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우였다. 1980년 120명을 뽑는 경찰대 1기 입학시험에 2만6000여명이 몰리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220.5대 1. 국내 대학입시 사상 전무후무한 경쟁률이다.
학비 국비 지원, 경위 임관 등의 특혜는 매력적이었다. 집안 사정이 어려운 수재들이 너도나도 지원했다. 경찰대 출신은 똑똑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적지 않은 국민이 경찰의 수사권 독립 요구를 지지한 것은 경찰대 출신에 대한 신뢰 때문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올해로 개교 33년째를 맞은 경찰대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경찰대 출신의 고위 간부 독점이 심화되면서 폐지 여론까지 나온다. 지난해 경무관 승진자 가운데 경찰대 출신은 16명 중 9명이었다. 졸업생의 13%가 사법시험 합격 등을 이유로 의무복무기간을 채우지 않고 퇴직해 ‘먹튀 논란’도 빚어졌다.
정부는 입학인원 축소, 무료교육·졸업 후 경위 임용 특혜 개선 등 3가지를 골자로 한 경찰대 개편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찾아오기 마련인가.
이번엔 경찰대 출신들의 일탈 행위가 터져나왔다. 남의 집 화장실 창문으로 여성을 훔쳐보던 경감이 체포되고 사건 상담을 하며 만난 여성을 성폭행하려던 경정이 구속됐다. 유사성행위 업소를 출입하다 해임된 경감도 있다.
경찰대 출신들에게 망신살이 뻗친 모양새다. 경찰대 폐지 목소리가 더 커지게 생겼다. 경찰대 설립 목적은 청렴하고 능력 있는 경찰 간부 양성이다. 추문과 부패의 주인공을 잇따라 양산하니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경찰대 교육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경찰대 출신 간부들의 석고대죄도 필요하다. 그게 4년 동안 교육비와 각종 피복·일용품, 품위유지비를 세금으로 대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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