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한국의 대전환’ 특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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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서울대 명예교수로 있는 우리나라 보수·진보의 좌장 안병직 사단법인 시대정신 이사장(오른쪽)과 백낙청 계간 ‘창작과 비평’ 편집인(왼쪽)이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의 사회로 시대정신 회의실에서 특별대담을 하고 있다. |
이번 특집좌담은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이 사회를 맡고 노재봉 전 서울대 교수, 이기동 동국대 교수, 김주성 한국교원대 교수, 박지향 서울대 교수가 참여했다.
좌담은 1910년과 2010년-식민지에서 세계중심국가라는 대주제하에 ① 글로벌리즘과 한국자본주의의 성립 ② 문명권의 이동과 제도적 변화 ③ 고도성장과 산업화 ④ 캐치·업과 한국사적 배경 이라는 소주제로 진행됐다.
좌담 참석자들은 과거 1910년의 식민지화에서 2010년 오늘날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기까지의 100년 동안,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혁명적인 변화를 거쳤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후발자본주의국가였던 한국이 고도의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이루고 민주주의사회로 이행할 수 있었던 독특한 경험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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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창 교수 |
이기동 동국대 교수는 역사발전의 계기로는 창조와 전파가 있는데, "한국사회의 근대적인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식민지시대 일본에 의해 수용된 외래문화를 비주체적이라고 비하만 할 것이 아니라, 이를 소화할 수 있었던 한국사회 내부의 수용능력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pp.20-21.)
김주성 한국교원대 교수는 “한국은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민주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권위주의체제로 회기하지 않았던 것”이라면서, “한국은 산업화를 통해 중산층을 키우고 그 중산층을 기반으로 민주화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pp.60-61.)
박지향 서울대 교수는 “우리 역사에서 제일 부족한 부분은 전제왕조시대에서 식민지를 거쳐 바로 민주주의로 넘어가면서 자유주의시대가 없었던 것”이라며, “서양에서의 자유주의 시대는 개인의 독립과 자립, 개인의 이기심과 공덕심의 갈등 문제를 해결해가는 단계였으나, 개발 국가가 오래 지속된 우리사회는 강한 국가와 약한 개인의 대립으로 인해 개인의 자립과 올바른 판단, 타인에 대한 권리의 인정 등 자유주의의 절대원칙이 확립될 수 없었다”며 우리사회의 갈등이 야기되는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진단했다.(pp. 62-63.)
전체적인 좌담내용은 과거 100년간의 우리나라의 혁명적인 변화는 자주적인 근대화에는 실패했지만, 식민지화와 저개발국 상황을 겪으면서 선발자본주의 발달과는 다소 상이한 “캐치·업(catching-up)”이라는 과정을 통해 고도의 경세성장을 달성했으며, 그러한 한국사적 배경으로 전통적인 문화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자본’이 있었기에 압축적인 선진화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특집논문 역시, ‘20세기의 한국의 대전환’이라는 주제 하에 100년 동안의 한국의 국제관계의 변화와 우리나라의 제도개혁, 경제성장과 산업화, 대전환기의 한국사적 조건 등 4가지 측면을 고찰한 논문이 실렸다.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는 ‘근현대사와 국제관계’라는 논문에서 “구한말 서구의 팽창을 가능케 한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국제정치적 요인”이었다면서, “조선의 식민지화는 동서양 문명 충돌의 와중에서 자력으로 서구 근대문명을 수용하고 캐치·업 하려는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일본제국의 식민지 지배를 공고히 하려는 ‘식민의 국제정치’와 우리 민족의 국권을 회복하려는 ‘독립의 국제정치’의 충돌이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할 때까지 지속되었다”고 기술하고, 건국 이후 “일제의 강제합병에 의해 국제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던 우리 민족은 주권을 회복하고 미국주도의 서구 문명권 내에서 독자적으로 국가의 발전을 모색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망국과 흥국의 100년 사를 교훈삼아 국제정치의 환경변화에 제대로 적응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주익종 박사는 ‘대전환과 제도개혁’이라는 논문을 통해 20세기 대전환기의 한국의 제도개혁을 전통사회-식민지시기- 건국과 부국기- 개발연대 이후의 시기로 나누어 고찰하고 있다. 주 박사에 따르면 “전통사회의 경우, 재산권 제도에 중대한 허점이 있었으며, 대한제국시기에도 황제의 전제권만 규정하고, 효율적인 제도 마련에 실패하여 식민지화 되었으며, 그 결과 이민족에 의해 제도적인 개편을 강요당했다”는 것이다. 특히 “일제는 일본인의 한국 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해 주기 위한 다양한 사유재산법령을 마련했으며, 이에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조선인도 근대 민법을 적용받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해방 후 대한민국 건국에서 개발연대에 이르기까지 경제주권을 회복한 이후 민주헌정체제와 시장경제체제 수립과 경제개발을 위한 각종 제도개혁에 대해 분석한 후, 주 박사는 “100년의 한국의 제도개혁에서 재산권이 확립되었을 때, 국민 개성의 자유로운 구현과 경제의 고도성장이 가능했다”고 결론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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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 명예교수 |
이영훈 서울대 교수의 ‘대전환의 한국사적 조건’이라는 논문은 “20세기 대전환기에 한국이 절반이나마 나름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을 환경과 문화의 층위에서 시장경제체제의 이식과 발전에 유리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다”는 문화적 구조에 주목하고 있다. 이영훈 교수는 한국의 발전은 “사유재산권이 사회적 가치로 성숙해 있었으며, 그것을 세대 간에 상속하여 잇는 가계형태가 성립하였고, 이러한 내재적 조건을 기반으로 외래문명을 수용하고 이를 변용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1960년 대 이후 고도 성장기에는 시장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었다”면서, 특히 “개발체제의 성립과 전개를 주도한 최고권력자나 실무관료 집단이 보유했던 한국의 전통문화와는 다소 생소한 사고가 중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쟁점으로는 2010년 실시되는 지방선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기초자치단체선거의 정당공천제 문제에 대한 찬반의견을 실었다.
김영태 목포대 교수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당공천제가 지방자치에도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강조하고,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이 배제된 인물중심의 선거는 정치적 지속성과 체계성을 확보하기 어려우며, 책임정치를 실현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면서 “많은 문제점을 보이고 있는 정당정치를 어떻게 정상화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정당공천제 폐지를 논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지적하며 정당공천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황주홍 강진군수는 이에 대한 반론으로 기초지방선거에서의 정당공천제가 폐지되어야 할 증거로 “첫째, 기초선거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한다는 70~80%의 여론조사결과와, 둘째로 기존 정당공천제의 배타적 수혜자인 국회의원들 스스로 폐지해야 한다고 고백하고 있다”는 점을 들면서, “주민자치를 기반으로 하는 기초단위의 풀뿌리 생활정치가 ‘성실한 책임행정’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정파적인 정당정치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며 정당공천제 폐지 반대 주장에 반박했다.
일반논문으로는 박효종 서울대 교수의 ‘친일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윤덕룡 선임연구원의 ‘북한 화폐개혁의 의미와 시사점’, 홍성기 아주대 교수의 ‘PD수첩 1심 판결에 대하여’라는 3편의 논문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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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직 명예교수 |
윤덕룡 선임연구원의 논문 ‘북한 화폐개혁의 의미와 시사점’은 지난 해 11월 30일에 단행된 북한의 화폐개혁이 갖는 의미와 앞으로의 전망을 담고 있다. 북한의 화폐개혁은 “일차적으로 그 동안 북한의 소비재 부문에 도입된 시장경제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목표로 시행”되었으며, 이는 “북한 내 정치적 여건이 사회통제 강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임을 시사” 한다면서 그러나 이번 화폐개혁으로 북한이 기대하는 효과는 단기에 그칠 것이고, 북한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안고 있는 정책적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금융개혁을 포함한 더 적극적인 개혁이 시급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2010년 1월 20일에는 2008년 4월에 방영된 MBC ‘PD수첩’의 광우병 관련 내용이 ‘허위사실에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업무방해’라는 검찰의 기소에 대해 모두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대해 홍성기 아주대 교수는 ‘PD수첩 1심 무죄판결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통해, 이러한 1심판결의 의미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2008년 4월 한미 소고기 협상이 체결될 당시 이러한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피고측이 제출한 그 어떤 증거도 공식적 권위를 지니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사건을 담당한 문성관 판사는 주저앉는 다우너 소 동영상, 인간광우병 의심환자인 아레사 빈슨의 사례, 한미 쇠고기 협상의 졸속처리, 인간광우병에 취약한 한국인 유전자 M/M형, 특정위험물질(SRM) 범위 등의 MBC의 5가지 보도 내용에 대해 객관적 사실에 부합한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홍성기 교수는 문 판사가 채택한 증거 중 다우너 소 동영상만 보더라도 증거채택에 ‘오류’가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PD 수첩’이 보도한 주저앉는 다우너 소 동영상의 원래 내용은 “동불보호단체 활동가가 위장 취업하여 찍은 것으로, 도축 전 검사를 통과한 후 주저앉은 소를 재검사하지 않고 도축하기 위해 소를 학대하는 비인도적 행위가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동영상에 등장하는 다우너 소들이 광우병에 거렸을 가능성은 거의 없음에도 다우너 소들을 광우병 소라고 보도한 내용은 허위사실을 적시”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사건을 담당한 문 판사가 “증거의 적합성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면서 “공정한 재판을 위한 사법부의 독립은 공정한 재판을 할 능력이 있을 때에만 의미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어 앞으로 ‘PD수첩’에 대한 2심 판결에 중요한 함의를 던지고 있다.
한편, 이번호에서는 대한민국의 선진화와 통일 등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기본과제에 대해 ‘국민통합적 의식’을 모색한 특별대담을 기획했다.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국민통합적 인식은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특별대담은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가 사회를 맡았으며, 안병직(安秉直·74) 시대정신 발행인과 백낙청(白樂晴·72) 계간 ‘창작과 비평’ 편집인이 이념을 넘어 허심탄회한 의견을 나눴다.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건국세력이나 산업화 세력에 대한 역사적 평가 등 여러 가지 점에서는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도 있었지만, 보수-진보의 이념을 대표하는 두 원로학자 간에 상당한 부분에서 합의와 동의를 이끌어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먼저 안병직과 백낙청은 “국가적 출발점이 대한민국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국의 중심적 역할과 위상을 설정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더불어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복잡한 형성과정을 거친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한 균형적이고 통합적인 인식이 필요”하다는 데에도 동의했다. 북한사회가 상당부분 피폐해졌다는 현실인식에도 큰 차이가 없었으며, 남북문제 및 통일문제에 있어서도 대한민국이 주도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지만 “흡수통일은 지양”해야 하며 “선진화와 급작스러운 통일은 양립하기 어렵고,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점진주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데 의견을 같이 했다. 또한 여전히 대한민국은 경제성장이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두 원로 간의 대담을 통해 우리 사회에 이념갈등을 초월하여 대화와 소통의 인식의 토대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이 밖에도 문학작품을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의 문화평론과 유익한 도서에 대한 서평 등 풍성한 읽을거리가 마련되었다. 특히, 김종헌 배재대 건축학부 교수의 “석조전은 대한제국의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열쇠”라는 문화평론은 올해가 한일합방 100년이 되는 해임과 동시에 덕수궁(경운궁) 석조전이 준공된 지 100년이 되는 해라면서, 석조전을 한국의 역사적 변동과정에서 문화적이고 역사적으로도 살아있는 상징적인 공간으로서 조망하고 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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