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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해방이후 국내서 속간 됐었다

입력 : 2012-08-10 23:30:50 수정 : 2012-08-10 23: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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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 창간 ‘독립신문’과는 달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이 1945년 광복 후 국내에서 속간(續刊)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1919년 8월21일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인사들이 창간한 독립신문이 광복 후 국내에서도 발행됐는지는 그동안 알려진 게 없다. 서재필이 1896년 창간한 최초의 민간신문 ‘독립신문’과는 다른 매체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회장 김신) 산하 연구기관인 백범학술원은 임시정부 인사들이 광복 후 국내에서 발행한 독립신문 속간을 수집·영인해 ‘백범학술원자료총서’ 제1집 공식 출간일(15일)에 앞서 10일 총서 제1집을 공개했다.

백범학술원은 “임시정부 인사들이 환국 후 국내에서 신문을 발행했던 사실은 물론이고 국내 발행 독립신문의 존재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면서 “국내판 독립신문의 존재가 세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백범학술원자료총서’ 제1집에는 속간 1호(1946년 12월27일)부터 제388호(1949년 3월31일)까지의 신문이 실려 있다. 속간 1호에는 김구 주석을 비롯해 이시영(국무위원)·조소앙(외무부장)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속간 축하 휘호가 실려 있다. 김구 주석은 ‘발양정기(發揚正氣·바른 기운을 발양하다)’라고 축하의 글을 썼다. 제호는 ‘독립신문’이지만 상하이 독립신문과 구분하기 위해 ‘(환국속간) 독립신문’이란 별칭이 붙었다.

상하이에서 독립신문을 창간·운영했던 김승학·김석황 등이 속간 발행을 주도했고, 사장은 이시영·조소앙 등 임시정부 인사들이 맡았다. 1946년 12월27일 속간 1호를 시작으로 다시 발간된 독립신문은 김구 주석과 운명을 같이했다. 1949년 6월26일 서거한 김구 주석이 그해 7월5일 효창원에 안장되자 독립신문은 다음날 공보처로부터 무기정간을 당했다.

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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