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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악덕 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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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5-07 20:25:55 수정 : 2009-05-07 20:2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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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업가에서부터 허름한 야채가게 주인에 이르기까지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한두 가지 기본 철칙이 있어야 한다. ‘장사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원칙이 상혼(商魂)이다.

일본 에도시대 경제사상가 이시다 바이간은 자신의 사상 ‘세키몬 심학(石門心學)’의 핵심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인(仁)은 고객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며, 의(義)는 사람의 바른 마음, 예(禮)는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 지(智)는 지혜를 상품으로 만드는 마음, 신(信)은 돈을 빌리면 반드시 약속을 지키는 마음이다.” 일본에서 경영 재건의 귀재로 불리는 고쓰카 다케시는 저서 ‘상혼’에서 고객을 기쁘게 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것을 장사의 근본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이윤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절제, 절약을 상도의 기본으로 삼은 개성상인의 상혼이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정직과 신용, 무차입 경영을 중시했다. 고려시대 이후 명맥을 이어온 개성상인 정신은 조선의 상인정신을 대표했고, 개항 후에는 외세 자본에 거세게 반발했다. 박완서의 소설 ‘미망’에 이런 상인정신이 그려져 있다. 상혼은 상인이 소중히 여기는 경영철학이었다.

지금은 상혼이란 말이 변질됐다. ‘바가지 상혼’, ‘악덕 상혼’, ‘얄팍한 상혼’, ‘천박한 상혼’처럼 부정적인 말과 함께 많이 쓰인다. 상혼이라는 말 자체에 돈만 밝힌다는 뜻을 담아 사용하기도 한다.

한 대부업자가 채무자를 협박해 자살에 이르게 한 혐의로 구속됐다. 대부업자는 연 120%의 초고금리로 돈을 빌려준 뒤 협박과 폭행을 일삼았다. 목숨을 끊은 채무자가 3명이나 된다. 불황의 그늘 속에서 자살이 늘자 인터넷에서 독극물을 팔겠다고 광고해 돈을 가로챈 사기범이 잡혔다. 실제로 청산가리를 팔아 자살에 이르게 한 사례도 있다.

불황기에는 악덕 상혼이 판을 친다지만 너무 심하다. 악덕 상혼 차원을 넘어선 범죄다. 우리 사회에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그러나 장사를 그렇게 해선 안 된다. 고객과 자신이 모두 잘되는 것이 진정한 상도다. 옛 상인의 상혼을 되새기게 된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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