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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기자의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 〈53〉 이택광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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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6-14 17:03:53 수정 : 2010-06-14 17: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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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눈높이 맞춘 문화해설… 한국문화비평 업그레이드
이번에 인터뷰한 학자는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전공 교수다. 문화비평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학자다. 이론과 현실을 접목시키며 사회를 들여다보고 있는 그를 만나 문화평론의 가치를 탐색해보기로 했다. 이 교수를 만나기로 했다고 하자 주변의 반응이 다양했다. 당장 신문사 안팎의 평가가 달랐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연령 등에 따라 갈렸다. ‘대중문화를 논하는 게 학자의 일이냐’는 의문에서부터 ‘작은 분석 대상을 매개로 한국의 정치와 사회 구조를 설명하는 지식인’이라는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다행인 점은 독서량이 많거나 좀 더 고민하는 부류에서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많이 나왔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꼭 있었다. ‘이택광은 한국 문화평론의 수준을 끌어올린 교수’라고.

#동시대의 문제를 고민하는 이론적 사유

◇이택광 교수는 개념은 답습하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 스스로 만들어낸 ‘인문좌파’의 개념도 그렇다. 이 교수는 “인문좌파는 정치적 좌파가 아니다”며 “인문좌파는 기존의 우파와 좌파의 이념 모두를 회의하는 독특한 사유의 주체로, 합의된 공동체의 윤리를 의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남제현 기자
만남은 한국과 그리스의 월드컵 경기를 며칠 앞두고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이뤄졌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화제로 올렸다. 당시 그는 영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한국대표팀의 선전에 그도 열광했다. 그때 언론이 주목한 게 ‘붉은악마’였다. 그는 “BBC 등 영국 언론은 당시 한국의 경기보다는 붉은 악마의 응원 모습에 더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월드컵은 집단적 응원의 형식을 통해 안전한 일탈과 과잉이 가능하도록 했다”며 월드컵을 통해 21세기 한국 사회를 읽어냈다.

“2002년 월드컵은 우리 사회에서 개인들을 행동의 ‘주체’로 만들어줬지요. 적어도 즐거움을 느낄 때는 ‘평등주의’가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내가 즐기는 만큼 당신이 즐기고, 당신이 즐기는 만큼 내가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드러난 것입니다. 안전한 집단화에서 즐거움을 느낀 것이지요.”

그러면서 2002년 월드컵의 평등주의는 2008년 촛불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2008년 촛불은 월드컵의 평등주의가 정치적인 것의 모습으로 귀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월드컵의 주체가 촛불로 다시 태어난 것을 알아야 제대로 된 평가와 이를 수용하는 정치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그가 보기에 ‘월드컵과 촛불’에는 스포츠와 문화, 사회와 문화, 정치와 문화의 여러 의미가 용해돼 있다. 그의 설명을 따라가면서, 붉은악마와 촛불 세대가 연결된다고 여기게 됐다. 그런 점에서 그의 문화연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설명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세계를 설명하고 해명하는 일은 그간 철학이 담당해 왔던 분야이다. 철학의 특성상 구체성이 결여될 수 있었다. 이 교수는 문화비평으로 철학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현실에 바탕을 두며 이론을 설명하고, 이론적 근거에 따라 현장을 풀어낸다. 그의 설명과 글에서 현실과 이론의 절묘한 결합을 느끼는 이유다.

#‘작은 문화’와 ‘큰 문화’를 엮어 설명

이런 지향점이 있기에 그의 관심은 ‘큰 문화(Culture)’와 ‘작은 문화들(cultures)’로 동시에 향한다. 술과 삼겹살, 거리응원, 붉은악마, ‘이태리타월’로 불리던 때수건 등을 바라보면 우리의 현장 문화가 드러난다. 생활에 바탕을 둔 이런 작은 문화들은 큰 문화를 설명하는 열쇳말이기도 하다. 이는 또한 동시대의 문제를 고민하는 이론적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문화 연구를 위해서 대중이 모이는 시장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하찮게 보이는 것에도 이론이 들어있거든요. ‘한국인이란 무엇인가’류의 큰 질문만 말고, ‘A와 사랑할 수 있는가’ 등 구체적인 작은 질문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 작은 질문에서도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사유가 가능합니다.”

골목에 존재하는 작은 대상을 문화연구로 삼는 것은 한국에서는 아직 활성화된 연구 분야가 아니다. 영문학을 전공한 그가 문화연구에 나선 것은 영국 유학이 계기가 됐다. 영국은 문화연구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그가 공부한 셰필드대학도 그중의 한 곳이다.

“셰필드대학 주변은 노조가 발달한 지역입니다. 철강산업이 활발했는데 한국의 포항제철(포스코) 같은 개발도상국 기업과 경쟁에서 밀리면서 산업이 죽었지요. 그런데 그곳이 지금 문화의 도시로 바뀌고 있어요. 집값이 저렴해 거주하기 좋은 조건이 된 것입니다.”

사방으로 관심의 촉수를 둔 그를 보면서 세계적인 저술가 빌 브라이슨을 떠올렸다.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柄谷善男)이나 중국의 왕후이(汪暉)에 비견할 수 있겠다. 빌 브라이슨은 물론 일본과 중국의 두 저자도 일반적인 현상에서 이론을 설명하는 탁월한 저술가로 인정받고 있다. 이런 저자들이 있기에 대중의 지식수준이 높아지게 된다. 대중이 지식을 갖게 되는 시대는 다른 말로 하면 대중정치시대다. 이 교수가 생각하기에 대중의 정치적인 능력은 탁월하다.

“대중의 정치적인 능력은 어쩌면 아나키즘인지도 몰라요. 스스로 권력화하지 않고 권력에 저항하거든요.”

#가치체계 균열 불러일으키는 게 인문학적 사유

그는 영어와 학문의 본고장에서 석·박사 학위를 5년 만에 취득했다. 영문과 출신이지만 힘들지는 않았을까. 그의 대답이 실용적으로 들렸다.

“외환위기 때 영국 정부에서 아시아 출신 학생에게 장학금을 대거 내걸었어요. 운 좋게 공부할 수 있었지만, 장학금 수여 기간 내에 공부를 마쳐야 했습니다.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지요. 다만 영국으로 유학가기 전에 준비한 게 있다면, 영문 소설 100권을 읽은 것입니다.”

이 교수는 “최근 우리 사회에 우울한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지만, 흐름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며 “2년 전 ‘명박산성’에서도 오히려 희망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법의 테두리를 마련해 정부나 시민이나 폭력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의 합의가 있어서다. 촛불로 대표되는 여러 일들은 시민들을 공부하게 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그에게는 ‘인문학은 위기다’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시민들의 앎에 대한 욕구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을 그는 현장에서 확인하곤 한다.

“요즘은 오히려 ‘인문’이라는 키워드를 넣어야 책이 팔린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예요. 시민들이 깨달은 것입니다. 학자나 교육당국이 백 번 외쳐도 안 됐지만 독자 대중이 스스로 자각하니까 가능한 거예요. ‘내 스스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지식을 습득한 것이지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지속할 수 없는 ‘티핑포인트’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정사안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각과 수준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런 흐름에 만족할 수는 없다. 이 교수는 그 너머의 시각을 주문한다. 우리를 지켜보는 눈들이 많아서다.

“우리끼리 하품만 해도 쳐다보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크게 성장했는데, 세계인의 인식과 대우에 오히려 우리가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것은 피겨 선수 김연아가 잘 보여줍니다. 우리가 열광하는 김연아는 한국만의 김연아가 아니거든요.”

이 교수의 책을 읽어보면 삶과 인문학에 대한 그의 깊은 속내가 전해진다. 그는 신간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문학의 목적은 사유 그 자체이다. 인문학은 예술이나 사랑처럼 사회에 속하지만 그 사회의 가치체계에 균열을 초래하는 ‘진리’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이택광 교수는…

경희대 영미문화전공 교수. 문화평론가. 1968년 경북 칠곡 출생. 부산대 영어영문과 졸업. 영국 워릭대 철학 석사·셰필드대 문화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 취득. 대중문화 분석을 통해 정치·사회 문제를 해명하고 있다. 대중문화 분석과 문화연구를 통해 한국 사회 현실과 내부를 깊이 있게 바라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저서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무례한 복음’,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 ‘세계를 뒤흔든 미래주의 선언’,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민족, 한국 문화의 숭고대상’, ‘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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