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전쟁 폐허를 딛고 일어서 숨가쁘게 달려온 70년. 20여회의 기획기사를 통해 그 의미와 교훈을 되새겨본 을미년 한 해도 저물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고 선진의 문턱에 도달해 있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남북통일이라는 절박한 과제가 남아 있다.
3공화국 시절부터 박근혜정부에 이르기까지 북한·통일문제에 천착해 온 강인덕(83) 경남대 초빙석좌교수는 “1880년부터 국권이 강탈당한 1910년까지 30년 동안 우리가 당한 역사적 경험을 지금도 되새겨야 한다”며 “현재의 한반도 상황은 통일지향 과정에서의 특수관계라는 점을 지켜가며 평화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3공화국 시절부터 박근혜정부에 이르기까지 북한·통일문제에 천착해 온 강인덕(83) 경남대 초빙석좌교수는 “1880년부터 국권이 강탈당한 1910년까지 30년 동안 우리가 당한 역사적 경험을 지금도 되새겨야 한다”며 “현재의 한반도 상황은 통일지향 과정에서의 특수관계라는 점을 지켜가며 평화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중정부 시절 초대 통일부장관을 지낸 강 전 장관은 지난 18일 오전 서울 삼청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통일은 휴전선이 없어지고 본래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로 돌아가는 것인데, 과거에 그럴 때마다 강대국의 간섭이 있었다”며 “미국이든 중국이든 아무리 간섭한다 해도 남북한이 통일하겠다고 나서면 반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우리 정부의 첫 대북 심리전을 진두지휘한 그는 통일을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적극적인 ‘심리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강 전 장관은 “현재의 통일교육은 돼먹지 않았다”며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게 ‘통일이 되면 수백조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식으로 잘못 생각하도록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통일 항아리니 통일기금 모금이니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며 “통일 이전에 북녘 동포들에게 우리의 통일의지를 전달하는 데 돈을 쓰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김대중정부의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강인덕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석좌교수가 18일 서울 삼청동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광복 70년, 분단 70년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반도 통일 전망 및 방안 등을 밝히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
“지난 70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남북이 분단으로 가는 과정이 너무나 선명히 보인다. 남북 간 체제경쟁에서 정신적, 물질적으로 우리가 이긴 것은 맞지만 이 힘을 어떻게 북쪽에 투영시켜 통일을 이룰 것인지에 대한 과제가 남아 있다. 무력통일은 불가능하고 북한 스스로의 체제변화를 통해 평화통일로 가야 하지만 김정은체제가 스스로 평화적으로 개혁·개방의 길로 갈 것 같지는 않다. 북한 핵 문제가 걸려 있는 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완전히 멈출 수밖에 없다. 지금 북한 핵 문제가 너무 커졌다.”
―광복·분단 70년 동안 남북관계에 대한 총평은.
“남북관계의 대전제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특수관계’라는 점이다. 북한은 통일을 반미·민족해방투쟁인 동시에 혁명과 반혁명 사이의 계급투쟁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위해 6·25전쟁을 일으켰고 우리는 이를 저지하기 위한 노력을 펼쳐왔다.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특수관계’라는 대전제가 변화한다면 남북 간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몇 년 안에 통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북한이 곧 망한다고 보는 식의 사고는 대단히 잘못됐다. 급변사태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김정은체제가 단기간에 무너지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북한 세습체제는 기득권 세력의 권력공동체가 작동하는 한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서서히 안정된 상태로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동체 내부가 완전히 분열돼 분쟁으로까지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그들 사이에는 자칫 조금만 잘못하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공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핵 하나 갖고 북한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까. 핵을 갖고 있되 북한 주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친다면 체제가 유지될 것이고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북한을 무너뜨리기로 한다면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가야하고, 평화통일을 지향한다면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우리 정부의 구체적인 전략·전술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통일을 위한 우리 내부의 국민적 의지 결집이 중요한데 남한 내 남남갈등이 심하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우리 내부의 갈등은 역사적인 것이다. 6·25전쟁으로 인한 한이 맺힌 사람이 많다. 이러한 한은 언제든 분출된다. 상당한 시간을 거쳐 세대가 바뀌고 국민적 인식과 국제사회가 변화하면서 서서히 가라앉을 것이라고 본다.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이고, 오늘날과 같은 혼란은 과도기적 현상이며, 우리가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역사적 발전단계를 밟지 않으면 나중에 다시 그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젊은 세대에 대해 희망을 갖고 있다. 인류가 창조한 보편적 가치인 인권·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깨우치도록 교육하면 된다.”
“올해 8·15부터 평양시(時)를 사용하기로 한 것은 완전히 ‘투 코리아’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우리 정부에 대한 호칭 문제도 그렇다. 북한이 8월 목함지뢰 도발 당시 ‘대한민국 청와대’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대단히 못마땅하다. 대남·통일 문제는 대남공작 부서인 통일전선부 담당인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명의로 대남 입장을 발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국가와 국가 간 관계로 몰고 가려 한다면 어떤 행동을 취할까.
“여러 가지 새로운 제안을 내놓을 것이다. 그 첫번째는 평화체제 문제가 될 것이다. 북한이 앞으로 ‘평화공존’이라는 단어를 공개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경계해야 한다. 평화공존은 국가와 국가 간 관계, 즉 ‘투 코리아’를 의미하는 말이다. 북한이 ‘평화공존 관계’로 몰고 가면 국가와 국가 간 관계가 되기 때문에 휴전선은 국경선이 된다. 새로운 평화협정 문제가 대두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 남북관계 등 전부 다 새로운 체제로 변화해야 한다. ”
―내년이면 김정은체제가 집권 5년차를 맞이한다. 북한에서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 교체)’가 일어날 가능성은.
“레짐 체인지로 세습체제가 무너지면, 군부든 뭐든 누가 새로 (집권세력으로) 등장해도 지금의 세습체제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렇게 될 때 내분이 일어난다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권력 공동체에 속해 있던 소수의 당원과 다른 세력 간 충돌이 일어나면 내전상황이 올 수 있고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또 하나의 분쟁지역이 될 텐데 이런 경우의 혼란을 어떻게 수습하고 우리 쪽으로 유리하게 통일이 이뤄지도록 끌고 올 것인지가 큰 문제가 될 것이다.”
―통일을 위해 주변국 협조를 구하기 위한 방안은.
“통일비용이 큰일이라고 떠들어대니 통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이다. 통일되면 수백조가 필요하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북한 주민들이 바보가 아니다. 우리 학생들에게 어릴 때부터 통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교육을 해야 한다. 한반도 통일이 주변국가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인식시키고, 이 학생들이 자란 뒤 주변 강대국 젊은이들과 서로 얘기를 나누며 ‘통일 우호적 관계’를 맺도록 하면 (주변국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불식될 것이다.”
대담=박창억 외교안보부장, 정리=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
●1932년 평남 평양 출생 ●1971년∼1975년 중앙정보부 해외정보국장·북한정보국장 ●1975년∼1978년 중앙정보부 심리전국장·북한국장 ●1981년∼1993년 평화통일자문회의 이념제도분과위원장 ●1979년∼1998년 국방부·문교부·안기부·KBS사회교육방송 자문위원 ●1979년∼1998년 극동문제연구소 소장·이사장 ●1998년∼1999년 초대 통일부 장관 ●2013년∼현재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통일·북한 분야) ●2015년∼현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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