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일찌감치 ‘혁신학교는 추가 지정도, 지정 연장도 없다’며 보수파를 안심시켰고, 서울시교육감 자리를 노리는 진보 성향 후보들은 ‘혁신학교 시즌 2’, ‘혁신교육 사수’를 외치며 정면 대응에 나섰다.
혁신학교가 282개교에 달하는 경기지역에서도 혁신학교의 앞날은 ‘시계 제로’가 됐다. 혁신학교를 탄생시킨 김상곤 전 교육감이 지난 6일 도지사 출마를 선언하면서 경기도교육감 자리가 무주공산이 됐기 때문이다.
혁신학교가 들어선 6개 시도 가운데 4곳의 혁신학교가 위기를 맞았다.

의결권을 가진 교사모임, 넉넉한 예산, 창의 교육은 혁신학교 제도를 받치고 있는 기둥이다. 이 가운데 문 교육감이 문제 삼는 부분은 교사모임(다모임)과 예산이다. “임의 조직인 다모임이 교육청에서 임명한 교장의 권한을 무력화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며, 특정학교가 1억4000만원이나 되는 예산을 가져가면 안 된다”는 게 문 교육감의 생각이다.
그 결과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혁신학교 예산을 평균 6000만원으로 절반 이상 줄인 데 이어, 지난 3일에는 ‘2014 서울형 혁신학교 운영 기본계획’(혁신학교 기본계획)을 발표해 지출 예산도 항목별로 조목조목 제한하기로 했다. 혁신학교 기본계획은 또 “임의의 교원조직을 심의·의결 기구화해 갈등을 초래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명시해 다모임 활동에도 제동을 걸었다. 5일에는 혁신학교 홈페이지마저 폐쇄했다.
문 교육감은 지난해 10월 “더 이상의 혁신학교는 없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바 있다. 혁신학교의 지정기간은 4년. 문 교육감이 이번 교육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 내년 29개교를 시작으로 2017년에는 전체 67개교가 혁신학교 간판을 내리게 된다. 혁신학교의 수명이 3년밖에 안 남은 셈이다.
서울시교육감 자리에 도전하는 진보 성향 후보들이 혁신학교 수호를 공약 첫머리에 올린 것은 이런 위기감 때문이다.
7일 예비후보로 등록한 조희연 후보(성공회대 교수)는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여전히 위로부터의 지시형, 관료적 행정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는 변화한 학생의 감수성과 맞지 않는다”며 “이런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해 김상곤·곽노현(전 서울시교육감)의 혁신교육을 계승해 혁신교육 시즌 2를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최홍이 후보(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와 장혜옥 후보(학벌없는사회 대표)도 비슷한 입장이다.
경기도교육감 선거에서도 보수·진보 간 혁신학교 공방이 한창이다. 경기도에서는 지금까지 이재삼 경기도의회 교육위원장과 최창의 도의회 교육의원이 진보진영 후보로 나섰고, 보수진영에서는 강관희 도의회 교육의원과 권진수 전 양서고 교장, 박용우 송탄제일중 교사, 최준영 전 한국산업기술대 총장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올해로 도입 6년째를 맞는 경기 혁신교육은 일부 대학의 교과목으로 개설될 만큼 제 궤도에 올랐지만, 선거 판세가 안갯속이어서 언제 제동이 걸릴지 모른다.
광주·강원의 상황도 비슷하다.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은 재임 기간 내내 학력 저하 공세에 시달렸다. 당장 진보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살아남을지도 알 수 없다. 강원도는 전통적으로 보수 색채가 강해 보수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면 민병희 교육감도 안심할 수 없다. 이들 지역의 혁신학교도 명재경각(금방 숨이 끊어질 지경에 이름)이라는 뜻이다.

혁신학교는 입시 위주의 획일적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으로 공교육을 정상화하자는 뜻에서 출발했다. 2009년 경기도에서 처음 등장했고, 강원·전북·전남·광주 등 진보교육감이 있는 지역에서는 어김없이 혁신학교가 도입됐다. 서울에서는 곽노현 전 교육감이 재임 중이던 2011년 29개 학교로 출발했다.
혁신학교의 산파가 진보진영이었던 만큼 혁신학교에 대한 평가는 이념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간다. 예컨대 보수 쪽에서는 “지난해 경기도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3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고, 중고생 학업성취도는 전국 꼴찌 수준”이라며 ‘이게 다 혁신학교 때문’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에 맞서 진보진영은 “학생 만족도가 높고, 혁신학교만 놓고 보면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줄었다”는 논리를 편다.
학부모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경기도 수원 혁신학교인 영일초등학교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인근 학군에서 이사까지 한 박은혁(가명)씨는 “일률적·주입식 교육환경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아들(초등 4학년)을 키우고 싶었다”며 “아이가 학교생활을 무척 즐거워하는 걸 보면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김포 혁신학교인 A초등교의 한 학부모는 “혁신학교 출신은 중학교에 가서 (내신성적) 바닥을 깐다는 소문이 있어 조금 불안하긴 하다”며 “특히 중·고교까지 혁신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이렇게 자율적인 분위기에 맡겨도 되나 혼란스럽다”고 전했다.
이처럼 하늘과 땅 차이인 혁신학교 평가에 대해 교육 전문가들은 교육의 본질적 접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교육학)는 “공교육 위기의 대안으로 교사와 주민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작은학교 운동, 농산어촌 학교 살리기 운동이 혁신학교의 모태인데, 이것이 진보 교육감에 의해 혁신학교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관료적 지배방식에 놓이다 보니 진영 논리에 휘말리게 됐다”며 “학교 교육의 본질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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