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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영화이야기] 영화관에 뱀이 풀렸던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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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2-06 23:26:40 수정 : 2015-12-05 14:5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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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서울 시내 극장 몇 군데에 뱀이 풀린 사건이 있었다. 뱀뿐만이 아니었다. 그 땐 화염병, 최루탄 등 사람 많은 좁은 공간엔 절대 등장하면 안 되는 것들도 종종 극장에 출몰했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이후 법적 처벌은 이루어졌고), 이런 위험천만한 일을 벌인 사람들은 바로 영화인들이었다. 이유는 영화관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는데, 특정 미국영화들을 상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화관의 미국영화 상영이야 늘 있는 일인데 뭐가 문제였던 것일까? 문제는 ‘직배’ 즉 ‘직접 배급된’ 미국영화를 상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시 영화인들은 직배 미국영화의 극장 매출이 고스란히 미국으로 송금되는 상황을 걱정했다. 그동안은 국내 수입사가 외국영화 판권을 수입해 배급했기 때문에, 영화관과 수입사가 매출을 분배해 국내에서 그 돈이 돌았다는 것. 그 중 일부는 한국영화 제작비로도 투입되었고. (사실 수입 당시 목돈이 이미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직배 미국영화 상영 확대는 한국영화 제작 축소로 이어질 거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1984년 영화법 5차 개정 이전까지는 법적으로 영화 제작업자와 수입업자가 일원화 되어있었기 때문에 수입사가 버는 돈은 제작사가 버는 돈이기도 했다. 오로지 한국영화를 제작하는 회사만이 외국영화를 수입할 수 있도록 약 20여개의 회사만을 허가해주던 시절이었으니까 말이다.

영화법 5차 개정 이후 영화업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고, 제작업과 수입업이 분리되었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영화 업종을 할 수 있는 자격은 한국인, 한국법인에게만 주어졌다. 그리고 연간 수입영화 편수도 여전히 제한되어 한국영화 시장은 보호되었다. 물론 누구나 영화 제작과 수입을 할 수 있게 되면서, 경쟁은 치열해졌다.

그러던 차에 1986년 발표된 영화법 6차 개정 내용은 영화인들에게 충격이었다. 1987년 7월부터는 외국인, 외국법인도 국내에서 영화 업종을 할 수 있게 되면서 국내 영화시장의 개방을 예고하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끼리 서로 경쟁하는 것에 채 적응이 되기도 전에 외국인들과의 경쟁 상황이 열린 것이다.

지금이야 너무나 당연해졌지만 영화시장이 개방되면서 미국 영화사들이 국내에 지사를 차리고 본인들의 영화를 직접 배급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난리가 났다. 단순히 영화관에 미국영화가 많이 걸리게 된 것을 걱정했다기 보다는, 꽤 오랫동안 한국영화계의 돈줄은 수입 외국영화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국내 수입업자들이 괜찮은 미국영화를 수입할 수가 없게 된 상황을 걱정했다.

영화 '위험한 정사'(감독 애드리안 라이, 1987) 포스터.
1988년 다국적 영화 배급사인 UIP가 직배영화 1호 작인 ‘위험한 정사’(감독 애드리안 라이, 1987)를 국내에서 배급했다. 당시 개봉관 잡기는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당시 소수의 영화사나 수입사와 동거 동락해온 기존 소수 개봉관들은 쉽게 직배영화에 문을 열어주지는 않는 분위기였다.

주로 소규모 영화관에서 직배영화가 상영되었는데, 서울 도심 종로, 을지로 인근 1000 석 이상의 영화관을 뚫지는 못했지만, 신촌, 명동, 강남 등지의 소규모 영화관 여러 곳에서 동시 상영하는 식이었다. 당시는 멀티플렉스가 등장하기 이전으로 대부분의 영화가 한두 개 극장에서 개봉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나름 신선한 시도이기도 했다. (물론 단계적 개방 조치로 한 번에 여러 벌의 필름 프린트를 사용할 수는 없어서, 마냥 많은 스크린을 확보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1989년이 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카데미 수상작인 ‘레인맨’(감독 베리 래빈슨, 1988)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8번가의 기적’(1988) 등이 직배로 배급되기 시작하면서 관객들의 반응도 컸고, 영화관들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로 이즈음 뱀, 화염 병, 최루탄 투척 사건들이 발생한 것이다. 특히 영화배우나 영화감독 출신이 운영하는 영화관들은 더욱 타겟이 되었다. 일종의 원망이 쏠렸던 것.

그래도 마지막 보루는 있었다. 스크린쿼터 제도 말이다. 영화법 5차 개정으로 스크린쿼터 즉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는 연간 146일로 강화되었다. 국내 영화관이라면 연간 상영일 중 4/5 이상은 한국영화를 상영해야했으니 말이다. (약 20일 정도의 증감이 가능하긴 했다.)

최근에도 영화관에 대한 영화인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80년대 후반 뱀이 풀렸던 때와 비교하면 많은 것이 다르다. 직배된 미국영화를 상영하기 때문이 아니라, 대기업이 운영하는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자사 계열 회사가 투자 배급하거나 제작에 관여한 한국영화들에게 특혜를 주고 있다는 의심 때문이다.

한국영화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내 극장 매출은 매우 중요한 부문이다. 그런데 특정 영화들이 더 많이 오랫동안 상영이 된다면, 그만큼 다른 영화들은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의미이니 민감해질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이제는 스크린쿼터 마저 축소되어 연간 73일 이상만 한국영화를 상영하면 되니 한국영화 제작사가 믿을 구석도 줄었다.

영화의 흥행 예상 혹은 결과에 따라 스크린을 분배한다고 멀티플렉스 측은 항변하지만, 그동안 특정 영화의  상영 취소나, 예약 취소, 대관 취소 등의 사례들을 떠올려 볼 때, 영화 상영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 다른 기준과 논리들도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되기도 한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상영하는 사람들의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 복잡하다. 서로 꼭 필요하지만, 이해관계가 얽히기도 하는 그런 관계라고 할까?

영화인과 영화인들 사이에 불공정한 갑질이 난무하는 갑을 관계가 아니라 함께 윈윈하는 파트너 관계 형성을 위한 현명한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게 되는 요즘이다. 물론 그 옛날 결국 효과도 별로 없었던 그런 폭력적인 방법은 피해서!

서일대 영화방송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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