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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건축계의 이단아 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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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2-26 16:40:59 수정 : 2013-02-26 16:4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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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사탕·로봇과 우주선 모양 건축 등 파격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것을 했을 뿐…
다차원인 이 세상, 건축 공간에서 얘기로 풀어내
이름 날리기보다 취향 있는 건축가로 남고 싶어
붉은 정자 하나가 떡 하니 자리하고 있다. 그것도 물이 흐르는 풍광 좋은 산천이 아니라 도심 사무실 공간 안에 위치한 정자다. 컴퓨터와 드로잉 종이만 없다면 조선시대 선비들이 유유자적하던 공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붉은 스웨터에 고동색 조끼를 입은 한 남자가 정자에서 노닐고 있다. 조끼에는 스포츠카 페라리와 벤츠 자동차 심벌 등이 장식처럼 붙어 있다. 무심코 들이닥치게 되면 점집에 온 것이 아닌가 하고 착각할 정도다. 지난주 찾은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건축가 문훈(45)의 사무실 풍경이다.

건축가 사무실에 웬 정자인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그가 별거 아니라는 듯 가장 편안한 자세로 정자에 다리를 쭉 뻗고 앉는다. 정자는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산실이자 멋을 향유한 공간이 아닌가. 무거운 삶을 잠시 내려놓았을 때, 삶이 가장 느슨해진 지점에서 통찰과 창조적 생산이 이뤄진 것이다. 정자에 나앉은 조선 선비에게 풍악이 있었다면 그에겐 컴퓨터와 드로잉이 있다. 그는 일을 일로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한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정자에서 노닐던 조선선비의 창조적 생산성을 넌지시 환기시켜 준다.

붉은색 정자와 옷은 또 뭔가. 그저 자신의 취향이라 했다. 하지만 나름의 심오한(?) 철학이 그 속에 있다.

“외골수가 아닌 관계망, 집단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라는 일종의 메시지죠. 붉은색은 튄다는 부정적 인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붉은색은 숲을 선명하게 해주지요.”

그는 붉은색을 통해 우리 사회, 우리 자신을 보다 더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페라리와 벤츠의 심벌은 왜 옷에 붙이고 다니는 것일까.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면 사고 싶어 그렇게 하고 다니느냐고 그에게 질문을 던지곤 한다.

“부적이나 아이콘 같은 것이지요. 사람들은 저더러 웃기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저는 페라리·벤츠로 상징되는 것들을 조롱하고 즐기는 것이지요.”

그에겐 상표도 부적이 되고 아이콘이 된다.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명함 디자인도 화투패의 팔광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의 성인 ‘문(Moon)’을 연계시킨 것이다. 이름 도안도 부적글씨를 닮았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기존관념과 경계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그가 요즘 기발한 건축물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빨간 정자에 편안하게 기대 앉아 있는 문훈 건축가. 미술에서 인상주의와 큐비즘이 색채와 형태의 해방을 불러왔다면, 그는 건축에서 건축의 고정관념을 해방시켜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뿔 달린 건축, 바람에 반응하는 건축, 로봇과 우주선(비행기) 같은 건축, 사이보그 건축, 막대사탕 건축, 그물망이 달린 건축 등 파격적인 건축물로 그는 건축계의 이단아로 불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기발한 집들’에서 그를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것을 나는 했을 뿐입니다.”

재미있는 건축가인 그에게 재미없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건축은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돌아온 답변은 명확하고 단순했다.

“교향곡으로 유명한 구스타프 말러(보헤미아 태생의 오스트리아 음악가)가 당신은 왜 음악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이 이해한 세계의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건축이라는 도구로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은 잘 모르지만 건축이라는 하나의 ‘이론’으로 세상을 설명하려 한다. 세상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식이다. 그러기에 늘 현재진행형이다. 4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던 그는 그림이 관객을 위한 것이자 자신이 이해한 것의 독백이기도 했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건축은 내가 이해한 세상 얘기죠. 그림, 영상, 시적 세계, 웃기는 얘기 등을 건축공간에서 이야기로 풀어냅니다. 다차원세계를 왔다 갔다 하며 다차원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자체가 다차원입니다.”

그는 유년 시절을 강원도 산골에서 보냈다. 어린 시절 산과 읍내를 도화지에, 그리고 로봇과 비행기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 그의 건축 이야기의 배경이 돼 주고 있다. 동화적 발상의 건축물도 우연은 아닌 셈이다. 뭐니뭐니 해도 그의 제1 화두는 재미다. 건축물에 뿔을 다니 사람들은 우습게 생각했다. 빨간 옷을 입고 다니니 주위에선 장난스럽다고 했다. 왜 장난스러울까. 왜 재미가 극대화될까. 그 지점이 그의 건축 코드다.

문훈 건축가 사무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건축 모형물들. 유명 조형물 작가의 작업실을 방불케 한다.
“거리낌없이 가볍게 대하고, 그 재료들을 비빔밥처럼 비벼 내는 것이 제 건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이행과정을 견딜 수 있는 힘은 좋아한다는 이유 단 하나뿐이지요.”

재미있어 건축을 하고 설렘에 있어 건축을 한다는 그는 인식 작용을 패턴으로 읽어내려 한다. '거북바위' 같이 지칭하는 형식이다. 일종의 애니미즘이라 할 수 있다. 스케일의 충돌, 추상성과 즉물성의 충돌도 즐긴다. 그렇다고 그가 외형 일변도의 건축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의 외형적 모습이 형태라면 마음은 공간과 같은 것이지요. 형태와 공간의 균형이 필요하지요.”

경제 거품이 꺼지면서 일본 건축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그는 예로 들었다. 형태보다는 공간에 대한 근본 질문에 치중한 나머지 ‘초식남’ 같은 모습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불안정한 지점의 아찔함을 즐긴다. 이를 그는 공간을 가로지른다는 말로 표현했다. 움직이는 것, 발생시키는 관점에서 건축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고정적인 건축에 대한 역설적 발상이다. 커튼이 바람에 날리는 것에서 바람에 반응하는 건축물을 생각하는 식이다.

“안정과 불안정의 경계, 고정과 움직임의 경계, 영원성과 가볍게 날아가 버릴 것 같은 것의 대면에서 오는 짜릿함을 즐기고 있는 것이지요. 경계의 ‘파격’ 지점엔 무한한 자유와 상상력이 헤엄치게 됩니다.”

건축에서 빛과 공간을 영원한 주제다. 하지만 그는 다른 것에 관심이 더 많다. 다중으로 존재하는 자신에 충실해지려 한다.

“영화 속에서처럼 뛰어다니고 날아다니고 싶은 저도 있고요. 된장국을 좋아하는 저도 있습니다. 아시아적 가치에 친숙하기도 하고요. 이런 모든 것들이 높낮이가 없고 평등하고 같다는 말은 아닙니다. 수평적으로 동등하게 취급하고 같은 눈높이에서 보자는 것이지요.”

그는 빨간색은 개인적으로 끌려서 쓰고, 화투는 가장 대중적 이미지라 아이콘으로 이용할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고 쓰는 것입니다. 날것과 편안한 것이 좋아요. 날것 같은 이미지는 거칠어서 매력적입니다. 선상에서 회쳐먹는 기분이지요.”

그는 허위의식을 경멸한다.

“가치와 신념은 뒤에서 밀어주는 형식이 되어야 합니다. 쫓아가는 형국이면 힘만 들지요.”

그는 이름 있는 건축가가 아닌 취향 있는 건축가로 남기를 바란다. 청소년기를 아버지를 따라 호주에서 보내고 인하대 건축학과와 미국 MIT에서 건축학석사를 받은 이력이 나름의 색 무지개를 만들어 가고 있다. MIT에서 석사논문을 쓸 때 그는 개인적 담론을 담은 논문으로 지도교수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제대로 된 ‘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작 플레이 보이, 내 생각, 샤머니즘, 서울의 성 같은 식으로 주를 채웠다.

“무모했지만 ‘기름 끼 많은 서양음식’을 계속 먹고 싶지 않았어요. 비록 숙성은 안 됐지만 내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지요.”

그는 유학을 통해 토속적인 것이 눈을 떴다. 영화 ‘서편제’를 보고 눈물을 흘렸고, 한국의 땅과 기운을 느꼈다.

“건축을 보기 위해선 건축보다 큰 것을 봐야 합니다. 인간을 보려면 인간보다 더 큰 생각(종교·신)을 봐야 하는 것처럼요. 한국을 제대로 보려면 한국 밖에서 바라봐야 하듯, 건축도 건축 밖에서 더 큰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는 하루종일 드로잉을 하기도 한다. 실수가 있어도 그대로 흐름에 맡긴다. 실수조차도 자신의 용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자동기술처럼 건축 형태가 드러난다. 많은 연습을 통해 체화된 본능이다.

“세계 곳곳에는 새가 집을 짓듯 교육을 받지 않은 주민들이 집을 짓고 있습니다. 건축가 없는 건축이지요. 무의에서 나온 건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동기술처럼 이뤄지지만 비례감각이 뛰어납니다.”

그는 피카소가 아프리카 미술을 자기화했듯이 동서양 건축을 흡수해 내뱉어 내려 한다.

편완식 선임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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