국에는 ‘일본과 한국’의 차이가 이별의 명분을 제공한다. 둘 사이의 잠재된 갈등이 고조되던 터에 준고가 직장의 예기치 못한 바쁜 일로 인해 홍이를 밤새 기다리게 하는데, 폭발한 홍이가 무심코 던진 말이 이별의 뇌관에 불을 붙였다.
“잘못은 너희가 했는데 우리는 오십 년이 넘도록 너희를 쫓아다니면서 사과해라, 사과해라 하고 있는 것도 너무 웃겨. 너처럼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는 너희 일본 사람한테!”(공지영, 205쪽)
그들은 그렇게 그 길로 헤어져 7년 만에 소설가로 출세한 준고가 한국을 방문해 우연히 재회하는 과정이 두 작품의 기둥 줄거리다. 이 과정에 그동안 내연하던 그리움과 회한이 잔잔하게 스며든다.
홍이는 자신이 무심코 내뱉었던 말을 후회한다. 하지만 그때의 발언은 엄밀하게 따지자면 그녀만의 허물은 아니라는 사실이 소설의 여운을 증폭시킨다. 그녀는 그날의 발언을 이렇게 반추한다.
“아니라고 해도, 무심하다고 해도, 나는 한국의 여자였다. 나를 점령해 버렸던 그 분노는 이제 와 생각하면 결국 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지만 나 자신이 나 하나만은 아니었다. 그와 나 자신 속에 우리가, 그의 조국 일본과 내 조국 한국의 긴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나의 존재가 가장 예민했던 바로 그 순간, 청산되지 못한 역사는 그렇게 어이없는 종말에 마지막 종지부를 찍어 주고 있었다. 참으로 비겁하고 훌륭한 명분이었다.”(공지영, 206쪽)
준고는 당시 홍이의 그 말을 들었을 때, 어이없고 황당했을 법하다. 개인적인 사랑에 역사가 끼어들다니. 그는 사랑하지만 쓸쓸했고, 쓸쓸해서 다시 예전 실연당했을 때의 자폐적인 고독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들은 헤어진 7년 동안 서로 그리워했고 우연히 만나서 극적으로 사랑의 불씨를 다시 살려낸다. 홍이의 반성에 화답하는 듯한 준고의 생각은 작금의 한일 관계를 성찰하게 한다.
“형식적으로 속이거나 순간을 모면하려고 얼버무려서는 마음을 비끄러맬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칠 년 동안 달려온 것이다. 홍이와 함께 달리고 싶다. 설령 거기에 더 이상의 미래가 없다 하더라도 일본에 돌아가기 전에 나는 홍이와 함께 달려야 한다. 끝까지 달렸을 때 나는 비로소 홍이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쓰지 히토나리, 243쪽)
공지영은 한국의 386세대 작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쓰지 히토나리도 일본의 권위 있는 아쿠타카와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냉정과 열정 사이’로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작가다. 그들이 한 개의 주제로 변주해 낸 두 개의 작품이 양국 독자들 가슴의 현을 어떻게 연주해낼지 두고 볼 일이다.
조용호 기자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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