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연히 봉사자의 자세만으로 수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녀회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고졸 이상 학력에 세례를 받은 지 3년이 지난 30세 미만의 미혼 여성이 지원할 수 있다. 4년의 힘든 수련기를 거쳐야 수녀 서원(誓願)을 할 수 있다. 봉쇄 수도원에서 세속과 거리를 둔 채 기도와 노동만으로 살아갈 수도 있고 외부 봉사활동 위주의 수도 생활을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1888년 프랑스 성바오로 수녀회가 최초로 들어왔다. 이 수녀회의 설립 목적도 사회사업과 자선사업이었다. 이후 100년이 지난 1997년 말에는 88개 수녀회로 늘어났다. 수녀도 7574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즈음을 기점으로 수녀 지원자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해 최근에는 60% 가까운 수녀회가 지원자를 한 명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지원 자격 연령을 높이고 결혼 경력까지 용인하자는 주장이 대두되는 모양이다.
엊그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20대 여성의 평균 교육수준이 사상 처음으로 남성을 추월했다는 자료를 내놓았다. 경제활동참가율도 여성은 높아진 데 반해 남성은 낮아졌다고 한다. 이 지표를 반영하듯 수녀 지원자는 줄어드는데 신부 숫자는 매년 2∼4%씩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해인 수녀는 일찍이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이라고 ‘민들레의 영토’에서 다짐했다. 시인 수녀의 소망도 부질없다. 세속의 길이 넓어질수록 영혼의 영토가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인가 보다.
조용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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