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김중혁 두번째 단편집 ‘악기 도서관’

입력 : 2008-04-25 21:25:08 수정 : 2008-04-25 21:25:08

인쇄 메일 url 공유 - +

즉흥곡을 듣는 듯…사람냄새 풍겨 소설가 김중혁(37·사진)씨의 두 번째 단편집 ‘악기들의 도서관’(문학동네)은 ‘부트레그’ 음반을 듣는 재미를 준다.

부트레그(Bootleg)는 정규음반이 아니다. 가수가 술집, 라이브카페 등에서 부른 노래를 조야한 시설로 녹음한 것들이 많다. 덜 작위적이며 덜 상업적이다. 잘 알려진 히트곡으로 대중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감이 없으므로 자유롭다. 김씨의 소설은 동네 카페에서 재미로 부른 자작곡들처럼 들린다. 자기 마음대로 리믹스하거나 원곡에 없는 즉흥적 가락을 구사한다.

첫 소설집 ‘펭귄뉴스’(2006)에서 그는 수집가의 취미를 보였다. 자전거, 타자기, 지도 등 구식 물품이 새롭게 생명을 얻었다. 이번에는 음악 혹은 소리 자체에 대한 애정을 담았다. 그는 록의 저항정신, 펑크의 단순함, 블루스의 시원시원한 공간감 등을 절묘하게 ‘믹싱’해 소설로 표현했다. 대부분 소설에는 ‘음악은 모두의 것이며 어렵지 않다’는 기본정서가 깔려 있다.

단편 ‘엇박자D’(김유정문학상)에 그의 음악관이 잘 드러나 있다. 박자 맞추기에는 서툴지만 음악을 진정으로 느낄 줄 아는 음치가 등장한다. 학창 시절 합창반이었던 그는 늘 엇박자를 냈고, 축제 공연 때 합창을 망쳐 음악선생에게 따귀를 맞았다. 그래서 엇박자D란 별명이 붙었다. 20여년이 지난 뒤, 엇박자D는 22명의 음치들의 노래를 취합한다. 개별적으로 녹음한 음치들의 노래를 ‘믹싱’하자 아름다운 합창이 되었다. 엇박자D는 음치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음악은 개인의 기질대로 향유하는 것이지, 일사불란한 체계에 맞춰야 하는 매스게임이 아니다. 개인에게 박자와 음정을 강요한다면 음악을 느끼기 어렵다. 엇박자D가 음악을 향유하는 태도는 곧 삶에 대한 태도다. 사회의 공인된 표준에 맞추기 위해 성취욕을 불사르기보다는 자신의 본성, 소질에 따르는 편이 훨씬 즐겁다. 설령 그것이 서툴고 조금 엇박자를 낼지라도. 

또 다른 단편 ‘비닐광 시대’에서도 개별성 예찬은 이어진다. 정통을 고집하는 음악 편집광과 디제이의 갈등이 그려진다. 음악 편집광은 ‘뒤섞고 섞고, 베껴서, 자신의 이름으로 음반을 내는’ 디제이들을 혐오한다. 하지만, 디제이는 “그것도 나름대로 음악을 사랑하는 방식”이라며 반박한다.

“새로운 것은 어디에도 없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누군가, 의 영향을 받은 또 누군가, 의 영향을 받은 누군가, 가 그 수많은 밑그림 위에다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다.”(104쪽)

작가는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디제이’라고 말한다. 취향대로 짜깁기하고, 헤집어놓을 권리가 있다. 줄리아드음대에서 배우는 클래식만큼 나이트클럽에서 울리는 디제이 댄스곡도 소중한 음악이다.

그 밖에 기교 너머에 있는 음악의 소통성을 그린 ‘자동피아노’, 온갖 악기의 소리를 녹음해 순수한 음(音)을 추출하는 이야기 ‘악기들의 도서관’ 등 8편의 단편이 실렸다. 작가는 록밴드나 디제이가 음악의 해방을 외치듯, “문학은 모두의 것이며 결코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심재천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츄 '상큼 하트'
  • 츄 '상큼 하트'
  • 강지영 '우아한 미소'
  • 이나영 ‘수줍은 볼하트’
  • 조이현 '청순 매력의 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