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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수다떨고 땀흘리고… 오지 사람들 마음의 문 열어”

입력 : 2010-01-12 21:42:40 수정 : 2010-01-12 21: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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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다큐 독보적 영역 구축한 EBS ‘세계테마기행’ 함정민PD 저녁 9시뉴스의 시청자를 앗아간 것은 8시뉴스나 최근 약진하고 있는 케이블 채널만이 아니다. EBS ‘세계테마기행’은 EBS의 시청률 사각지대였던 매일 저녁 9시 시청자를 불러모은 효자 프로그램. 매주 월∼목요일 오후 8시50분부터 40분간 방영되며 “젊은층의 뉴스 시청 시간대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프로가 그간 소개한 나라만 90여개국 400편. 다음달 말로 만 2년을 맞는 ‘세계테마기행’의 원년멤버로 제작의 주축을 담당해온 함정민(38·김진혁공작소 제작본부장) PD를 만나 막후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그마한 체구의 함정민 PD는 ‘세계테마기행’ 촬영 일정 내내 보통 60kg 넘는 촬영장비를 거뜬히 지고 다닌다. 카메라 감독, 출연자, PD까지 단 세 명이 팀워크를 발휘해야 하는 초미니 제작팀이기 때문이다. 함 PD는 “제작진이 굉장히 고생했다. 방송에 진심이 담겨 있다”는 시청자 소감 한 마디에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사전연출도, 리포터식 멘트도 없는 1인칭 주인공

알려진 나라의 알려지지 않은 속살, 여행객의 발길이 닿지 않은 오지를 찾아가는 ‘세계테마기행’은 KBS ‘도전 지구탐험대’와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는 또 다른 솔직담백한 내레이션, 연출되지 않은 다큐멘터리식 영상으로 여행 다큐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11일부터 방영 중인 ‘사진작가 김연용의 따뜻한 섬 민다나오’ 편은 물론 앞서 알래스카, 동티베트, 요르단, 남인도, 가이아나 등을 연출한 함 PD가 지난 한 해 해외촬영에 나가 있었던 기간만 5개월. 그는 “요즘 ‘1박2일’ 등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유행하는 오지 야영, 출연자와 스태프의 동고동락, 못 먹고 못 자는 고행은 우리 프로의 기본”이라고 했다. 한 여행지당 피디, 출연자(주인공), 촬영감독 3명이 팀을 이루는 초미니 제작진이 16∼20일 찍어 만드는 프로의 특성상 ‘오지에서는 함께 살아 돌아오기 위한 동지의식’이 안 생길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테마기행’ 장면들.
지난 연말 국내 방송사상 최초로 본격 촬영에 나선 남미의 가이아나에서는 파리 만한 모기떼 속에 해먹을 걸고 야영을 해야 했다. 브라질 판타날 습지에서 3주간 해먹에서 야영하며 모기떼에 이골이 났던 함 PD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전화나 이메일이 안 되는 지역이 많은 프로의 특성상 연출이나 사전섭외가 거의 없다. 여행지도도 예상 루트를 벗어날 때가 많다. 가이아나 편은 예정됐던 파키스탄행이 현지 폭탄테러로 좌초되면서 출발 열흘 전에 ‘급조’된 여정. 하지만 전투적인 취재로 찾아간 끝에 포착한 가이아나의 게잡이 마을 사람들 편은 방영 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그들 앞에서 카메라를 비추는 내 손과 눈이 미안할 만큼 잔혹한 운명을 목격했다”고 떠올렸다.

“제 자신이 힘들 때마다 500원짜리 게를 목숨 걸고 잡는 가이아나의 게잡이 마을 사람들, 하루에 6000원을 벌기 위해 60kg이 넘는 무거운 참치를 져나르면서도 행복하게 웃는 민다나오 어시장 사람들의 운명을 생각합니다. 그러고 나면 지금 (내앞에 놓여 있는) 이 커피 한잔에 감사하게 되죠.” 

■출연자는 사막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사람

‘세계테마기행’은 문화예술계 프로들을 주인공으로 섭외해 그의 시점으로 여정을 떠나는 방식. 이런 포맷이 인기를 끌면서 시청자 게시판에는 출연과 함께 희망 여행지를 요청하는 각계각층 시청자들의 자기소개가 수없이 올라와 있다. 출연자 섭외 기준을 묻는 질문도 많다. 함 PD는 “해당 여행지에 대해 평소 관심이 있거나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 위주로 선정한다”면서 “외국어가 능통하지는 않아도 (어떤 식으로든) 소통이 가능하거나 사막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을 만큼 자생력 강한 사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르단·가이아나 편에 출연자로 나온 사진작가 유별남씨의 경우 이슬람 전문 사진작가라서 이슬람인들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 소통이 수월했다.

‘세계테마기행’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매회 출연자들마다 현지인들과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고 함께 땀흘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 비결은 있다. “카메라부터 들이대진 않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수다떨기를 보통 3시간 정도 하다 주민들이 카메라에 관심을 보이면 비로소 본론으로 들어가는 식이죠. ” 

■여성 다큐 PD, “남들이 10개 찍을 것을 15개 찍는다”

‘세계테마기행’을 이끌어가는 8명 PD 중 홍일점인 함 PD의 연출작이 방영되면 게시판에는 “여성 PD가 대단하다”는 의견이 빗발친다. 팔라우 촬영 때는 대형 가오리 한 마리를 찍기 위해 카메라감독과 함께 물 속에 뛰어들어 수중카메라 4대를 돌렸고, 늘 60kg이 넘는 짐을 지고 강행군하는 그의 근성이 영상으로 빛을 발하는 덕분이다. 하지만 본인이 강조하는 것은 부드러운 카리스마. 본인은 여성 PD라서 “남들이 10개 찍을 것을 15개 찍을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오지 촬영을 가도 덩치 작은 여성 PD라서 현지인에게 위압감을 덜 주는 것 같습니다. 왜소한 여성이 제작진의 리더라는 사실을 신기해하며 쉽게 다가와 한 마디라도 더 던져주지요.”

그가 꼽는 불편한 점은 단 한 가지다. 화장실 문제. “오지기행에서 7시간씩 화장실 없는 배를 타고 가며 모기떼가 살갗을 노리는 원주민마을을 누비고, 목이 마르면 물수건으로 입술을 적시며 최대한 안 마시는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매달려 찍은 촬영 테이프가 여행지마다 60분짜리 테이프로 50개는 나온다. 현지에서는 매일밤 촬영분을 보며 내일의 전략을 짜느라 하루에 4시간도 채 못 자지만 ‘세계테마기행’은 그에게도 ‘언제든, 무엇에든 나를 낮추고 한 발 먼저 다가가야 하는 PD의 소명을 느끼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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