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서구 대중문화와 지성사의 일부가 됐는지 규명 능지처참-중국의 잔혹성과 서구의 시선/티모시 브룩 외 지음/박소현 옮김/너머북스/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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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 브룩 외 지음/박소현 옮김/너머북스/2만3000원 |
티모시 브룩 영국 옥스퍼드대 중국학 교수, 제롬 부르곤 프랑스 리용대 아시아·오리엔트연구소 연구원 등이 함께 쓴 ‘능지처참’은 이 같은 ‘처형의 스펙터클’로 시작한다. 흥미로운 것은 프랑스 군인들에 의해 사진으로 보존된 이 이미지는 서구 사회를 떠돌면서 ‘중국적 잔혹성’ 혹은 ‘동양적 야만성’을 상징하는 기호로 재생산됐다는 사실이다. 1905년 청나라는 서구 형법을 도입해 능지형 같은 혹형을 폐지했음에도 그 잔영은 여전하다. 특히 집행 통계를 내놓지 않아 국제앰네스티(AI)로부터 세계 최다 사형 집행국으로 지목받고 있는 지금의 중국이기에 그 잔영은 더욱 더 뚜렷하게 다가온다. 잔학하고도 충격적인 아시아 곳곳을 담은 다큐멘터리 ‘쇼킹아시아’ 시리즈를 언뜻 떠올리게 하는 끔찍한 장면은 그야말로 ‘쇼킹차이나’라는 잔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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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집행인이 죄인을 능지처사하는 장면을 묘사한 일러스트. |
이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문화권에 속했던 조선왕조와 그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현재의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들은 극형을 일반화했던 명나라의 기본법전인 대명률(大明律)을 기초로 삼은 조선왕조의 법률에도 능지형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1812년 홍경래의 난 때 주모자 9명이 능지처참에 처해졌다는 내용, 상하이에서 암살당한 조선말 개화파 김옥균의 시신은 육시(戮屍)의 형벌로 절단됐다는 점 등을 흥미롭게 여기며 실체가 왕웨이친의 능지형과 같은 형태도 행해졌는지는 한국 연구자의 몫으로 남겼다. 사형이 확정된 연쇄살인범 강호순 등 사형수는 존재하지만, 1997년 이후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한국은 사실상 사형 폐지국이다. 하지만 헌법 속에 사형제는 여전히 살아 있다. 책은 신체의 절단은 형벌의 논리를 잃어버렸고, 형벌의 목적이 복수가 아닌 교정에 있다는 저자들의 믿음을 전하는 듯하다. 책 속에 일관되게 흐르는 능지형을 둘러싼 오독(誤讀)의 역사 비판에도 불구하고, 서양인이라는 점에서 저자들이 말하는 ‘형벌의 세계사’는 오리엔탈리즘 요소로 오해받을 소지가 없지 않은 것 같다. 이를 염두에 둔 듯 저자들은 형벌제의 역사적 맥락과 현지인들의 인식을 우선 고려하지 않은 연구는 다양한 외부의 기억에 의해 왜곡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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