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디자인의 아버지 윌리엄 모리스도 이들의 이야기를 회화로 남겼다. 귀네비어는 랜슬롯과 서로 뜨겁게 사랑을 확인한 후 흐트러진 침상 옆에서 거울을 바라보며 결혼의 구속을 상징하는 허리띠를 바로 매고 있다. 방금 연인의 품에 있었던 그녀의 표정이 밝지 않은 것은, 자신만을 수호하는 기사에 대한 연정과 함께 지아비인 아서왕에 대한 죄책감이 갈등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리라.
이미 결혼할 상대를 만나 평생을 약조한 후에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면 참으로 불행한 삶이라 할 수 있겠다. 귀네비어와 랜슬롯은 주종과 상하관계가 명확한 중세시대를 살았으니 그 고통은 더했을 터. 21세기의 부부들은 이러한 갈등상황을 대처하려 이혼의 길로 접어들기도 하는데, 이혼의 양상 또한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다.
요즘 미디어 한쪽을 장식하는 유명인사 커플들의 이혼사례를 보자. 한쪽 배우자의 외도를 이해하고 인정하여 갈라섰다는 설명과 부인 측에서 먼저 이혼을 제기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제법 장성한 자녀를 두고 오래도록 잉꼬부부로 불리던 것을 생각해 보면 다소 충격적이다. 무역 역조현상이 심화한다고 하더니 바야흐로 중년이혼까지 수입되는 지경에 이르렀나 보다.
통계청의 2005년 인구센서스 결과를 보니, ‘4050’ 이혼자가 점점 늘어나 전체 이혼자의 70%를 넘어섰단다. 중년이혼이 이젠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어버린 것 같아 씁쓸한 대목이다.
중년이혼의 급증은 무엇보다 여성의 지위향상에 따른 영향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작년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데, 이혼을 부인이 먼저 제의하는 사례가 10건 중에 7건이나 되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더 이상 가부장제로 인한 희생을 여성들이 참아낼 수 없다고 선포하기에 이른 것 같다. 여기에 이혼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제법 온화해지고, 이혼녀의 재산권도 일정 수준 보호돼 중년여성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중년의 이혼이 사랑을 지속하기 어려운 모든 아내와 남편들에게 정말 약이 되는 것일까? 귀네비어는 자신의 사랑이 왕국의 혼란을 야기하자 수녀원으로 들어갔고, 랜슬롯도 결국 수도사의 길을 걷는다. 전설 속 이야기라 비약일 수 있겠으나, 몇 십 년 동안 함께 삶을 개척해온 부부관계를 일순 단절하는 것 또한 위기의 중년 부부에게 진정한 해답은 되지 못할 것이다.
사랑이 저장된 포도주처럼 세월이 갈수록 맛과 깊이를 저절로 더해가는 것이라 믿는다면 착각이다. 사실 사랑은 아주 연약한 화초와 같아 귀중히 여기고 눈맞추고 돌보아주지 않으면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다.
내 배우자의 연약한 부분이 온갖 병충해와 험한 날씨 속에서 다치지 않도록 제대로 보호해주고 있는지 반문해보자. 혹시 그 나무그늘 속에서 따가운 햇볕을 피하려고만 했지 정작 그의 목마름에는 무관심하진 않았을까? 조금만 서로 배려하다 보면 뜻밖에 서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랑의 깊이를 깨닫고 돌이키지 못할 실수를 피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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