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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의법률산책] 금전의 점유와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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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7-07 22:06:12 수정 : 2015-07-08 03:5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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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유와 소유는 법의 기초 개념에 속한다. 법문화 선진국에서는 모두 점유와 소유를 준별한다. 점유는 물건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를 뜻하고, 소유는 법질서에 의해 정당화된 지배를 뜻한다. 이 구별은 고대 로마법의 태도를 그대로 본받은 것이다. 그러나 근대 이전 게르만법에서는 점유와 소유를 구별하지 못했다. 물건을 지배할 권리를 사실상 지배라는 외부적 현상을 통해 파악했다. 이를 ‘게베레’라고 한다. 어원이 ‘권리의 옷’인 데서도 알 수 있듯 권리를 감싸고 있는 겉옷처럼 점유와 소유를 뭉뚱그려 파악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물건의 주인은 그것을 권리 없이 점유한 자에게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금전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통설이다. 금전은 고도의 유통성이 있기에 일반적으로 금전을 점유하는 자가 곧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법에 전혀 근거가 없고 합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한 이론이다. 먼저 우리 민법은 소유와 점유의 구별이 금전에도 적용됨을 전제로 하는 규정이 있다. 도둑한테서 훔친 돈을 받은 사람은 훔친 돈인 줄 알 수 없었던 경우에 한해 완전한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한다. 돈을 점유하는 도둑이 소유자라고 보면 성립할 수 없는 규정이다.

영국 속담에 ‘돈에는 귀표(주인을 가리기 위해 가축의 귀에 한 표시)가 없다’고 한다. 통설은 돈에는 표시가 없어 주인을 가리기 힘들다는 현상에 착안한 이론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권리의 존재의 문제와 증명의 문제를 혼동한 것이다. 내가 도둑맞은 돈은 내 돈임에는 틀림없지만 단지 그걸 증명하지 못해 반환청구를 하지 못할 뿐이다. 더구나 이 이론은 정황상 주인이 명확한 경우에는 전혀 타당하지 않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예전에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은행강도 사건이 있었다. 강도 둘이 경비가 허술한 은행지점을 골라 수억원을 털었다. 상당기간 도주한 끝에 체포됐는데, 그동안 유흥비 등으로 쓰고 남은 돈은 고스란히 승용차 트렁크에서 발견됐다. 체포한 경찰은 압수한 돈을 누구에게 돌려줘야 할까. 당연히 털린 은행이라는 것은 법률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다. 그러나 통설에 따르면 피해 은행은 두 강도의 다른 채권자들과 함께 채권액의 비율에 따라 권리를 행사해야 할 것이다. 강도가 점유하는 돈은 강도의 소유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최근에 도난당한 돈을 도둑이 그대로 보관해 구별이 가능한 상태에서 원소유자가 도둑을 협박해 돈을 되찾아 와서 공갈죄가 문제된 사건이 있었다. 대법원은 공갈죄를 부정했는데 상식에 부합한다. 그러나 통설에 따르면 돈을 점유한 도둑이 소유했으므로 공갈죄를 긍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금전은 점유 있는 곳에 소유 있다’는 학설은 결국 힘이 곧 법이 될 수 있다는 좋지 않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원래 이 이론은 1930년대 말 전통적인 법 개념과 형식을 평가절하한 독일 나치시대의 이론을 일본 학자가 수입해 퍼트린 것이다. 그런데 해방 이후에도 우리 학계에서 이 위험한 이론을 반성 없이 답습했다. 올해는 광복 70년이 되는 해다. 식민청산에 있어서는 법분야도 예외가 아닌 듯싶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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