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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수녀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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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5-31 20:34:35 수정 : 2013-05-31 20: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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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가 ‘수도녀’(修道女)의 준말이라는 사실은 조금 생소하다. 수녀는 비구니와 달리 봉사자의 이미지가 더 강한 편이다.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테레사(1910∼1997) 수녀가 대표적이다. 테레사 수녀는 1950년 인도 콜카타에서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한 이래 45년간 빈민과 병자, 고아,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그녀는 가난을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인 탓에 ‘부자들의 성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테레사 수녀의 헌신적인 봉사 이미지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연히 봉사자의 자세만으로 수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녀회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고졸 이상 학력에 세례를 받은 지 3년이 지난 30세 미만의 미혼 여성이 지원할 수 있다. 4년의 힘든 수련기를 거쳐야 수녀 서원(誓願)을 할 수 있다. 봉쇄 수도원에서 세속과 거리를 둔 채 기도와 노동만으로 살아갈 수도 있고 외부 봉사활동 위주의 수도 생활을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1888년 프랑스 성바오로 수녀회가 최초로 들어왔다. 이 수녀회의 설립 목적도 사회사업과 자선사업이었다. 이후 100년이 지난 1997년 말에는 88개 수녀회로 늘어났다. 수녀도 7574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즈음을 기점으로 수녀 지원자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해 최근에는 60% 가까운 수녀회가 지원자를 한 명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지원 자격 연령을 높이고 결혼 경력까지 용인하자는 주장이 대두되는 모양이다.

엊그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20대 여성의 평균 교육수준이 사상 처음으로 남성을 추월했다는 자료를 내놓았다. 경제활동참가율도 여성은 높아진 데 반해 남성은 낮아졌다고 한다. 이 지표를 반영하듯 수녀 지원자는 줄어드는데 신부 숫자는 매년 2∼4%씩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해인 수녀는 일찍이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이라고 ‘민들레의 영토’에서 다짐했다. 시인 수녀의 소망도 부질없다. 세속의 길이 넓어질수록 영혼의 영토가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인가 보다.

조용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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