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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 새 장르 ‘판페라’ 개척한 오지윤 명창

입력 : 2009-08-13 16:48:57 수정 : 2009-08-13 16: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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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응용한 한국 뮤지컬, 세계무대 설 날 멀지않아"
◇오지윤은 “인간문화재 제도가 전통 계승의 의미는 있지만 스승의 숨소리까지 따라 해야 하는 ‘판박이 예술’로 전락하는 건 문제”라며 “‘네 목에 맞는 소리를 하라’며 제자를 인격체로 대한 강도근 선생의 소리철학을 늘 염두에 두고, 판소리를 변화·발전시키는 데 관심이 많다”고 말한다.
허정호 기자
“오지윤 어린이의 목소리는 바다처럼 깊고, 타고났네.”(8세, KBS 어린이노래자랑 1등상 수여 뒤 작곡가 조운파)

“이놈이 천재여∼.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소리목을 타고났어!”(13세, 강도근 명창이 회갑연 때 명창들에게 오지윤을 소개하며)

“오지윤을 뽑은 이유는 큰 소리 할 재목이기 때문이죠.”(14세, 남원춘향제 전국명창대회 신인부 입상 때 심사위원장 조상현)

서너 살 때부터 어른들 앞에서 동요 부르기를 좋아하던 철없는 초등학생 오지윤을 평생 소리판으로 불러낸 몇 마디 말이다. 성서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했는데, 오지윤에겐 처음부터 어른들의 감당 못할 칭찬이 있었던 셈이다.

“특히 저에게 소리 길을 열어준 강도근 선생의 말씀은 제 발걸음을 판소리에 머물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엄마랑 광한루에 산책 나갔다가 소리를 가르치던 강도근 선생 눈에 띄어 판소리를 배우게 된 이후 하도 엄하게 대해 무섭기만 했는데, 칭찬을 듣고 무척 좋았습니다.”

2009년 여름 혜성처럼 나타나 국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오지윤 명창은 ‘국악 신동’ ‘판소리 천재’ ‘소녀 명창’ ‘남원 애기’ 등 그야말로 수식어가 부족할 정도로 일찍 두각을 나타낸 국악 유망주였다. 1982년 KBS전국학생국악경연대회·전라예술제 학생 부문 최우수상, 1983년 제1회 학생전주대사습 차상, 86년 제2회 동아국악콩쿠르 금상…. 그의 수상 행렬은 거침없었다.

그동안 사사한 명창도 동편제의 거장 강도근(동편제 흥부가, 수궁가)을 필두로 성창순(강산제 심청가), 박귀희(가야금 및 가야금병창), 성우향(춘향가) 등 쟁쟁한 스승들이었다. 자연스럽게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가 됐다. 어느 모로 보나 국악계의 샛별이었다. 더욱이 ‘춘향전’의 고장 전북 남원이 고향이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수려한 외모까지 갖췄다.

그런데 웬일인지 어느 때부턴가 국악 무대에서 그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한양대 음대 국악과를 마친 그는 1999년 느닷없이 지리산에 들어간다. 매일 구룡폭포에 올라 독공(스승한테 한바탕을 뗀 후 득음을 위해 혼자 소리공부를 하는 것)을 했다. 만 3년을 그렇게 지냈다. 독한 마음을 먹지 않고는 해내기 어려운 소리 수련 과정이었다.

하산 후 2001년 전주에 소극장식 국악카페를 차렸다. 전통 찻집과 국악 라이브극장을 겸한 국악카페는 개업 직후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가족의 반대로 금세 문을 닫아야만 했다. 마음을 추슬러 이듬해 전북도립국악원에 적을 두고 공연기획 일을 시작한 오지윤은 더 큰 꿈을 위해 중앙대 대학원에 입학해 예술경영학을 공부했다. 본격적인 부활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오지윤은 처음부터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속셈이었다. 하나는 판소리 원형을 보존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우리 소리의 대중화를 위한 새로운 장르 개척이었다. 판소리는 너무 어렵고 길고 무거워 쉽고 짧으면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소프라노 가수인 친구와 우연히 ‘새타령’을 민요와 소프라노로 바꿔 부른 게 계기가 됐다.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저도 좋았지만 1절은 민요로, 2절은 소프라노로 부르니 관객의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이거면 대중이 쉽게 따라할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래서 나온 장르가 ‘판페라(Pansori+Opera)’다. 전통 판소리와 서양 오페라를 접목해 그가 새롭게 창안한 장르이다. 판소리 다섯 바탕 중 ‘눈대목’을 골라 국악기와 양악기가 합쳐진 오케스트라에 맞게 편곡해 남녀는 물론, 동서양의 조화를 꾀한 장르다.

2005년 상경해 국립국악원에서 판소리 독창회로 목을 푼 그는 2007년 4월 19일 지휘자 박승희와 만나 의기투합해 ‘오케스트라 아리랑’을 창단한다. 도약을 위한 뜀틀을 마련한 것이다. 창단 공연까진 꼭 2년이 더 걸렸다. 올해 2월 국립남도국악원에서 심청가 완창 무대를 성공리에 마친 그는 마침내 4월 19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역사적인 ‘판페라’를 선보였다. 연주자나 관객의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만석인 객석 여기저기서 ‘좋∼다!’ 하는 추임새가 터져나왔고, 앙코르도 쇄도했다.

“판소리를 응용한 한국적 뮤지컬로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무대였습니다. 계속 다듬어 ‘판페라’를 국가브랜드화하겠습니다. 이 외에도 할 일이 많아요. 국립판소리학교도 설립하고 싶고, 오케스트라 아리랑 전용극장도 마련할 계획입니다. 여건이 되면 세계판소리축제도 열고 싶고요.”

현재 오지윤이 가진 것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 지하 연습실이 전부다. 그런데도 그는 큰 꿈을 계속 꾼다. 창단 공연 이후 신문과 방송에서 잇따라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더니, 6월 30일 남산국악당에서 가진 독창회 ‘오지윤의 혼의 소리’가 소문이 나 카라반이에스(대표 권혁종) 등 후원자들이 노크하기 시작했다.

여세를 살린 그는 이달 20일 남산국악당에서 일반인을 위한 다섯 바탕 ‘월월산산(月月山山) 소리마당’을 열고, 이틀 뒤인 22일엔 ‘오케스트라 아리랑’이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지는 ‘2009 TBS 행복콘서트-서울’의 1부 개막 무대를 책임진다.

‘월월산산’은 12월까지 매달 1회씩 오지윤의 판소리 감상과 판소리 따라 배우기, 해설, 관객 참여 프로그램을 개설해 판소리의 외연을 넓히는 무대다. 공연 때마다 장애인과 독거노인, 소년노녀가장, 재외국민을 100명씩 초청해 한국문화를 체험케 하는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수만명의 관객을 두고 벌이는 ‘TBS 행복콘서트’에선 감옥에 갇힌 춘향의 헝클어진 머리를 묘사한 ‘쑥대머리’를 판페라로 들려주고,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람 노래’로 만든 국악가요를 뮤지컬 배우 홍경수가 부른다. 창단 공연 4개월 만에 모든 국악인들이 서고 싶은 무대를 갓 태어난 오지윤의 ‘오케스트라 아리랑’이 우뚝 서는 것이다. 소리꾼 오지윤의 거침없는 질주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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