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이후 28년 동안 동결된 KBS 수신료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한나라당이 KBS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는 가운데 KBS가 ‘수신료 현실화 추진단’을 출범시키고 수신료 인상을 위한 본격적인 대내외 활동에 들어갔다. 광고를 의식하지 않는 공영방송다운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일부에선 수신료 인상을 빌미로 정부가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시도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에 KBS 수신료 인상에 대한 전문가의 찬반 의견을 들어본다.
찬-공영방송 안정적 재원구조 마련 위해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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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범 인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수신료는 공영방송이 경제적 자유를 확보하고 프로그램의 질적 수준을 담보하기 위해 안정된 재정적 기반을 보유하고, 시장경제원리에 제약받지 않기 때문에 민영방송과 경쟁하며 존립과 발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재원을 마련해 준다. 공영방송이 수신료를 통해서 공영방송의 공적 임무 또는 보편적 서비스의 기능을 수행하며 시청률에 구속받지 않는 질적인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영방송은 공익성을 담보로 한 프로그램을 사회에 제공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감과 함께 다채널 다매체 환경 내에서 시청률의 감소로 정체성의 위기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기술적 환경으로는 디지털 전환을 해야 하는 국면에 처했기 때문에 공영방송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안정적인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실정이다.
국내 수신료와 해외 수신료를 비교해 보면 우리 현재 상황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수신료가 동결된 이후 현재의 월 수신료 2500원으로는 KBS1 한 채널도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KBS의 재원구조에서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영방송으로서 안정된 재원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수신료는 절대적 수준에서 보면 외국에 비해서 매우 낮다. 따라서 우리나라 공영방송이 공정성과 공익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광고로 대표되는 시장의 간섭으로부터 공영방송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키고 무엇보다 안정적인 재원구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수신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찬-물가상승 고려때 수신료만 제자리 납득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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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재 공정언론시민연대 사무처장 |
KBS 수신료는 현실화해야 한다. 수신료는 1981년부터 2500원으로 동결돼 있는데, 이는 여러 면에서 현실적이지 않다. 81년이면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를 넘어선 때이며 지금은 2만달러에 육박한다. 거의 20배에 달하는 경제성장이 있었고 물가를 포함해 모든 것이 상승했는데 수신료만 제자리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TV 이용자가 많아졌고, 전기요금에 합산해 수신료 납부율이 매우 높으며, 납부에 소요되는 비용이 매우 적어 그럭저럭 버텨온 측면도 있지만, 여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KBS가 공영방송임에도 광고수입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공영방송이 공영방송답게 운영되려면 공영적 재정구조에 서 있어야 하고, 이것은 수신료 현실화로 귀착된다. 다만 이는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논리적으로나 감성적인 동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KBS는 두 가지 과제를 일관되게 실천해야 한다. 공공성·공정성이 그 하나요, 경영합리화가 또 하나다. 정당들은 자신들이 집권당일 때는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다가 야당이 되면 반대한다. 그들의 일관성 부재를 탓할 수도 있겠고 KBS의 편파성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아무튼 KBS가 확고하게 공공성·공정성의 길을 가야 야당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야당의 설득보다 본질적인 것은 국민의 공감이다. 국민이 자신들 호주머니 털어 돈잔치한다고 느낀다면 인상은 불가하다. 더욱이 여야의 대화능력이 아직까지 부족한 국회에서 국민적 동의는 결정적일 것이다.
반-완전한 독립성 보장된 후 논의해야 할 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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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욱 광주대 신문방송광고학부 교수 |
한나라당이 KBS 수신료를 인상해 KBS의 재원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한다. 원론적으로 공영방송의 재원구조는 광고보다 수신료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영국 BBC의 경우도 광고 재원을 검토했으나 광고비가 궁극적으로 방송의 공공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해 수신료에만 의존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수신료 인상의 전제와 의도가 거꾸로 출발하고 있다.
KBS의 경우 방송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 수신료 인상을 통해 KBS의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한나라당은 수신료 인상을 통해 KBS를 BBC나 NHK 같은 세계적 공영방송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묻고 싶다. KBS가 BBC나 NHK처럼 확실한 정치적 독립을 보장받고 있는가. 영국 BBC는 포클랜드전쟁 때 영국 정부와의 갈등에서 BBC의 British라는 의미는 British People이지 British Government가 아니라고 해서 정치적 독립성과 공공성을 스스로 지켜냈다. 그런 BBC이기 때문에 수신료에만 의존하는 세계적 공영방송이 된 것이다.
KBS의 수신료 문제는 KBS라는 공영방송의 독립성이 보장된 후에 논의해야 한다. 여기서 독립성이라는 말은 외부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성과 내부의 제작 자율성이 보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수신료 인상은 재정을 통해 KBS를 더욱 통제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수신료 인상 문제는 KBS의 완전한 독립성이 보장된 후에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반-인적 통제 이어 재원까지 통제 의도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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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 |
주제는 해묵었으나 성격은 그렇지 않다. 수신료 인상의 성격은 상황과 시기에 따라 다르다. 경제도 불황인데 무슨 수신료 인상이냐고 반발하는 게 아니다. 지금의 수신료 인상은 ‘공영방송 재원 기반 강화’를 위한 게 아니다. ‘관영화 기반 강화’를 위한 것이다. KBS에 대한 인적 통제에 이어 재원까지 국가가 철저히 통제하겠다는 의도의 발로라는 것이다. 현 정부는 ‘공영방송은 국가의 전유물’로 생각한다. 지난 1년6개월의 시간은 이를 보여주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할 말은 많지만 아주 단순화해 ‘정부에 세금 많이 냈다’고 정 전 사장에게 5년 징역을 때리는 검찰의 엽기 행각은 ‘저질 코미디’라는 점만 지적해 둔다. KBS는 호평을 받던 프로그램 제작진을 해산하고 제작비를 깎고 외주 제작업체를 들볶으며 마침내 흑자를 이뤘다고 발표했다. 수신료 인상 없이 흑자 내는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마치 수신료가 공영방송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핵심 기준인 것처럼 오도돼 있는 상황도 동의를 더 어렵게 만든다. 수신료가 또 하나의 공영방송으로 공적 서비스 제공 책무를 다해야 하는 특정 방송을 사영화하기 위한 기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널리즘이란 용어가 사전에 등재되기 시작한 때는 정치권력을 비판할 수 있게 된 이후였다. 정치권력을 비판하지 못하는 방송과 신문은 비저널리즘이다. 수신료 인상이 비저널리즘을 부추길 것이라고 묻는다면 내 답변은 ‘100%’라는 것이다.
정리=황온중 기자 ojhw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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