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열정… 우리들에게 ‘귀감’

그가 발명한 타자기는 전 시대의 유물이 된 지 오래며, 생전에 그토록 꿈꾸었던 세벌식 자판의 표준화도 오늘날에는 공허한 외침이 돼 버렸다. 그럼에도, 어린이들에게 이 인물의 삶을 소개하는 이유를 작가는 한글 기계화의 혜택에서 찾는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문맹률을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교육·문화·정보기술(IT) 분야에서 빠른 발전을 이루게 된 데는 한글이 우수한 글자인 덕도 있지만, 한글 기계화를 향한 열정 어린 노력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용적인 타자기 발명, 워드프로세서와 소프트웨어의 개발 등이 가져온 문화적 혜택은 우리 삶에 혁신을 가져왔다. 이 같은 기계화·전산화의 첫발을 뗀 사람이 바로 공병우이다.
공병우는 1907년 평안북도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고집도 세고 욕심도 많았다. 학창시절에는 학교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는 ‘트러블 메이커’였다. 농업학교 2학년 때 의학도의 길을 찾아 독학으로 평양의학강습소에 입학했다. 기세를 몰아 의학강습소를 졸업하기도 전에 의사 자격시험을 통과했다. 1938년에는 안과병원인 ‘공안과’를 열었다. 젊은 의사 공병우는 그 무렵 독립운동가 이극로 선생으로부터 한글을 처음 접한다. 일제강점기에 서른 평생을 보낸 그는 한글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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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우 박사가 한글문화원 회원들에게 컴퓨터에 쓰는 한글 글자체를 설명하고 있다. 공안과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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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우 박사가 개발한 세벌식 자판 타자기. 폰트클럽 제공 |
그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미덕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라 할 만하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혼자 힘으로 의사가 되고, 피나는 노력 끝에 안과 의사로 성공한 이후에도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어 타자기와 한글 자판 연구에 쏟은 열정은 그 결과물과 별개로 울림을 준다.
박태해 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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