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 너무 잘해 쫓기는 기분..밴드 음악이 한류 이어갈 것"

뮤지션 남궁연(44)을 수식하는 단어들이다.
그간 본업이 뮤지션이었다는 것을 잊게 할 만큼 다방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가 오랜만에 '친정'에 돌아왔다. KBS 2TV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톱 밴드'의 음악 코치를 맡아 매주 토요일 음악팬들과 교감하고 있는 것.
개성 강한 지도법과 함께 '슈퍼스타K3가 악마의 편집이라면 톱 밴드는 천사의 편집' '동종업자들끼리 미주알고주알 지적하는데 참다 안되면 (심사위원들과) 생방송에서 기타 대결을 하겠다' 등 거침없는 입담으로 주목받는 그를 최근 서울 을지로에서 만났다.
그는 "음악은 원래 형한테 배워야 한다. 도제식으로 기술을 익히면서 인생도 같이 배워야 좋은 뮤지션이 될 수 있다"면서 "'톱 밴드'를 통해 1990년대 이후 사라진 선.후배간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복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남궁연과의 일문일답.
-- 2주 후면 결승이다. 남궁연 코치가 생각하는 우승 후보는.
▲지명도나 앞으로의 가능성 등을 따져볼 때 팀명에 알파벳 'o'나 't'가 들어간 팀이 우승할 것 같다. (대부분의 밴드가 조건을 충족한다고 되묻자) 그런가? 하하. 사실 누구라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분명한 건 코치나 심사위원 모두 밴드 문화를 이어갈 '적자'를 찾고 있다는 거다. 실력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그래서 예전에 우리가 누린 밴드 문화의 전성기를 재현할 수 있는 팀이 우승할 거라 생각한다.
-- 우승보다는 '그 이후'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 '톱 밴드'가 기존 음악 오디션과 다른 점은 오디션 자체보다는 '그 후'를 더 중시한다는 점이다. 다른 프로그램은 오디션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지만, 우린 한국 밴드 음악의 역사를 짊어질 '후계자'를 찾는 데 더 관심이 있다. 결승전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밴드 음악의) 역사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시청률에 둔감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 있는 게 아닐까.
-- 코치를 맡은 네 팀의 밴드 중 유일하게 4강에 오른 '포(POE)'가 베이시스트의 탈퇴로 위기를 맞았는데.
▲큰일났다. 하필이면 4강전 상대도 우승 후보인 게이트 플라워스다. 하지만 4강부터는 자작곡 경연이니 편곡으로 승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팀 이름도 아예 '폭식('포'와 2인조 록밴드 '톡식'의 합성어)'으로 바꿀까 생각중이다.(웃음)
멤버 탈퇴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많은 분이 어떻게 (경연) 중간에 팀을 나갈 수 있냐고 하지만, 사실은 그게 밴드다. 밴드는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공동운명체가 아니다. 언제든, 누구든 떠날 수 있다. 이번에 '포'를 떠난 김윤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냥' 떠날 때가 됐다고 판단해 떠난 거다.
-- '코치 남궁연'은 주로 어떤 역할을 하나.
▲대신 혼나는 일을 한다.(웃음) 아이 대신 혼나는 엄마의 심정으로 심사위원들의 지적을 흡수하고 또 고민한다.
코치라고 하니 우리가 대단한 거라도 가르치는 것 같지만, 사실 밴드 음악의 특징 중 하나는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밴드는 이미 음악적 지향점이 정립된 존재다. 여러 사람이 모여 합의한 컬러가 있으니 선생 마음대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우린 그저 각 밴드가 지금 하는 음악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조언만 해 준다.
-- 코치 제의를 수락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음악은 원래 형한테 배워야 한다. 나만 해도 (록밴드) 백두산의 보조로 시작해 음악을 배웠고, 신해철 씨도 김태원 선배 담배 심부름부터 시작해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그렇게 형, 동생으로 지내면서 손기술뿐 아니라 왜 음악을 해야 하는지도 함께 배웠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문화가 사라졌다. 요즘 음악하는 친구들은 (대학) 실용음악과나 학원에 가서 배우더라. 그게 안타까웠다. 무대에 설 때의 마음가짐은 어때야 하는지, 실패한 공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 학교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것들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래서 '심사위원을 해 달라'는 걸 코치하겠다고 자원했다. 밴드 문화를 되살리고 싶었다.
--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했나.
▲물론이다. 코치와 밴드뿐 아니라 심사위원과 제작진까지 모두 끈끈해졌다.(웃음) 출연자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3, 4년치 경험을 3개월 만에 했다는 거다. 그만큼 '압축 성장'을 했다. 사실 '톱 밴드'가 아니면 어딜 가서 신대철 씨 같은 사람한테 개인 교습을 받겠나.(웃음)
-- 특정 심사위원에 대해 '편향적이다' '지나치게 출연자를 깎아내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등 심사평을 두고 말이 많다. 코치로서 심사평에 대한 불만은 없는지.
▲간담회 때 동종업자끼리 너무한다며 투덜거렸지만, 그건 말 그대로 투정이다. 그분들이 워낙 정확하게 약점을 짚어내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 덜 혼나려고 저희도 나름대로 여러 가지 연막을 치지만 안 속더라.(웃음)
송홍섭 위원장이 점수에 박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송홍섭 선배가 제일 중시하는 건 밴드의 '앙상블'이다. 젊은 연주자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앙상블을 깨는 실수를 저지르기 쉬운데, 송 선배는 그 부분을 놓치지 않는 거다. '톱 밴드'를 나가서도 먹고 살 수 있는 완벽한 밴드, 즉 앙상블이 살아있는 밴드로 만들고자 그렇게 혼을 내는 거다.
비틀스는 레드제플린보다 테크닉이 떨어지지만, 앙상블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완벽했다. 그래서 비틀스가 아직도 '가장 위대한 밴드'로 불리는 거다.
-- '톱 밴드'는 음악 마니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만 시청률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청률 집계 방식이 좀 변해야 하는 거 아닌가. 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시대에.(웃음) TV 시청률은 낮을지 몰라도 온라인에서는 난리다. 트위터나 유튜브, 디씨인사이드에서는 톱 밴드 소식이 쏟아진다. 우린 이미 충분히 화제다.(웃음)
-- 얼마 전 기자간담회에서 '슈퍼스타 K3가 악마의 편집이라면 우리는 천사의 편집'이라고 말해 화제가 됐는데.
▲슈스케를 비판하기 위한 말은 아니다. 난 슈스케 팬이다. 하지만 예리밴드 사태를 보며 '키워주겠다며 뽑은 밴드를 그렇게 가혹하게 대할 필요가 있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편집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웠다.
-- '톱 밴드'가 밴드 음악의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평이 많다.
▲제일 기쁜 건 사람들이 '밴드를 해도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사실 '밴드' 하면 대개 가난부터 떠올리지 않나. 그런데 '톱 밴드'를 통해 실력 있는 밴드들이 많이 소개되고 인기도 얻으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다.
-- 지금의 열기를 이어가는 게 가능하다고 보나.
▲저는 밴드가 차세대 한류 아이콘이 될 거라 믿고 있다. 일본 방송사에서 '톱 밴드' 구입 문의가 들어오는 등 분위기가 좋다.
사실 밴드 음악은 산업적인 측면에서 봐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작사·작곡·프로듀싱이 가능한데다 의상비 같은 부대 비용도 아이돌에 비해 훨씬 덜 든다. 톡식처럼 아이돌 스타 못지않은 스타성까지 갖춘 팀을 계속 발굴한다면 밴드가 한류의 선봉장이 될 수 있을 거다.
-- 오는 22∼23일 서울 난지 한강공원에서 열리는 '에버그린 뮤직 페스티벌'에서 한상원, 김도균, 신대철 등 '톱 밴드' 코치들과 함께 공연한다고 들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요즘 합숙훈련을 하고 있다. 우리가 가르친 밴드들보다는 잘해야 할 것 아니냐.(웃음) 요즘 코치들과 만나면 하는 얘기가 '우린 쫓기고 있다'는 거다. 후배들이 너무 잘한다. '당신들은 얼마나 잘하느냐'는 소리 안 들으려면 사력을 다해야 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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