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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향수'' 극단적 탐미주의의 치명적인 아름다움

입력 : 2007-03-23 20:20:00 수정 : 2007-03-23 2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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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겐 자신만의 체취가 있다고 한다. 정작 본인은 느끼지 못하지만 타인의 후각은 반응한다. 그게 마늘 냄새든 우유 향이든 상관없다. 그게 무엇이든 인간의 체취는 정체성의 한 구성요소이니까. 그런데 그 체취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투명인간처럼 실체 없는 불완전한 인간으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22일 개봉한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현재까지 1500만부가 넘게 팔린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현대 도시인의 탐욕과 고독을 탁월하게 그려낸 작품. 영화화된 것은 출간 20여년 만이다. 원작 훼손을 우려한 작가가 한사코 반대해 온 탓이다. ‘롤라 런’으로 주목받은 톰 튀크베어 감독은 여인의 향기에 사로잡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매혹적인 향수를 만들려는 한 남자의 욕망과 집착을 섬뜩하도록 아름답게 그려냈다.

이야기는 원작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천부적인 후각 능력을 가진 장 밥티스트 그르누이(벤 위쇼)는 태어나자마자 생선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고아. 어느 날 그는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여인의 체취에 강하게 끌리고 그만 여자를 죽이고 만다. 이후 그는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향수를 만들기 위해 향수의 낙원으로 불리는 그라스로 떠난다. 그리고 처녀들을 죽인 후 여인의 고유한 체취를 뽑아 향수로 제조한다.
영화는 치명적인 탐미주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살인을 해서라도 완벽한 향수를 만들려는 장 그르누이의 여정은 정신질환적인 예술혼과 맞닿아 있다. 주인공이 향수에 집착하는 이유는 자신만의 향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녀들의 체취로 만든 향수는 자기 실현이자 반사회적 예술과 같다.
‘향수’는 제목에 걸맞게 곳곳에서 다양한 냄새가 느껴진다. 노란 자두를 조심스럽게 베어 먹는 장면에서는 시큼함이, 온갖 꽃잎들을 말리는 그라스 향수 공장에서는 꽃내음이 은은하게 퍼진다. 뿐만 아니라 시커먼 시궁창 같은 파리의 센강가나 주인공이 버려진 생선 좌판 밑에서는 악취가 스크린을 뚫고 공격하는 느낌이 난다. 성난 군중이 집단 최면에 걸리는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선 그 향수에 취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생길 정도다.
감독은 감각적 영상으로 관객의 후각을 자극하며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인다. 제작비 600억원이 든 작품답게 원작의 향기가 스크린에서도 비교적 잘 살아났다.
벤 위쇼의 연기력은 놀랄 만하다. 그는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배우지만 거부할 수 없는 옴므 파탈의 매력을 보여줬다. 묘한 느낌을 발산하는 벤 위쇼는 영화 내내 대사보다 표정으로 장 그르누이의 편집증과 강박을 표현했다. 소설 주인공에 딱 들어맞는 느낌이다. 향수 제조사를 연기한 더스틴 호프먼과 살인자로부터 딸을 지키는 아버지 역의 앨런 릭먼은 중후한 연기로 드라마에 무게감을 더했다.
이성대 기자 karis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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