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고생 생각하면 1만분의 1도 안되는 일이죠" 손사래 어느새 세밑이다. 정치는 희망을 주지 못하고 경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부동산 폭등에 서민들의 상심만 커졌다. 그래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아름다운 사연으로 훈훈한 감동을 준 이들이 많았다. 세계일보는 삶의 향기를 전해준 그들의 소식을 매주 두 차례씩 소개한다.
①''지게 효자'' 이군익씨
“산을 오를 때마다 아버지의 무게가 자꾸 가벼워지는 것 같아 그저 가슴이 미어질 뿐이지요.”
아흔을 넘긴 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올해 금강산을 비롯해 국내외 명산 세 곳에 오르느라 어깨에 피멍까지 들었지만 이군익(42·사진)씨는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했다.
기자가 수소문해 그의 주소를 겨우 알아냈지만 ‘지게 효자’ 이씨를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누구라도 하는 효도인데 자신에게만 언론이 관심을 갖는 게 부담스럽다면서 한사코 피했다.
지난 8일 이씨가 근무하는 농협 인천지역본부를 찾았을 때에도 그는 손사래부터 쳤다. 노부(92·이선주)의 건강 등 이런저런 걸 묻자 한참 지나서야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이씨는 누구라도 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의 효행은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더구나 요즘엔 ‘현대판 고려장’이 횡행하는 각박한 세상 아닌가.
이씨와 형 관익(55)씨를 비롯해 7남매가 상의 끝에 아버지를 금강산에 보내드리기로 했으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아무리 금강산이 좋더라도 자식에게 말 그대로 ‘짐’이 될 수 없다는 아버지의 고집을 접도록 하는 게 어려웠다.
“아버님을 지게에 앉으시도록 형님과 함께 설득하는 게 힘들었지, 지게를 지는 건 힘들지 않았어요. 부모님이 저희를 위해 하신 고생에 비하면 만분의 일도 안 되는 걸요.”
끈질긴 설득 끝에 지난 6월 3부자와 누나 춘익씨는 금강산 관광에 나섰다. 노부가 앉은 지게 무게는 60여㎏. 이씨 형제가 지게를 번갈아 졌으나 형제의 상반신엔 온통 멍이 들었다.
이씨는 지난 10월에는 아버지를 지게에 모시고 중국 산둥(山東)성 타이산(泰山)과 공묘(孔廟·공자의 사당)를 관광했다.
이씨의 효행을 전해 들은 산둥성 재중동포가 초청한 것이다. 당시 이씨의 사연은 현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돼 중국인들을 감동시켰다. 한 현지인은 이씨 사진을 찍고서는 “잘못이 있을 때마다 사진을 보고 반성하겠다”고까지 했다.
금강산 관광 때 정상까지 못 오르고 중간에 내려온 게 마음에 걸렸던 이씨 형제는 지난 추석 때는 오르기가 수월한 덕유산을 택해 아버지를 정상까지 모셨다.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상에서 마냥 즐거워하는 아버지를 보고서 형제는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회혼(回婚·혼인한 지 60돌이 되는 날)까지 보낸 아내를 지난해 2월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의 얼굴도 활짝 펴졌다.
“효도하는 데에 이유가 있나요. 그냥 해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하는 것일 뿐”이라는 그의 말은 모든 사람이 간직할 소중한 교훈이었다.
신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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