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아역 배우가 성인이 되어서 어린 시절의 미모와 매력을 간직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청년시절 팽팽하고 매끈한 피부와 풍성한 머리 숱을 가졌던 남자가 중년이 되어서도 미모와 매력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중년에 접어든 미남들은 꽃미남들보다 높은 희소성을 자랑하곤 한다. 이병헌, 기무라 타쿠야, 조쉬 하트넷은 모두 서른이 넘은 미남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함께 출연한 화제작 <나는 비와 함께 간다> 마치 미중년의 모범 답안처럼 보인다.
미남의 정석, 이병헌

1970년에 태어나 한국 나이로 올해 마흔, 불혹을 맞은 배우 이병헌은 놀라운 남자다. 갓 스무살에 데뷔해 벌써 2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잘 생겼을 뿐 아니라, 넘치는 남성미와 모성애를 자극하는 연약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숨막히게 섹시하다. 그래서일까, 배우로서도 독보적인 위치에서 혈기 넘치는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말 그대로 솜털이 보송보송한 스무 살 전후로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행운을 거머쥘 수 있는 사람은 연예계에서도 한 줌에 지나지 않는다. 신선함과 젊음이 빚어낸 반짝거림이 제 역할을 다 하고 나면, 그 한 줌의 사람들 중 절반 정도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거나 다른 길을 걷는다. 팔자 좋은 베짱이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즐겨도 충분히 사랑 받는, 반짝거리는 시절부터 개미의 근성으로 남몰래 노력을 하는 사람들만이 조금 더 오랫동안 사랑을 받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천운과도 같이 좋은 기회를 얻은 한 줌의 사람들만이 다시 진정한 스타가 되어 대중의 뇌리에 자신을 기억시키게 된다. 이는 행운과 노력의 합작품이다. 하지만 이 또한 유효기간은 존재한다. 강력한 방부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만큼 변함없이 눈부셨던 외모에 세월의 흔적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유효기간이 지나 불후의 자산인 외모가 어느덧 중력의 흐름에 순행하기 시작할 무렵을 중년이라 부른다. 이때가 되도록 여전히 소년 시절의 미모와 매력 그리고 인기를 유지하는 사람은 정말 한 줌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병헌은 이 한 줌도 되지 않는 사람에 속한다.
<나는 비와 함께 간다>에 출연한 주인공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그는 ‘거짓말처럼 젊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다. 대신 연륜이 겹겹이 쌓인 그의 얼굴은 눈빛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느낌을 표현하고, 강력하게 전달한다. 또한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이 나오게 만드는 그의 몸매는 꾸준한 노력과 지독한 자기관리의 결정체이다. 하지만 촘촘하게 밀집된 근육들이 초콜릿 같은 형체를 드러낼 때조차 그의 표정에는 서둘러 과시하고 싶어하기 보다 자신의 외형을 통해 보다 극적으로 관객을 자극하고, 관객과 공명할 줄 아는 자의 여유가 있다.
데뷔 시절 이병헌은 한시라도 빨리, 하나라도 많이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고 싶어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젊은 청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병헌은 굳이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아도 그를 알고 싶어 안달하고, 여전히 그의 작은 미소에 열광하는 팬들을 세계 곳곳에 만들고 있다. ‘이병헌’이라는 스타로서의 단일 컨텐츠로 팬들을 매료시키고, 동시에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무대로 배우로서 자신의 자리를 차곡차곡 만들어가는 그는 팬들의 환상과 자신의 이상을 동시에 실현하는 드문 미남자이다. 또한 스타로, 배우로서, 싱글남으로서 이제까지 한국에서 가져보지 못한 ‘미혼의 미중년’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훌륭한 개척자이기도 하다.
아이돌의 정석, 기무라 타쿠야

열도가 사랑하고, 아시아를 관통하는 일본의 슈퍼급 아이돌 그룹 스마프 출신의 기무라 타쿠야는 어떤 의미에서 이미 하나의 전설과도 같다. 매년 한 잡지사에서 조사하는 ‘안기고 싶은 남자’ 순위에 10년 넘게 1위를 독식해오고 있을 뿐 아니라 출연작마다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하는 시청률의 남자이며, 결혼을 하고서도 여전히 식지 않은 인기를 자랑하는 전대 미문의 아이돌이다.
1972년생인 그는 일본 나이로 서른 일곱 살이며, 1988년 16살의 나이로 데뷔했으니 나이는 비록 이병헌보다 어리지만 연예계 입문은 한참 선배일 뿐 아니라 활동 기간도 더 길다. 기무라 타쿠야가 소속된 스마프 역시 20년 가까이 해체 없이 왕성하게 활동 중인 국민 아이돌 그룹이다. 게다가 스마프의 멤버들은 20대를 전후한, 아이돌로 한창 시절이 지나고 난 이후 오히려 더욱 큰 인기를 구가하며 여전히 아이돌로서 최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스마프의 멤버로는 춤, 노래, 진행, 요리, 운동, 콩트, 코미디 등 안 해 본 것이 없지만 배우로서 기무라 타쿠야는 정말 반짝반짝 빛이 난다. 아이돌 그룹의 일원으로의 자신과 배우로서의 자신을 철저하게 분리할 줄 아는 그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는 아이돌의 유명세와 고정관념을 뒤집으며 출연하는 작품마다 눈이 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다작은 아니어도 꾸준히 작품에 출연하여 시대에 따라, 나이에 따라 단계별로 그의 모습을 마음껏 볼 수 있다. 활동을 시작한지 2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매년 뒤늦게 그에게 빠져 팬이 된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이처럼 그의 열정적인 활동 덕분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소속사인 쟈니즈에서는 처음으로 칸느 영화제에 참석하기도 했다. 기약 없는 촬영기간으로 유명한 왕가위 감독의 작품 <2046>을 위해 무려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참여한 대가였다.
이번 작품인 <나는 비와 함께 간다>에서는 <히어로>에 이어 이병헌과는 두 번째 만남이었다. 아시아를 관통하는 두 명의 소중한 미중년 남자 배우를 한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게다가 멋진 중년이라는 것 외에 이 두 남자의 캐릭터는 거의 겹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각자 마르지 않는 샘처럼 풍부한 매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는 성공한, 미중년 남성 스타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의 자산이자 영역인 셈이다.
할리우드의 스타, 조쉬 하트넷

1978년 생인 조쉬 하트넷은 이병헌이나 기무라 타쿠야에 비해 한참 어린 편이다. 지극히 미국적인 블록 버스터 <진주만, 2001년>으로 스타덤에 올랐을 때 그의 나이는 겨우 스물 세 살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할리우드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한 편의 영화와 함께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진주만>의 성공 이후, 그는 재빨리 자신의 매력을 원초적인 부분까지 건강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영화 <40 데이즈 40 나이트 (40 Days And 40 Nights, 2002)>를 찍었다. 이 영화는 그를 향한 당시의 뜨거운 인기를 고스란히 증명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 작품을 선택했을 무렵 그에게는 신중한 생각이나 결심이 있었을 리 없다. 필요치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 수년 동안 다양한 작품들을 찍으며 또 화려한 연애를 하며 때로는 흥행에 무관한 배우가 되었다가 때로는 가능성 충만한 배우로 새롭게 발견되기도 하면서 그는 점차 성장하고 성숙해졌다. 아시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고심을 해본 적도, 할 이유도 없었을 애매한 위치를 가진 할리우드의 스타가 아시아의 감독과, 아시아의 배우들과 함께 영화에 출연하기까지는 본인 스스로의 의지와 신중한 결심이 있었을 것이다. 이는 그가 적어도 또래의 할리우드 남자 배우들과는 차별화 된, 자신만의 매력과 존재감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천부적인 외모와 재능 그리고 천운의 기회를 만나 스타가 되는 사람은 한 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조쉬 하트넷이 속한 할리우드는 ‘대체 가능한 스타’들이 언제든지, 잔뜩 준비된 꿈의 공장이다. 그래서 이제 갓 서른이 넘은 조쉬 하트넷은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할 필요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주저하지 않는, 두려워하지 않는,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도전 정신이야말로 단순히 곱상하고 잘 생긴 청년이 긴 생명력을 지닌 미중년으로 발돋움 하는데 가장 필요한 조건 중 하나이다.

부산영화제에 이병헌과 기무라 타쿠야, 조쉬 하트넷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은 흥미로웠다. 이병헌의 팬 중에는 일본인들도 많았고, 기무라 타쿠야를 지지하는 팬들 중에는 한국인들도 많았다. 똑같이 열광하긴 했지만 조쉬 하트넷에게는 이병헌이나 기무라 타쿠야처럼 충성도 높은 팬들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아시아의 별들과 함께 한 이번 작품을 통해 조쉬 하트넷은 새삼 그에게 흥미를 느끼고, 앞으로도 그를 눈 여겨 볼 조금 특별한 아시아의 팬들을 갖게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또래의 다른 할리우드 남자 배우들이 갖지 못한 시장을 공략할 뿐 아니라 이제 막 서른을 넘어 배우로써의 제 2막을 시작해야 하는 향후, 동서양(의 팬들)을 아우르는 글로벌한 미중년으로 발전할 것도 기대할 수 있다.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피폐한 중년 남성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는 요즘, 한 명의 세계적인 미 중년 남성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흐뭇한 일이다. <나는 비와 함께 간다>는 이 기대감을 충족할 수 있는, 이 시대에 딱 맞는 남성들이 총집합한 미중년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 중 또 한 명의 흐뭇한 미남 배우가 있다. 1981년 생으로 중년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젊은, 촉촉한 눈망울이 일품인 배우 여문락이다. <무간도2-혼돈의 시대>에서 양조위의 아역으로 출연하기 했던 여문락 역시 꽃미남 스타에서 출발해 차근차근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그 또한 부디 무사히 서른의 터널을 통과해 미중년으로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꽃미남 애호 칼럼니스트 조민기 gorah9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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