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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개인 안과 세우고 세벌식 자판 타자기 만들고

입력 : 2012-08-31 21:30:00 수정 : 2012-08-31 2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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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안주 않고 끝없는 도전
놀라운 열정… 우리들에게 ‘귀감’
공병우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안과 ‘공안과’를 세운 의사이자 세벌식 자판을 개발한 한글 타자기 발명가다.

그가 발명한 타자기는 전 시대의 유물이 된 지 오래며, 생전에 그토록 꿈꾸었던 세벌식 자판의 표준화도 오늘날에는 공허한 외침이 돼 버렸다. 그럼에도, 어린이들에게 이 인물의 삶을 소개하는 이유를 작가는 한글 기계화의 혜택에서 찾는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문맹률을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교육·문화·정보기술(IT) 분야에서 빠른 발전을 이루게 된 데는 한글이 우수한 글자인 덕도 있지만, 한글 기계화를 향한 열정 어린 노력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용적인 타자기 발명, 워드프로세서와 소프트웨어의 개발 등이 가져온 문화적 혜택은 우리 삶에 혁신을 가져왔다. 이 같은 기계화·전산화의 첫발을 뗀 사람이 바로 공병우이다.

공병우는 1907년 평안북도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고집도 세고 욕심도 많았다. 학창시절에는 학교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는 ‘트러블 메이커’였다. 농업학교 2학년 때 의학도의 길을 찾아 독학으로 평양의학강습소에 입학했다. 기세를 몰아 의학강습소를 졸업하기도 전에 의사 자격시험을 통과했다. 1938년에는 안과병원인 ‘공안과’를 열었다. 젊은 의사 공병우는 그 무렵 독립운동가 이극로 선생으로부터 한글을 처음 접한다. 일제강점기에 서른 평생을 보낸 그는 한글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공병우 박사가 한글문화원 회원들에게 컴퓨터에 쓰는 한글 글자체를 설명하고 있다.
공안과 제공
한글로 우리 민족이 글눈을 뜨고 문화의 힘을 기를 수 있다는 이극로 선생의 말에 자극을 받은 그는 곧장 한글을 배워 활용하기 시작했다. 눈병 예방 안내문을 한글로 만들어 나누어 주고, 한글로 시력검사표를 만들기도 했다. 타자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병원 일도 제쳐 놓고 연구에 매달린 끝에 ‘세벌식 쌍초점 한글 타자기’를 세상에 내놓는다. 1960∼70년대 산업화의 물결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던 분위기와 맞물려 타자기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사업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공병우 박사가 개발한 세벌식 자판 타자기.
폰트클럽 제공
타자기 사업에 손을 떼고 안과 의사로 돌아갔던 그를 한글학계로 다시 불러낸 것은 1969년 정부의 ‘자판 표준안’ 발표였다. 평소 잘못된 일이라면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그가 눈엣가시였던 정부는 보편적으로 쓰이던 공병우 타자기를 배제하고 비합리적인 네벌식 자판을 표준안으로 내놓았다. 그 이후 다시 두벌식 자판이 표준안으로 채택되면서 세벌식 자판은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미덕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라 할 만하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혼자 힘으로 의사가 되고, 피나는 노력 끝에 안과 의사로 성공한 이후에도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어 타자기와 한글 자판 연구에 쏟은 열정은 그 결과물과 별개로 울림을 준다.

박태해 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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