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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소금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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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9-13 21:01:37 수정 : 2013-09-13 21: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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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생활 필수불가결한 물질
국민건강 위협 기피대상 전락
식품에 소금의 주성분인 나트륨이 얼마나 함유돼 있는지 쉽게 알아보게 하는 ‘나트륨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나트륨이 고혈압을 비롯한 주요 질환의 주범이고, 우리 국민의 하루 나트륨 섭취량이 세계보건기구 권장량의 두 배를 훨씬 넘어선다니 법제화해서라도 나트륨 섭취를 줄이려는 노력이 불가피해 보인다.

안병직 서울대 교수·서양사학
이제 소금은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기피대상 제1호 식품이 됐지만 생리학적으로 유기체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물질이다. 그래서 아득한 옛날부터 소금은 인류와 함께 해 왔는데 호수물이나 샘물을 끓여 소금을 추출했으리라는 추정은 최소 기원전 6,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소금이 오래 전부터 인간생활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음은 기원전 5세기 헤로도토스가 쓴 인류 최초의 역사서에도 나타난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당시 북아프리카에는 여러 종족들이 사하라 사막의 소금 언덕을 중심으로 정착하고 있었다.

먼 과거의 선인들은 소금을 귀한 물품으로 여겼는데 성경이 그 증거를 제공한다. 즉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향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설교하면서 꼭 필요한 존재를 소금에 비유한 것이다. 소금이 종교와 결부되는 현상이 기독교 문화권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스모 경기에 앞서 소금을 뿌리는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소금은 여러 문화권에서 제의(祭儀)에 동원되는 신성한 물질이었다. 소금은 부패하지 않는 불변성을 통해 악과 액운에서 보호한다는 주술적 의미를 지녔던 것이다.

소금은 종교나 주술이 아닌 일상의 차원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것이었다. 소금은 그 자체 식품으로 애용됐을 뿐만 아니라 육류나 생선 등 다른 식품을 저장하는 수단으로도 널리 사용됐다. 영어를 비롯한 유럽언어 가운데 소금을 의미하는 라틴어를 어간으로 하는 여러 낱말들은 생필품으로써 소금의 역할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케 한다. 예컨대 소금에 절였다는 뜻의 ‘샐러드(salad)’는 푸성귀에 소금을 뿌려 먹던 고대 로마의 식습관에서 유래하고, 급여를 의미하는 ‘샐러리(salary)’라는 말은 고대 로마의 병사들에게 복무에 대한 보상의 일환으로 소금을 지불한 데 그 어원을 두고 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소금은 값비싼 물품이었다. 소금에 대한 수요는 보편적이었으나 소금 생산은 암염과 염전 지역을 중심으로 제한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금은 지역 간 교역에서 빠질 수 없는 품목이었고 소금 교역로는 수백,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렀다. 중세 도시국가 베네치아가 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소금 생산과 교역 덕분이었다. 베네치아의 경우 정치체제와 도시계획도 소금과 관련됐다. 베네치아에 과두정치체제가 등장한 것은 염전을 보존하기 위한 대규모 제방공사에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기 때문이고, 베네치아의 도시지역이 규칙적인 여러 블록으로 구획된 것도 염전을 모방한 것이었다.

값비싼 귀한 물품이라는 점에서 소금의 생산과 교역, 소비에는 권력이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집권을 통해 중세의 봉건적 질서를 극복하려던 근대 초 절대왕권 국가, 특히 프랑스가 그러했다. 17세기 프랑스의 절대 군주는 왕권 강화에 필요한 재정 수입원으로써 소금에 대한 조세를 강화했다. 오늘날 불어로 ‘짠’ 계산서라는 말은 ‘터무니없이 비싼’ 계산서를 의미할 정도로 소금이 비싼 물품이 된 주요 원인은 염세에 있었다. 그 때문에 국민들의 원성이 높았고, 염세는 농민반란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소금은 권력뿐만 아니라 권력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기도 했다. 1930년 봄 인도에서는 수천 명의 추종자와 함께 400킬로미터를 걸어 한 해변에 이른 간디가 한 줌 소금을 집어 들었다. 그의 몸짓은 영국인들이 임의적으로 부과하던 염세에 대한 저항을 의미했는데, 간디의 이 소금 행진은 비폭력 저항을 통한 인도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안병직 서울대 교수·서양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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