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찾아든 사랑, 그 사랑으로 행복하고, 그 사랑으로 행복에 겨워 살아가던 한 여인, 나라를 이끄는 왕이었음에도 잃어버린 사랑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비련의 여인 디도, 그런 사정을 모르는 채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인 인들을 이끌고 다시 바다로 나갔다. 딱히 어느 곳이라고 정해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어려운 항해를 그는 계속해야 했다. 그들을 지켜줄 수호신이 허락하는 땅, 그 땅에 그들은 정착하게 될 것이다.
아이네이아스 일행은 디도가 다스리는 나라를 떠나 꽤 오랜 항해를 한 끝에 시칠리아 섬에 이르렀다. 배를 대기에 적당하고, 경치도 좋았다. 아이네이아스는 일단 그 곳에 대한 느낌이 좋았다. 그는 일단 그곳에 배를 대게 했다. 배를 뭍에 댄 후 아이네이아스는 심복들 몇 명만 데리고 도시로 들어섰다. 잔뜩 긴장한 채 그들은 걸음을 옮겼다. 생각보다 그곳은 평화로웠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으나 그들을 경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들은 약간은 마음이 놓였다. 용기를 얻은 아이네이아스는 심복들을 이끌고 그 도시의 궁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문지기에게 트로이에서 왔다는 것을 밝히고 왕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잠시 후 그곳의 왕이 반가운 얼굴로 친히 그들을 맞으러 나왔다.
"오! 아이네이아스 장군! 저는 이곳의 왕 아이게스테스입니다. 트로이 전쟁 때 바로 장군을 따라 싸웠지 않습니까. 모르시겠습니까?"
"아.........."
아이네이아스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트로이에서 전쟁을 할 때 자신의 밑에서 그리스군과 싸웠던 동료였다. 아이게스테스는 원래 시칠리아 섬에서 태어났으나 트로이 전쟁에 참여했었다. 그의 어머니가 트로이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크로니소스 강의 신이다.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부탁을 받고 아이게스테스도 트로이 전쟁에 참여했는데, 그때 아이네이아스 장군의 휘하에 배속되어 열심히 싸웠던 것이다. 결국 전쟁이 그리스의 승리로 끝날 무렵 친구인 에리모스와 함께 트로이를 탈출하여 시칠리아 섬으로 오게 되었다. 그는 그간의 일들을 아이네이아스에게 이야기 했다.
시칠리아에 도착하여 그는 이곳에 정착하여 도시를 건설하고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곳은 시칠리아 섬 서부에 위치하고 있었고, 아프로디테 여신의 신전이 가까이 있었다. 이곳의 지명은 드레파논인데,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아케스타라고 부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이네이아스를 반겨 맞아 주었다. 그래서 그날은 아이네이아스 일행이 모두 섬으로 올라와 후한 대접을 받았다. 그들은 모처럼 피로를 풀며 여유를 찾았다. 하지만 아이네이아스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했다. 그대로 있다가는 다시 해이해져서 주저앉고 말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다시 배를 타고 이탈리아를 향해 항해를 계속했다. 그들이 막 항해를 시작했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다에 폭풍이 일기 시작했다. 자칫 배가 뒤집어지고 난파될 지경에 처했다. 이런 모습을 본 아프로디테는 너무도 안타까웠다. 정처 없이 항해를 계속하는 모습에 아프로디테는 가슴이 아렸다. 자기 아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다 폭풍으로 죽을 것 같아 안타까웠다.
다급해진 그녀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찾아가 자기의 아들 아이네이아스가 이제는 바라는 목적지에 도달케 하고, 항해의 위험을 끝마치게 해달라고 청원했다. 그러자 포세이돈은 그녀에게 한 사람의 생명만 희생물로 제공하면 그렇게 할 것이며 다른 사람들은 살려줄 것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아프로디테는 이번 폭풍우만 피하게 해주면 그것을 허락하겠다고 약속했다. 포세이돈은 아프로디테의 약속을 얻어내고 바다에 폭풍을 멈추었다. 때 아닌 폭풍을 만난 트로이인들은 항해를 멈추고 결국 시칠리아로 되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시칠리아 섬 앨리마에 기항하여, 거기에서 폭풍이 멈추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헤라는 파리스에 대한 원한으로 트로이가 완전히 소멸되기를 원했다. 게다가 아프로디테의 아들 아이네이아스를 살려두는 것은 더 더욱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폭풍으로 아이네이아스 일행을 없앨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가 실패하자 분노가 솟았다.
트로이인들은 다시 항해를 시작했다. 헤라는 다시 포세이돈을 부추겨 폭풍을 일으키도록 부추겼으나 포세이돈은 거절했다. 그러자 헤라는 다시 계략을 생각해냈다. 키잡이만 없애면 나머지 트로이인들은 항해를 하지 못하고,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소멸될 것으로 생각했다.
"포세이돈, 어차피 당신은 제물을 한 사람 받기로 했잖소. 그 제물을 내가 정하는 것이 어떻겠소, 내가 선택하여 저들 중 한 사람을 택하여 그대에게 바치게 할 것이오."
"그렇게 하시오. 하지만 아이네이아스는 손을 대면 안 되오."
포세이돈의 허락을 받은 그녀는 팔리누루스를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키잡이를 몰래 없애서 배를 위기로 몰아 넣을 생각이었다. 그러면 포세이돈과의 약속과는 관계없이 모두를 없앨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녀는 팔리누루스를 없애려고 잠의 신 하프노스를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 포르바스의 모습으로 변장하게 한 다음 그곳으로 보냈다. 헤라의 명을 받은 히프노스는 팔리누루스에게 다가서며 이렇게 말했다.
"팔리누루스, 바람은 순조롭고 해면은 평온하다. 그리하여 배는 순조롭게 항해하고 있으니 좀 쉬어라. 피곤할 것이니 잠깐 누워서 쉬어라. 키는 내가 대신 잡아줄 테니 어서 좀 눈이라도 붙여라."
하지만 팔리누루스는 손사래를 치며 그의 말을 거절했다.
"해면이 평온하다느니, 순풍이라느니 그런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마시오. 나는 그들이 배반하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아 왔소. 이런 변덕스러운 일기에 항해를 누구에게 맡길 수 있단 말입니까?"
팔리누루스는 고집을 꺾지 않고 계속하여 키를 잡은 채로 밤하늘의 별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자 히프노스는 그를 설득할 수 없음을 알고 나뭇가지를 꺼내어 그의 머리에서 흔들기 시작했다. 그 나뭇가지는 다름 아닌 '망각의 강'의 신 레테 강가의 이슬에 젖은 나뭇가지였다. 잠의 신 히프노스가 그 나뭇가지를 그의 머리 위에서 흔들기 시작하자 팔리누루스의 눈은 자꾸만 감기기 시작했다. 그는 잠이 오는 것을 쫓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가 아무리 눈을 부비며 잠을 쫓으려 했으나 감기는 눈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히프노스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그의 몸을 슬쩍 밀었다. 그러자 졸음에 몸을 비척이던 팔리누루스는 넘어지며 바다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손에 키를 잡은 채로 떨어지고 말았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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