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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철의 시네 리뷰]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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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3-31 21:23:35 수정 : 2011-03-31 21: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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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서로를 갈구했지만, 그만큼 쉽게 상처 받아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은 섬뜩하고 이질적이다. 이 영화에서 십대는 여느 성장영화에서 다뤄지는 것과는 달리 누구나 통과해야만 하고 통과했을 법한 ‘인생의 한때’가 아니라 그 자체로 독립된, 하나의 완결된 세계로 그려진다. 영화는 외부세계로부터 그들의 삶을 면도날로 예리하게 도려낸 뒤, 그들만의 내밀한 관계망 속으로 깊이 천착해 들어간다. 그들은 더 이상 가족, 학교,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중요한 것이 따로 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삶을 결국 지배한다.

세 친구가 있었다. 사이좋은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미세한 뒤틀림과 어긋남으로 그들 사이는 금이 간다. 한번 금이 가자 걷잡을 수 없이 쪼개진다. 그들 중 한 아이가 죽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추적하기 위해 두 친구를 만난다. 영화의 기본 줄기는 이렇듯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파수꾼’은 이야기의 줄기를 토막토막 잘라서 정교하게 재배치한다. 다중플롯과 복합 내러티브를 통해 예측불허의 시퀀스로 재조직한다. 단순히 시간과 사건을 재배치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전혀 다른 정서와 의미의 세계를 창출해낸다.

이러한 영화의 흐름을 지배하는 구조는 기태(이제훈)의 죽음과 관련된 미스터리다. 누가, 왜, 어떻게 죽었는지를 묻기 위한 영화가 아닌데도 영화는 관객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수없이 유발한다.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헛다리를 짚게 마련이지만 어쩔 도리 없이 이끌려 간다. 그러다 이러한 미스터리 극적 구조가 감독의 의도적인 오인 전술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차릴 때쯤이면 영화는 다른 질문을 던지며 잘못 들어선 길을 수정하게 만든다. 이런 과정을 겪은 후에야 관객들은 본격적으로 세 친구의 내면으로 들어가게 되며 영화는 관객들에게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재구성하도록 이끈다.

결국 세 친구 사이의 관계망에 얽힌 섬세한 감정을 읽어내는 것이 영화적 맥락에 근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기태, 희준(박정민), 동윤(서준영)의 관계는 겉보기에는 아주 단단한 결속인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정말 깨지기 쉬운 유리알 같은 것이었다. 이들은 사소한 오해와 순간의 엇갈림으로도 쉽게 무너지고 만다. 오랜 시간을 같이 지냈지만 서로의 가장 절실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기태는 희준이 당한 모멸감을 가볍게 여겼고, 희준은 기태의 가장 아픈 곳이 무엇인지 모른다. 동윤은 자신이 받은 상처의 크기로 기태와의 시간을 전면 부정해버린다.

“잘못된 건 없어,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

사실 기태로 인해 그들의 결속이 와해되기 시작하지만, 마지막까지 그들의 결속을 지키려 했던 것도 기태가 유일했다. 이는 그가 이들과의 결속 외의 그 어떤 영역도 구축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타인에 대한 인정욕구를 폭력에 의존하여 지속시킬 수밖에 없었던 기태는,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알면서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치명적인 오류는 폭력성 그 자체보다는 세상 모두가 등을 돌려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받아 줄 친구가 있다고 믿은 순진함에 있다. 그것은 그만의 바람일 뿐이었다. 희준과 동윤에게 거부당한 그의 영혼은 삶의 의미를 한순간에 잃고 만다.

보는 이의 가슴을 쓰라리게 하는 이 영화의 비극성은 이들의 미숙한 소통방식에서 비롯된다. 이들 사이에 빚어진 오해는, 어찌 보면 내 친구도 나와 같을 것이라는 손쉬운 동일화가 가져온 필연적 결과일지도 모른다. 세상살이의 영악함을 아직 체득하지 못한, 혹은 자기포장과 합리화에 익숙하지 못한 이들은 조그만 일에도 전면적으로 모든 것을 걸어버린다.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법이다. 알몸으로 만난 이들이기에 누구보다도 뜨겁게 서로를 갈구했지만, 그만큼 쉽게 피 흘리고 치명적으로 상처받는다.

‘파수꾼’은 이 뜨거운 시기 소년들의 특별한 삶을 윤리적 단정 없이 조명한다. 이들의 아픔과 미숙함과 깊은 절망 뒤에서 그들과 함께 흔들린다. 그들의 세계와 영토 안에서 그들 가까이에 카메라를 대고 그들의 비명소리에 함께 공명한다. ‘파수꾼’에는 그들을 지켜 줄 파수꾼이 없다. 가족도, 학교도, 사회도, 친구도 결국은 아니다. 말장난 같지만, 그들을 지키는 유일한 파수꾼은 이 영화 ‘파수꾼’인 셈이다. 영화 ‘파수꾼’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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