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화백은 인생 후반기에 한국 채색화의 전통을 찾아세우는 데 집중했다. 샤머니즘의 색채, 불교의 탱화, 절간의 단청 등이 자신의 종교인 것 같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이 모든 것들이 서민 생활과 직결되는 그야말로 ‘그대로’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문인화를 싫어했다. 하지만 중국의 제백석이나 오창석의 수준 높은 문인화는 예외로 여겼다. 그것들을 우리 식으로 흉내 낸 것들에 대한 혐오다.
요즘 연예인 작가들을 대하는 프로작가들의 태도와 많이 닮았다. 뼈를 깎고 피를 토하듯 매달려도 좋은 작업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인데, 여기(餘技)로 작업한 것을 가지고 대중 앞에서 어필하려는 모습이 가당치 않다는 것이다. 언론이 대중스타를 연예뉴스 다루듯 스타 작가로 띄우는 것에 심한 불쾌감을 표하는 것이 전업작가들이다.
어찌됐건 봄꽃의 계절이다. 박 화백의 채색화 중에서 유일하게 설레는 봄바람이 느껴지는 작품이 ‘성산일출봉’이다.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은 연애감정 같은 감성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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