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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올라 카리베] 〈3〉 쿠바 아바나의 자유로움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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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2-06 22:07:57 수정 : 2014-12-22 17: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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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해풍 연인들의 속삭임 같아
아바나의 숙소인 카사는 작은 방 한 칸이었지만, 그곳 사람들은 내 가족처럼 친근했다. ‘어머니의 날’에는 나도 꽃을 사서 주인 아줌마에게 건넸다. 한국에 있는 우리 엄마가 생각났기 때문일까, 나는 주인 아줌마를 ‘마마’(엄마)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냈다. 아침에는 마마 딸이 음식을 준비해 줬다.

그 가족들과 둘러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친해졌는데, 그중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었다. 가족 같지는 않고, 친척인가 싶어서 물어봤더니 나와 같은 여행자란다. 아르메니아 사람인데,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카사의 가족은 부모님과 딸이 한 명 있고, 그녀의 아들이 있다. 아들은 고등학생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부모님과 딸은 외국 드라마를 좋아한다. 미국 드라마가 케이블 TV에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심지어는 한국드라마도 봤단다.

말레콘을 걷고 있을 때는 해가 저물어 가는 시간이었다. 그때 만난 두 커플은 낯익은 사람들로 서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카사의 딸과 아르메니아 여행자가 한 커플이었고, 그녀의 아들이 여자친구와 또 한 커플을 이루고 있었다. 나도 그들 사이에 껴서 같이 거닐었다. 엄마 커플과 아들 커플이 더블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낯설었다. 어쩌면 이런 것들은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라는 데서 오는 편견일 것이다. 이곳에서도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거니는 연인들은 쉽게 만날 수 있다. 공원에 앉아서 술을 마셔도 괜찮고 시가를 피워도 괜찮고 살사 춤을 춰도 괜찮은 곳이다. 

하지만 이면은 언제나 존재하는 법, 쿠바를 벗어나기 위한 사람들의 몸부림도 있다. 쿠바와 미국 마이애미는 가까운 거리다. 이곳에 놓인 바다를 헤엄쳐서 가는 쿠바인이 꽤 있다. 그것은 미국이 주는 환상 때문일 수도 있고, 쿠바가 주는 억압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은 망명하는 쿠바인들에게 지원해주기까지 한다. 쿠바에서는 직업이 부와 명예를 말해주지 않는다. 의사를 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그건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다만 자유경제 체제가 아니니 과다한 경쟁도 없다. 대학교까지 무료교육이며, 의료비 또한 무료인 쿠바인들은 특별히 재산을 축적할 필요는 없다. 하루하루의 삶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말레콘의 노을 풍경.
쿠바의 의료 서비스는 워낙 유명하다. 유럽이나 미주에서 쿠바로 치료 목적의 의료관광을 올 정도다. 내가 모든 의료비가 무료라는 쿠바를 부러워하니, 쿠바인이 나에게 하소연했다. 치과 치료는 예외라서 상당한 돈이 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실정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의료·교육 면에서는 부러웠다. 쿠바의 약국에는 사람들이 항상 많다. 기본적인 생활은 국가에서 지원해 주고, 나머지 삶은 자유롭게 살아가는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의 운영체제를 잘 보여준다.

아바나 구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하는 건물이 있다. 그곳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경비가 돈을 받는다. 팁 정도로 생각할 만한 돈이라서 올라가 볼 만하다. 그곳에 오르면 바다와 아바나의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아래의 건물들 사이사이로 길을 찾아본다. 처음에는 복잡해서 길을 잃을 것만 같았던 이 골목길들을 이제는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아바나 구시가지 길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아바나의 구 시가지 전경
구시가지를 볼 수 있는 방법은 또 있다. 요새로 지어진 곳인데,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며 관광객의 필수 코스가 된 곳이다. 모로 요새가 바로 그곳인데, 구 시가지에서 보면 바다 건너편에 있다. 과거 아바나를 지켜주던 ‘로스 트레스 레예스 델 모로 요새’라는 긴 이름의 이 요새는 지금은 구시가지 건너편에서 구시가지와 항구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모로 요새에서 바라보는 구시가지는 노을이 특히 좋다. 하지만 이곳의 역사는 붉게 물든 노을처럼 피비린내가 난다. 남의 땅에 들어와서 무엇을 지키고, 누구의 침입을 막으려고 했던 것인지 안타까울 뿐이다. 스페인이 이곳을 점령하고 이런 요새를 지었던 것은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쿠바 땅을 차지하고 싶어하는 나라들의 싸움에서 결국 스페인이 이겼다. 

바다 건너 모로 요새에서 바라보는 아바나 구 시가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모로 요새를 나와 한참을 걸어야 버스정류장이 있다. 그늘 하나 없이 완벽히 노출된 태양 아래를 걷는 일은 사람을 쉬 지치게 만든다. 택시라도 타고 싶었지만, 그 흔한 택시도 이럴 때는 안 보인다. 그래도 버스정류장에 털썩 주저앉아 피우는 시가 맛은 모든 것을 보상해 준다. 그때 버스가 도착해 허둥지둥 시가를 끄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 운전사가 내가 앉아 있던 곳을 가리키며, “카메라”라고 말해주는데, 그 순간 아찔했다. 카메라를 버스정류장에 두고 나만 버스에 올라 탄 것이다. 고맙다는 말을 할 정신도 없이 다시 내려서 카메라를 집어들었다. 버스는 기다려 줬고, 나는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진심으로 고마운 순간이었고, 쿠바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모로성 앞의 과일 음료수 판매상
아바나 다음으로 갈 곳을 정할 때는 지도가 필요했다. 쿠바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고, 쿠바는 의외로 큰 섬이다. 지도를 펼쳐놓고 전체 루트를 생각해 봤다. 아바나로 들어왔지만, 쿠바에서 나가는 비행기는 ‘산티아고 데 쿠바(Santiago de Cuba)’에 있었다. 쿠바는 가로로 길쭉한 섬을 45도 정도 시계방향으로 틀어 놓은 모양이다. 그래서 서부, 중부, 동부지역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그중 아바나는 서부지역에 속하며, 북쪽에 위치해 있다. 반면 산티아고 데 쿠바는 동부지역에서도 남쪽에 위치해 있으니 극과 극이다. 아바나에서 서부지역 중에서도 서쪽 끝까지 갔다가 중부를 거쳐서 동부 끝으로 가는 것으로 전체 루트를 짰다. 그래서 다음 도시로 정한 곳이 ‘비냘레스(Vinales)’였다. 다음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서 굳이 버스 터미널까지 갈 필요는 없다. 아바나에는 이동 수단이 잘 갖춰져 있다. 호텔에 배치되어 있는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관광코스도 잘 되어 있다. 관광코스를 다 돌지 않고 편도 버스만 타겠다고 하면 터미널의 버스와 비슷한 요금만 받고 태워준다. 비냘레스 편도 버스를 예약해 놓고, 마지막 밤을 아바나 골목에서 사람들과 보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커피를 마시는 그들 사이에 끼면 나도 친구가 된다. 볼거리가 많아 다 보진 못했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아바나의 마지막 밤이 이렇게 흐르고 있다.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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