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한 번역·충실한 각주로 이해 높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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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하시 데쓰지 지음, 최수빈 옮김/바오출판사/1만6000원 |
이 책은 동아시아의 문화와 전통 속에서 오랫동안 자리하면서 민중과 함께한 십이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연말연시나 아이가 세상에 처음 태어났을 때, 또 그 아이가 자라서 결혼할 때, 우리는 보통 열두 띠 이야기를 한다. 혈액형을 따져 성격을 논하는 요즘 젊은이처럼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띠를 통해 운명과 팔자를 가름한다.
사실 십이지의 근원과 역사를 이야기할 때, 한자나 일본어로 된 자료만 있어서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이번에 일본의 석학이자 세계에서 가장 정확하고 방대한 한자사전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의 저자이자 편찬자로 널리 알려진 모로하시 데쓰지(諸橋轍次)가 자문자답(自問自答) 형식으로 들려주는 ‘십이지 이야기’가 한글로 번역되어 참으로 반갑다. 십이지, 즉 열두 띠 동물을 각 장으로 나누고, 각 띠 동물과 관련된 여러 자료를 고전과 옛 전적에서 끌어와 고전 속 이야기 마당으로 십이지의 근원과 역사, 신화와 설화 등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또 옮긴이는 저자의 원서 속에서 인용한 글이나 고사의 원전을 일일이 찾아서 대조한 다음, 그 원문과 출전을 각주로 수록하였다. 원서에는 없었던 각주를 옮긴이가 무려 490여 개나 달아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낯선 용어나 문헌에 대한 소개도 충실하게 하고 있다. 이런 성실하고 꼼꼼한 번역과 충실한 각주 덕택에 공부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독자는 십이지 이야기에 더해 덤으로 한자숙어, 고사성어, 동양고전을 동시에 쉽고 정확하게 접할 수 있다. 꿩 먹고 알 먹는 셈이다.
2009년 기축(己丑)년 소띠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 소는 우직하나 성실·온순하고, 끈질기며 힘이 세나 사납지 않고 순종한다. 이러한 소의 속성이 한국인의 정서 속에 녹아들어 여러 가지 관념과 풍속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소가 말이 없어도 열두 가지 덕이 있다”고 했다.
이 책 제2장 축·丑-소에서 저자는 자신이 지은 ‘대한화사전’에서 ‘우(牛)’ 부수에 속하는 한자가 311자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획수가 많은 것이 ‘영( )’으로 전부 24획이며, 뜻은 단지 소의 명칭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독(犢)’은 송아지, ‘패( )’는 두 살 된 소, ‘삼( )’은 세 살 된 소, ‘사( )’는 네 살 된 소를 말하는데, 이처럼 소의 연령에 따라 구별하는 글자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방( )’은 흰 털과 검은 털이 섞여 있는 얼룩소, ‘도( )’는 황색 호랑이 무늬 소를 뜻하는데, 이처럼 털의 색깔에 따라 구별하는 글자들도 있습니다. 또 ‘려( )’는 등이 흰 소이며, ‘순( )’은 입술이 검은 소를 뜻합니다. 그 수가 끝이 없지요” 이처럼 소우 부수에 속하는 글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소가 귀중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증권가 앞에 가면 힘센 황소가 눈을 부리고 서 있다. 마치 금방이라도 소뿔로 상대를 들어올릴 기세다. ‘황소 주식장세’이다. 증권가에서 장세가 좋은 강장세(强場勢)를 ‘불 마켓(Bull Market)’, 즉 ‘황소 장세’라고 한다. 황소의 맹렬한 돌진력과 밑에서 위로 들어올리는 뿔의 힘은 증권가의 오름 장세를 이끈다. 기축년을 색깔로 표현하면 누런 소띠 해이다. 새해에는 황소의 힘세고 성실함이 필요한 시기이다. 새해 아무리 무겁게 어둡게 출발해도 틀림없이 황소의 뿔처럼 상승 또 상승할 것이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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