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집 아저씨’가 돌아왔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에서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교통법규를 준수한 시민에게 양심냉장고를 선물하는 ‘이경규가 간다’, 선행을 실천하는 시민을 찾아가는 ‘칭찬합시다’로 전성기를 이끌고, 독서 열풍과 0교시 폐지 등의 성과를 낸 ‘!느낌표’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다가 현장에서 물러났던 김영희(50) PD가 ‘일밤’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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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 작업을 밥먹듯 하느라 제대로 씻지 못한 탓에 개그우먼들에게 ‘쌀집 아저씨’라 불리던 김영희 PD는 시청자에게도 김영희란 이름보다 쌀집 아저씨 이미지로 더 친숙하다. 이제원 기자 |
해진 청바지에 털모자를 푹 눌러쓴 채 푸석푸석한 얼굴로 나타난 그는 “프로그램 때문에 새벽까지 경남 의령에서 멧돼지 잡다 오느라 세수도 못했다”며 털털하게 웃었다.
2005년 MBC 최연소 예능국장에 취임하면서 현장을 떠났던 그에게 관리직에서 일선 PD로 돌아온 소감을 묻자 “불안해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하지만 기분만은 좋다”면서 “체력이 넘쳐난다”며 눈을 반짝인다.
사실 현장 복귀가 결정되면서부터 그는 ‘일밤’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새로운 시간대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오후 11시대에 어르신들이 보는 프로그램으로 구상까지 했다.
김 PD는 “일선 PD로 몰래카메라를 하고 CP로 양심냉장고를 하고 이번이 세 번째”라며 “‘일밤’은 내게 이상(理想)이고 최고의 가치지만 이제는 새로운 PD가 맡아 그 영광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밤은 안 하고 싶다. 하지만 회사가 명령하면 한다’고 했는데 결국 회사에서 시키더란다.
MBC는 추락한 ‘일밤’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명장’을 투입하고 대대적인 지원을 결정했다. 지난 9월 21일부터 핵심 제작진만 31명으로 구성된 팀이 76박77일간 매일 새벽 2∼3시까지 아이디어를 짜냈다. 12월 6일 새롭게 선보이는 ‘일밤’은 이례적으로 155분이란 긴 시간으로 편성됐다. 전문 엽사들과 함께 멧돼지 사냥을 떠나는 ‘대한민국 생태 구조단, 헌터스!’, 퇴근하거나 회식 중인 아버지들을 만나 가슴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들어보는 ‘우리 아버지’, 국내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단비’ 등 3개 코너로 나뉘어 진행된다.
‘일밤’의 오랜 부진에 대해 김 PD는 “경쟁 프로그램과의 차별화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이 비슷한 포맷으로 연예인의 사생활 폭로전이나 막말 방송을 양산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김 PD는 “뭔가 다른 걸 만들려고 고민하다 보니 따듯하게 해주는 프로가 없는 것 같았다”면서 “새로워진 ‘일밤’의 지향점을 ‘유쾌하고 따뜻하게’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나도 예능하는 딴따라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라면서 “재미는 기본이고 거기에 따뜻하고 훈훈한 이야기를 보태고 싶다”고 부연했다.
‘이경규가 간다’ ‘칭찬합시다’ ‘!느낌표’ 등 전작에 이어 ‘김영희표 예능’이 부활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그는 이번에 ‘일밤’에서 늘 함께 해왔던 명콤비 이경규나 절친한 강호동·유재석 등 최고의 MC들과 함께 일하지 않는다. 김 PD는 “세 사람이 이미 같은 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어 전화도 못했다”면서 “하지만 새로운 얼굴들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신했다.
현장에 뛰어든 그의 피는 여전히 뜨겁지만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김 PD는 “떠나기 전보다 카메라가 4배 이상 많아져서 놓치는 장면이 없어진 반면 편집도 어렵고 현장을 지휘하고 장악하기도 힘들어졌다”면서도 “그런데 난 목소리가 워낙 커서 소리 한 번 지르면 정리가 된다”며 웃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이 현장에서 직접 뛰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현장에 계속 있고 싶지만 내가 본의 아니게 후배 PD들의 창의성이나 개성을 가로막지는 않을까 걱정됩니다. 후배들을 위해 길을 터줄 필요도 있지 않나 싶고요. 굉장히 서글프지만 이것(일밤)이 자리 잡으면 현장에 있는 마지막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양=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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