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우스, 최고의 지략가 오디세우스, 최고의 맹장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에 참전하게 되자 그리스 진영의 사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모처럼 아내를 잃고 상심에 빠져 분노를 주체 못하던 메넬라오스도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고맙네. 오디세우스, 아킬레우스, 그대들은 나의 자랑스러운 영웅들이며 나의 소중한 친구들일세. 함께 힘을 합해 도둑고양이 같은 트로이 놈들을 멋지게 쓸어버리세."
세 사람은 한 곳에 손을 모으고 한동안 서로의 체온을 교환했다.
그리스 군의 총사령관은 메넬라오스의 형 아가멤논이 맡았다. 아가멤논은 미케네의 왕으로 메넬라오스의 형이면서 한 편으로는 메넬라오스의 동서이기도 했다. 아가멤논의 아내는 클리타임네스트라, 헬레네의 언니였기 때문이다.
출병 날짜가 정해졌다. 그리스의 모든 영웅들이 전쟁에 참여하면서 그리스 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출병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고, 모든 준비는 완료되었다. 트로이로 가려면 바닷길을 택해야했으므로 병사들을 실어 나를 배를 항구에 정박시켰다. 1000척의 배가 도열하여 출항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스의 영웅들은 각자 고루 배에 나누어 타고 출발 명령을 기다렸다. 대함대의 모습을 뭍에서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처럼 마음이 든든하다고 메넬라오스는 생각했다. 이제 내일 아침이면 출항을 하여 수일 이내에 트로이에 상륙할 것이고, 격렬한 전투가 벌어질 테지만 승리는 그리스의 것이라고 메넬라오스는 생각했다.
메넬라오스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이내 잠이 오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헬레네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앞으로 다가오는 헬레네를 그는 얼른 일어나서 달려가 손을 내밀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허상이었다. 그는 허탈한 심정으로 자리에 누웠다.
잠이 들었던 것일까. 어느 새 먼동이 터오는 것 같았다. 그와 함께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굉장한 바람이었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바닷가로 달려갔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출항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가 바닷가로 왔을 때 그리스 병사들은 출항준비를 마쳐놓고 있었다. 하지만 거센 바람 때문에 출항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강한 바람과 위험한 조수의 장소, 북풍이 부는 한 출항하기가 불가능한 아울리스에 항에 바람은 계속 불고 있었다.
그날 하루 종일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지만 계속 바람이 불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다음 날이 되었지만 그날도 여전히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바람은 그렇게 며칠간 계속 되었고, 출항은 언제 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바람의 날이 수일간 계속되자 병사들은 우왕좌왕하며 웅성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배를 매어놓은 밧줄이 끊어져 떨어져 나갔고, 부서지는 배도 생기기 시작했다. 시간만 흘려보내면서 병사들의 사기도 뚝 떨어졌다.
그리스군은 절망적이었다. 메넬라오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에서 가장 예지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불러오게 했다. 그리스 최고의 점쟁이 칼카스도 불렀다. 칼카스는 바람이 계속 부는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바닷가에 바람이 잘 들어오지 않는 영험한 곳에 단을 쌓고 제를 올렸다. 정성스럽게 준비를 마치고 칼카스는 바람의 원인을 신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리스 최고 점쟁이 칼카스에게 들려온 신의 음성은 이러했다.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그리스 군이 화내게 하였도다. 아르테미스가 사랑하는 동물 중 하나인 토끼 한 마리를 새끼와 함께 그리스 군이 죽였구나. 그 일로 여신이 화를 내어 바람을 일으키고 있으니 여신의 분노를 달래주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바람을 진정시키고 트로이로 안전한 항해를 다짐받는 유일한 방법은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희생제물을 바쳐야한다.”
“희생제물이라면?….”
“그리스 군이 아르테미스 여신을 화나게 했으니, 당연히 총 사령관인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쳐야만 하겠구나.”
칼카스는 신의 음성을 듣고 아가멤논 앞에 나아가 사실을 알렸다.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쳐 아르테미스를 달래야 한다는 예언을 듣자 아가멤논은 마음이 착잡했다. 동생의 일로 자신의 딸을 희생한다는 것을 선뜻 허락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리스 전체의 명예와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그리스 군에게는 소름끼치는 일이었지만 이피게네이아의 아버지 아가멤논에겐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일 내가 내 집의 기쁨인 내 딸을 죽여야만 한다면, 제단 앞에서 살육된 처녀의 피로부터 흐르는 검은 강물로 더럽혀진 아버지의 손. 그 손으로 내가 어찌 살아간단 말인가….“
메넬라오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일로 조카의 희생을 바랄 수도 없었다. 아무리 피를 나눈 형제라지만 형에게 자신을 위해 딸을 희생하도록 해달라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는 단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문제는 간단했다. 전쟁을 위해 출항하려던 계획을 포기하는 일과 이피게니아를 희생시키는 일, 두 가지에서 하나를 선택해야했다. 그 결정은 그리스 최고 사령관 아가멤논에게 달려있었다. 메넬라오스는 아내를 구하러 가느냐, 아니면 포기하느냐의 문제였고, 아가멤논은 사랑하는 딸을 희생시키느냐, 형으로서 동생을 도와 그의 아내를 찾아주고, 그리스의 명예를 회복하느냐의 문제였다.
고민하고 있는 동안에도 거센 바람은 잠시도 쉬지 않고 있었다. 자칫하면 그리스 군의 함대들이 출항을 하기도 전에 파손될 지경이었다.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아가멤논은 결정했다. 만일 자신이 신의 예언을 거부한다면 그의 위상은 그리스 내에서 한없는 추락을 맞을 것이 당연했다. 한편으로 그의 마음에 야심이 솟구쳤다. 비록 동생의 아내를 구해 오는 일이긴 했지만, 그가 트로이를 정복한다면 자신이 총사령관으로 있는 그리스를 세계 최고의 강국으로 만들 수 있고, 자신이 세계 최고의 왕이 될 수 있으리란 야심이 가슴 속에서 일어났다. 모든 일은 그의 선택에 달려있었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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