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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에서 웃음 주는 발레리노 실제로 보면 힘차고 멋지답니다”

입력 : 2011-03-22 21:52:33 수정 : 2011-03-22 21: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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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C ‘돈키호테’ 주역 엄재용·이승현씨 KBS2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발레리NO’에서 몸에 착 달라붙는 흰색 타이즈를 입은 발레리노 네 명이 ‘그것’을 가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면, 객석은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까르르 뒤집어진다. 실제 공연에서는 발레리노들이 훨씬 격렬한 동작으로 무대 위를 뛰어다녀도 고개를 돌리거나 얼굴을 붉히는 이가 없다. 사실 속으로는 민망하지만 짐짓 못 본 척, 민망하지 않은 척하는 군중 심리를 개그로 꼬집은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발레리노들은 타이즈를 입는 것이 정말 안 부끄러울까, 부끄럽지 않은 척하는 걸까.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발레단 연습실에서 25일부터 시작되는 ‘돈키호테’의 두 주역 이승현(왼쪽)과 엄재용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그들의 생각과 실생활을 엿보기 위해 유니버설발레단(UBC) ‘돈키호테’의 두 주역 엄재용(32) 수석무용수와 이승현(24) 드미 솔리스트를 21일 UBC 연습실에서 만났다. 무용계 일각에서는 개그 프로 때문에 발레리노가 희화화된다는 우려도 적잖은데 그들은 쿨하게 고개를 저었다.

“개그를 통해서라도 발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면 좋다고 생각해요. 다음엔 어떻게 나올까 기대하면서 챙겨보고, 우리끼리 ‘승현스키∼’ 하면서 장난도 쳐요.”(엄재용)

엄재용은 개콘 출연진들에게 발레의 기본 동작과 용어 등을 직접 지도한 장본이기도 하다. 민망한 부위까지 적나라게 드러나는 발레복이 실제로 부담스럽지 않으냐고 묻자 두 사람은 “처음엔 창피했지만 조금 지나면 전혀 못 느낀다”고 했다.

“중학교 때 키가 너무 작아 키 큰다는 말에 어머니가 발레를 시키셨어요. 축구선수가 꿈이었고 발레리노는 게이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타이즈 안에 소프트라는 T자형 보조팬티까지 입으라고 해서 도망도 갔죠.”(이승현)

하지만 그는 발레를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콩쿠르에 나가 입상하면서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고는 재미를 붙였고 주목받는 발레리노로 성장했다. 엄재용은 아이스하키를 하다가 헬멧을 벗어던지고 발레 타이즈를 입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하고 싶어졌다고는 하지만 발레리나였던 어머니(김명회 서원대 교수)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터.

“의상이 아니라 ‘발레는 여자가 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가장 힘들어요. 사실 남자들의 춤이 굉장히 파워풀하고 멋있는데 말이죠. 발레라면 사람들은 여자, 토슈즈만 떠올리는데 발레리나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뒤에서 고통스럽게 받쳐주는 발레리노도 눈여겨봐주셨으면 좋겠어요.”(엄재용)

“남자도 토슈즈 신냐고 많이들 묻는데 우리는 발레리나들을 들어올려야 해서 토슈즈는 신지 않아요.”(이승현)

아름다운 발레리나에게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가 섭섭하지 않으냐는 우문을 던졌다.

“솔로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파트너를 더 돋보이게 해주는 남자 무용수가 진짜 잘하는 거예요. 파 드 두(Pas de deux·2인무)는 남자무용수 없으면 못해요.”

‘받쳐주는 역할’은 사실 고되다. 역기 50㎏과 50㎏인 사람을 들어올리는 것은 천지 차이. 역기는 선수가 다치지 않는 자세로 들어올리지만, 발레의 리프트는 발레리나가 다치지 않는 자세로 들어올리고 내려줘야 한다. 발레리나들이 발목이나 무릎을 다치는 반면 발레리노들은 목, 어깨, 허리 부상이 많은 이유다. 리프트가 힘들어 발레를 포기하는 이도 적지 않다고 한다. 상대역의 발레리나 몸무게에 민감해질 법도 하다.

“리프트할 때 ‘끄응’ 소리만 조금 나도 발레리나들은 갑자기 안 먹어요. 괜찮다고 얘기해줘도 자기들이 알아서 체중조절을 해서 신경 쓰이진 않아요.”(이승현)

이들은 발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고맙기도 하지만 금세 끓어올랐다가 순식간에 식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도 적지 않았다.

“발레리노를 알리기 위해서 지난해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도 나갔어요. 발레가 순식간에 떴지만 인기가 떨어지더라도 서서히 떨어졌으면 좋겠어요.”(엄재용)

“최근 대학에 무용과가 점차 사라지면서 사실상 발레는 쇠퇴기나 다름없어요. 이럴 때 발레에 대한 관심이 지속돼서 관객도 늘고, 무용하려는 사람도 많아졌으면 좋겠어요.”(이승현)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 엄재용

선화예술 중·고교와 워싱턴 키로프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2000년 입단. 제6회 루셈부르크 국제무용콩쿠르 2인무 부분 은상, 제31회 동아무용콩쿠르 일반부 은상, 제38회 전국신인무용콩쿠르 일반부 금상, 발레협회 당쉐르 노브르상(2005) 등 수상. 주요 출연작은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라 바야데르’ ‘지젤’ ‘호두까기인형’ 등.

■ 이승현

세종대학교와 워싱턴 키로프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2009년 입단. 한국 발레협회 신인상(2010), 동아 무용콩쿠르 1등(2009) 3등(2006, 2008), 광주 국제무용콩쿠르 1등(2006) 수상. 주요 출연작은 ‘돈키호테’ ‘오네긴’ ‘호두까기인형’ ‘라 바야데르’ ‘춘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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