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높은 시청률· 패러디 만발=지난달 30일 시청률 조사회사 AGB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아내의 유혹’의 평균 시청률은 26.9%를 기록했다. 13주 동안 주간 전체 시청률 1위를 차지했으며 연속 16주 동안 일일드라마 1위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또 SBS 입장에서도 이 드라마는 효자 상품이었다. 1992년 이후 방송된 역대 SBS 일일드라마 중 1위를 차지했으며, 그간 약세로 평가받았던 SBS 일일드라마를 끌어올려 저녁시간대 뉴스까지 상승세를 탔다. 방송사들이 불황을 맞은 가운데 이 드라마가 SBS를 먹여살린다는 말도 나왔다.
각종 패러디도 활발했다. 드라마 속 황당한 설정을 희화화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는 높은 인기를 반영한 것이었다.
우선 ‘구느님’과 ‘명탐정 애리’라는 유행어를 낳았다. ‘구느님’은 구은재(장서희)와 하느님의 합성어로 죽음도 비껴가고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전지전능함을, ‘명탐정 애리’는 적재적소에 나타나서 비밀스런 말을 엿듣는 등 신애리(김서형)의 놀라운 능력을 조롱하는 말이다.
무엇보다 옛 아내가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나타났다고 그 아내를 몰라보는 설정은 코미디 프로그램 등에서 널리 쓰였다.◆‘막장’ 논란=드라마는 시청자의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막장 드라마’로 도마에 올랐다. 불륜, 배신, 납치, 폭력, 살인미수, 자살 등을 뒤범벅해 ‘막장’의 결정체라는 비판이 나왔다. 관련 심의규정 위반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경고조치를 받기도 했다.
결말 역시 위암에 걸린 신애리가 자살을 시도하고 정교빈(변우빈)이 이를 말리려다 결국 모두 바다에 빠져 죽는다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자살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주인공의 자살은 경솔한 판단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막장 드라마의 인기는 우리의 삶이 막장 상태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공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막장의 달콤한 사탕을 계속 먹어야 하느냐는 다른 문제”라며 “달콤하다고 계속 먹으면 이가 다 썩지만 방송사 입장에서 그런 현실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기 요인은?=‘막장’ 비판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문법을 파괴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빠른 속도감과 단계별 구성은 주목받았다. 120회가 넘는 연속극이지만 일반 드라마보다 서너배 빠른 전개로 남성 시청자들까지 불러모았다. 일일연속극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지적과 함께 변신을 요구받던 시점에 일일극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드라마는 많은 설명이 필요한 발단과 전개 과정은 과감히 건너뛴 채 위기와 절정 단계에 집중했다. 주인공 구은재가 남편에게 버림받고 물에 빠져 죽을 고비를 넘긴 후 복수를 결심하고, 복수를 위해 민소희로 분해 교빈의 집에 들어가고, 이어 죽은 줄 알았던 진짜 민소희(채영인)가 등장하는 등 한 드라마가 시즌제처럼 3단계로 명확히 구분되는 구성도 눈에 띄었다.
‘주몽’ ‘허준’ 등을 집필한 최완규 작가는 “매일 본방을 볼 정도로 재미있게 봤다”며 “이 드라마는 작가들 사이에서도 화두를 던져준 드라마”로 평했다. 그는 “시청자가 이 같은 빠른 전개 속도에 길들여져 있어 올해는 빠른 템포감을 살린 드라마가 유행할 것”이라고 평했다.
이와 함께 비현실적 복수극 설정이 인기를 끈 것은 불황이란 세태를 투영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비록 이야기가 허무맹랑하더라도 현실을 잊게 하고 욕구불만을 해결해 주는 분출구로서의 역할이 먹혀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불황기에는 불륜이나 버림받은 여자 등을 소재로 한 신파 드라마가 뜬다는 것이 오래된 정설이기도 하다.
한 방송사 PD는 “‘아내의 유혹’과 ‘꽃보다 남자’ 등의 성공으로 현실을 잊게 하는 비현실적 판타지가 당분간 인기를 끌 것”이라며 “하지만 자칫 반복적인 재생산으로 대중 정서에 유리될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김지희 기자 kimpossibl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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