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 최고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찜통 더위가 지속되면서 대한민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휴가철임에도 산이나 바다 보다는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집에 머물거나, 실내공간에서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로 대형 쇼핑몰은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러나 이처럼 막대한 양의 전력을 사용하면서, 곳곳에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바로 정전이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 지난달 중순부터 현재까지 이틀에 1번 꼴로 발생한 정전은 전국 각지의 아파트 단지부터 대중교통·병원·리조트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며 큰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올 여름 '최대 전력' 역대 최고치, 전국 각지에서 정전 잇따라
정전 예방 및 전력 수급 안정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다양한 절전 캠페인을 통한 전력 수요 감소를 유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올 여름 최대 전력 수요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 매년 늘어가는 전력 사용량 추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16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연간 가장 많은 전력 부하를 의미하는 ‘최대 전력’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006년 5890만kW였던 최대 전력은 △2008년 6279만kW △2010년 7130만kW △2012년 7598만kW △2014년 8015만kW를 기록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6000만kW에 못 미치던 최대 전력이 10년새 130% 이상 증가, 8000만kW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올 여름 최대 전력 수요는 이미 8170만kW를 넘어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 수치가 최대 8370만kW까지도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력 사용이 늘어나면서 지난달부터 현재까지 전국 각지에서 30건 이상의 크고 작은 정전사고가 보도됐다. 수도권 내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거나 교통신호기가 작동을 멈추면서 극심한 교통 혼잡이 발생하기도 했고, 전국 각지의 대단지 아파트에서 잇달아 크고 작은 정전 사태가 나면서 입주민들이 집밖으로 나와 뜬 눈으로 밤을 지새기도 했다.
◆정전으로 인한 손실 ↑…'백업전력' 준비 상황은?
특히 지난 6월에는 정부세종청사 건물에 정전이 발생해 업무가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청사는 정전 발생 직후 비상전력을 가동했으나, 비상발전장치에마저 이상이 발생하자 가동을 중단해야 했다. 이 때문에 국가 1급 보안인 정부청사는 12분 동안 전기 공급이 완전이 중단된 상태로 무방비하게 노출됐다.
정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손실은 상상을 뛰어 넘는다. 일례로 삼성반도체공장에 버금가는 대형 규모의 공장 같은 경우 0.001초만 순간정전이 되더라도 700억원의 손실을 입을 수 있다.
한 업체가 발표한 정전 피해 사례 조사 결과를 보면 전력 공급이 무엇보다 중요한 데이터센터의 경우 올해 발생한 사고 피해금액이 지난 2010년에 비해 38% 가까이 증가했다. 특정 데이터센터에 정전이 발생했을 때의 피해 금액은 2010년 평균 약 5억9000만원에서 작년 한 해 약 8억6000만원으로 2억7000만원 늘었다. 이는 정전 1분에 약 1000만원의 손실이 발생함을 의미한다. 또한 의료기관에서는 정전으로 인해 환자의 목숨을 잃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으며, 전산센터의 경우 카드 결제가 불가능해져 실제 소매점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전 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백업전력’에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대부분의 전력 공급 체계는 평상시 전력을 제공하는 △주전력 △비상전력 △백업전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가 발생해 주전력이 차단될 경우 비상전력이 이를 대신한다. 그러나 비상전력은 가동을 시작해 전력을 생산하기까지 일정 시간이 소요, 주전력 끊김과 비상전력 공급 시작 사이에 공백이 생기게 된다.
이럴 경우 그 공백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백업전력이다. UPS(Uninterruptible Power Supply) 또는 무정전전원장치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백업전력은 정전이 되더라도 전원이 끊기지 않고 전력을 유지시켜준다. 예를 들어 컴퓨터로 문서를 작업하던 중 갑자기 정전이 되면 전력 공급 중단으로 소중한 데이터를 잃어 버릴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컴퓨터가 망가지거나 성능이 급격하게 저하되기도 한다. 이때 UPS는 사용자가 작업하던 내용을 안전하게 저장하고 전원을 끌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 UPS가 벌어 주는 시간은 장치의 용량에 따라 짧게는 5분, 길게는 최대 2시간에 해당한다.
◆정전 대비 시스템 구축, 비용이 아닌 '필수투자'로 생각해야
UPS 도입으로 정전 시에도 내부 시스템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미국 앨라바마 주에 위치한 모빌 컨트리 공립학교가 있다. 모빌 컨트리 공립학교는 여름철이면 한달 가운데 22일은 천둥 번개가 내리치는 미국 앨라배마 주의 모빌 카운티에 위치해있다.
이 학교는 수시로 발생하는 정전으로부터 교내 네트워크 시스템을 안전하게 보호하고자 APC Smart-UPS 시스템을 도입했다. Smart-UPS는 정전으로부터 교내 네트워크 스위치를 보호해 인터넷 끊김을 방지한다. 덕분에 모빌 컨트리 공립학교에선 수시로 정전이 발생해도 컴퓨터가 다운돼 수업이 중단되거나, 아이들이 시험을 못 보게 되는 일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다.
한국의 경우 지난 2013년 금융위원회가 ‘금융전산 보안강화 종합대책’을 통해 정전대비 위기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자 영업점 UPS 도입을 권고하기도 했다. 보안과 신뢰성이 생명인 금융업계 가운데 안정적인 전력 공급은 필수적임에도 은행 자동화기기(ATM)의 UPS 설치율이 저조했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정전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수술실 △응급실 △교통신호체계 △은행뿐만 아니라 △소규모 사무실 △ATM △대형마트 POS(계산단말기) 등에도 UPS의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전에 제대로 대비하기 위해서는 비상발전기와 UPS의 설치를 단순히 비용으로 여기지 않고 정전으로 인해 발생할 손실을 막아줄 ‘투자’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일상의 많은 부분이 디지털화되면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활동이 늘어난 만큼, 안정적인 전력 수급을 통해 정전 발생 시의 손실을 최소화할 방안을 강구할 때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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