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S 스토리] 집에서 책 읽고 '미드' 보며 뒹굴뒹굴… 휴식의 재발견

관련이슈 S 스토리

입력 : 2016-08-06 14:00:00 수정 : 2016-08-06 14:25:00

인쇄 메일 url 공유 - +

집 떠나면 고생

바가지 요금·인파에 되레 스트레스

성인 절반 "휴가 때 여행 안가도 좋다"
“그냥 집에서 ‘뒹굴뒹굴’할래요.”

직장인 정예은(31·여)씨는 올여름 휴가 때 ‘반드시’ 집에만 있을 생각이다. 정씨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친구들이 올린 해외여행 사진이 범람하지만 전혀 부럽지 않다. 집 앞 슈퍼도 잘 안 나가는 ‘집순이’(여가 대부분을 집에서 즐기는 여자)라는 정씨는 ‘방구석에만 있지 말라’는 어머니 잔소리에도 집이 좋다. 정씨는 “굳이 어딘가를 찾아야만 휴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올여름엔 어렸을 적 즐겨보던 만화책들을 쌓아 놓고 다시 읽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물놀이·바다·여행… 휴가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휴가 때 여행을 가지 않거나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스테이케이션족’이 늘면서 전통적인 휴가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스테이케이션족’이 늘고 있다


5일 시장조사 전문기업 트렌드모니터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여름휴가에 여행을 떠나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여행을 가지 않아도 좋다’고 응답한 비율이 50.6%로 절반을 넘었다. 그 이유로 ‘성수기 인파와 바가지 요금 때문’이라는 응답이 72.1%로 가장 많았고 ‘차분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해서’(49.6%)가 그 뒤를 이었다.

최근 가족과 부산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강모(37)씨는 “운전하고 아이들 돌보느라 쉴 틈이 없었다”며 “보채는 가족들 때문에 집을 나섰지만 집에서 TV나 보면서 쉬었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고 했다. 울산에 사는 직장인 이선(32)씨도 “3박4일 동안 가지고 놀 신형 비디오게임기와 게임CD를 여러 장 주문했다”면서 “집에서 조이스틱 붙잡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에어컨 바람으로 시원한 도심 속 도서관과 대형서점 등도 ‘괜찮은’ 피서지로 떠올랐다. 서울 광화문의 한 대형서점을 찾은 박모(26)씨는 “아침 일찍부터 와서 책 한 권을 거의 다 읽었다”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테이블도 마련돼 있어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한 대형포털에 올라온 ‘서점 피서’ 관련 블로그 게시글은 지난달에만 200여건이 올라왔다.

유통업계도 ‘스테이케이션족’ 잡기에 주력하고 있다. 각종 피규어, RC카 등을 판매하는 이마트 일렉트로마트에 따르면 ‘비수기’로 통하는 지난달 ‘취미·조립완구’의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14.2%가량 늘었다. 고객 1인당 구매금액을 뜻하는 객단가도 올 상반기 처음으로 2만원을 넘어섰다. 마트 관계자는 “특히 고가 상품의 매출이 늘었다”며 “집에서 휴가를 보내려는 성인을 위한 상품 마련에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특별한 계획 없이 휴가를 보내는 ‘스테이케이션족’이 늘어난 데는 최근 나타난 ‘홀로족’ 현상과도 무관치 않다. 관계에 지친 현대인들이 홀로 부담 없이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낯설지 않다는 얘기다.

서울대 전미영교수(소비자학)는 “‘혼밥족’, ‘혼놀족’이 자연스러워진 것처럼 홀로 집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도 이상할 것 없는 일”이라며 “가족이 아닌 ‘나를 위한’ 휴가로 모습이 점차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혼자 놀기: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의 작가 강미영씨는 “터부시되던 ‘혼자 놀기’는 지친 현대인들이 스스로의 삶을 위로하는 한 방식”이라며 “관계에 무던해지고 지친 사람들이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재충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각박한 현실이 ‘스테이케이션’ 만들었다는 시선도

스테이케이션 현상에서 현대인의 그늘진 모습이 투영된다는 시각도 있다. 그럴듯하게 포장된 스테이케이션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각박한 현실이 웅크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행정고시 2차시험을 본 대학생 전성규(25)씨는 “휴가를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처지”라며 고개를 저었다. 줄곧 시험만 끝나면 어디로든 훌쩍 떠나리라 마음 먹었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기숙사에서 다큐멘터리를 하루 3∼4편씩 보는 것이 유일한 휴식이라는 전씨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설령 여행을 가더라도 제대로 쉬지 못할 것”이라며 “스테이케이션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정말 본인 의지인 경우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올해 서울의 한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남정희(27·여)씨도 상황은 비슷하다. 3년의 준비 끝에 합격통지서를 받은 남씨였지만 기쁨은 잠시였고 다시 공부에 매진해야 했다. 귀중한 방학기간을 ‘휴가 따위’에 허투루 쓸 수도 없었다. 매일 도서관과 집만 오가고 있다는 남씨는 “휴가를 못 가는 데는 솔직히 경제적인 문제도 크다”며 “삶을 돌아볼 여유를 잃은 것 같다”고 씁쓰레했다.

최근 국토교통부 조사에서도 ‘휴가를 가지 않겠다’고 응답한 사람 중 31.4%가 ‘생업(사업)상의 이유’를 꼽았고 ‘휴가비용이 부담된다’는 이유를 든 응답자도 23.8%였다.

덕성여대 최승원 교수(심리학)는 “양극화와 극심한 취업난이 만드는 고질적인 ‘불안’은 현대인들에게 ‘쉰다는 것’을 고려할 여유조차 빼앗았다”며 “최근 스테이케이션족이 늘어나는 것은 휴가에 대한 인식전환뿐만 아니라 주머니 사정 등 현실적인 이유도 밑바탕에 깔려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창수·남혜정 기자  winteroc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츄 '상큼 하트'
  • 츄 '상큼 하트'
  • 강지영 '우아한 미소'
  • 이나영 ‘수줍은 볼하트’
  • 조이현 '청순 매력의 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