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세우스는 페리토스를 도와주기로 했지만 페리토스가 점찍은 반려자가 페르세포네일 줄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제우스와 형제로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엄청난 권력을 가진 하데스가 아내로 삼으려고 강제로 납치해간 페르세포네를 아내로 삼겠다는 페리토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말을 듣고 너무 황당하여 테세우스도 어려운 과제를 던진 것이 헬레네를 아내로 삼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일은 물론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를 데려오는 것보다는 쉬운 일이었지만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페리토스가 엄청나게 위험한 일을 벌이겠다는 선언에 자극받아 테세우스도 그 당시 어린애였던 트로이아의 미래의 여주인공 헬레네를 그 자신이 직접 훔쳐와서, 그녀가 자란 다음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이것은 페르세포네의 강탈보다 덜 모험적이기는 했지만 가장 야심 많은 사람을 만족시킬 만큼 위험한 것이었다. 헬레네의 남자 형제들은 카스토르와 폴룩스였는데, 어떤 인간 세계의 영웅도 그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어찌 되었든 테세우스는 페리토스를 도와 그 계획을 성사시키기로 했고, 페리토스는 테세우스를 도와 헬레네와 테세우스를 맺어주기로 약속했다. 일단 이들은 테세우스의 아내 될 헬레네를 납치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하데스가 다스리는 지하세계에 있는 페르세포네를 구해 오기란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이제까지 하데스의 세계에 들어갔다가 살아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조금은 쉬울 수도 있는 헬레네를 납치해 오는 일을 먼저 하고 나서 페르세포네를 찾으러 가기로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은밀히 헬레네가 살고 있는 나라로 향했다. 헬레네의 그때 나이는 12살 밖에 되지 않았으나 미모는 뛰어났다. 그녀의 미모는 온 세계로 퍼져나갔고, 그 이야기를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도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헬레네는 제우스의 구애를 받은 네메시스의 딸로 알려져 있다. 네메시스는 아주 아름다운 여신으로 분노와 응징의 신이다. 이 여신을 사랑한 제우스는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며 여신을 범하려 했다. 그럴 때마다 네메시스는 여러 모습으로 변신하면서 제우스에게서 빠져나갔다.
마침 네메시스는 독수리로 변신해서 제우스를 빠져나갔는데, 제우스도 꾀를 내어 아주 아름다운 백조로 변신하여 그녀에게 접근했다. 아주 아름다운 백조를 본 네메시스는 백조에게 다가가 백조를 가슴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제우스는 자기의 욕심을 채웠다. 제우스와 관계를 맺어 임신한 네메시스는 아무도 몰래 스파르타의 숲에서 출산을 했는데, 낳고 보니 알이었다. 그녀는 숲에다 몰래 이 알을 버렸다. 마침 이 숲을 지나던 양치기가 이 알을 발견했다. 양치기가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알이었으므로 그 알을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에게 바쳤다. 레다는 그 알을 자신의 방에 놓고 신기한 듯 바라보곤 했다.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자 이 알은 툭툭 소리를 내더니 알 속에서 아름다운 여아가 탄생했다. 레다는 유난히 아름다운 이 아기를 자기 아이로 삼아 키우게 되었으니, 이 아이가 헬레네이다.
테세우스와 페리토스는 은밀히 스파르타로 들어섰다. 이들은 운이 좋게도 아르테미스 신전을 지나다가 헬레네를 발견했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아 틀림없는 헬레네였다. 그녀는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춤을 추고 있는 중이었다. 신이 난 이들은 더 이상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이들은 강제로 헬레네를 이끌고 스파르타를 떠났다. 손쉽게 헬레네를 납치한 테세우스와 페리토스는 그녀를 데리고 아티카의 아파드나이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테세우스의 어머니 아이트라가 거주하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여기서 헬레네가 결혼 연령에 달할 때까지 어머니에게 맡기기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페이리토오스가 아내를 구할 차례가 되었다. 테세우스와 페리토스는 어떻게든 페르세포네를 하데스로부터 훔쳐내야 했다. 참으로 무모한 일이었다. 지하세계에는 한 번 가면 살아 돌아올 수 없는 곳이었다. 불멸의 신이 아닌 존재가 죽으면 일단 지하세계 즉 하데스가 다스리는 세계로 내려가야만 한다. 그리고 이 세계에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다. 죽은 자의 영혼이 지하세계에 들어가기 전에는 통과의례가 필요하다. 이승에서의 모든 것을 놓아두고, 다 잊어버리고 들어가는 세계가 하데스의 세계인 것이다.
우선 죽어서 지하세계로 들어가려면 헤르메스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헤르메스가 인도한대로 지하세계로 내려가면 일단 아케론 강에 이른다. 그러면 강을 건네주는 험상궂게 생긴 늙은 뱃사공 카론이 나타난다. 그 자는 뱃삯을 받고 죽은 자의 영혼을 배에 태워 저승의 강을 건너준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죽은 자의 혀 밑에 동전 한 닢을 넣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카론에게 줄 뱃삯이 없어서 강을 건너지 못하고 아케론 강기슭을 정처 없이 떠돌아야만 한다.
뱃삯을 지불하면 그제야 카론은 영혼을 배에 태운 다음 ‘비통의 강’인 아케론 강을 건너야 한다. 또한 ‘탄식의 강’인 코키토스 강을 건너야 하고, ‘불의 강’인 플레게톤 강을 건너고, ‘증오의 강’인 스틱스 강을 건넌 다음 이제는 비통도 놓아두고, 탄식도 접고, 증오도 놓아두고 모든 것을 잊어야 한다. 그래서 결국 이승에서의 모든 일을 잊고 건너는 ‘망각의 강’이라는 레테 강을 건너야 한다. 혹여 돌아오려고 해도 이 레테의 강을 건너면 기억이 없으니 돌아온들 그 존재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죽은 자의 영혼이 제일 먼저 건너는 아케론 강의 강기슭은 쓸쓸하고 갈대와 진흙으로 덮여 있다. 그 다음으로 건너게 되는 코키토스 강은 아주 차가운 물이 흐르고, 아케론 강의 지류인 플레게톤 강은 불타고 있다. 이 강은 이제 스틱스 강으로 흘러들어 가는데, 스틱스 강은 지하세계를 아홉 겹으로 에워싸고 흐르는 강이다. 이 스틱스 강에 걸고 한번 한 맹세를 하면 아무리 위대한 제우스신이라도 어길 수 없다. 만일 스틱스 강에 걸고 한 맹세를 지키지 않는 다면 신이라 해도 일 년 동안 숨도 못 쉬고, 신들의 음식인 암브로시아도 먹을 수 없고, 신들의 음료인 넥타르도 마실 수 없는 벌을 받아야 한다. 또한 9년 동안 신으로서의 자격이 박탈되어 신들의 연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건너는 ‘망각의 강’ 레테 강을 건너면 그 영혼은 하데스의 세계로 들어간다. 망각의 강인 레테의 강을 건너고 나면 지하세계의 문에 이른다. 그 문 앞에는 머리가 세 개이고, 뱀의 혀와 꼬리가 달린 무서운 개 케르베로스가 지키고 있다. 케르베로스는 살아있는 자의 영혼이 지하세계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도 하지만 일단은 거의 다 통과시킨다. 하지만 죽은 자의 영혼이 나가는 것은 절대로 금하는 역할을 한다. 요컨대 죽을 수는 있어도 다시 살아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케르베로스가 지키고 있는 무서운 문을 지나서 들어가면 타르타로스라는 무한 지옥에 떨어진다. 이 지하세계는 너무 깊어서 쇠붙이를 던지면 꼬박 9일 밤낮을 떨어져야 바닥에 닿는다. 지하세계 중에서도 가장 깊은 심연에 있어서 칠흑 같이 어두운 암흑이 지배하는 무한지옥이다.
그러한 위험한 곳에 위험을 무릅쓰고 테세우스와 페리토스는 지하세계로 향하고 있었다.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를 훔쳐낼 수 있을지 다음 주에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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