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글’은 의미 구성과 전달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영상’이 대중과 교감해가며 의미를 구성하고 전달하는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영상이 매력적인 이유는 우리의 오감 중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해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더라도 곧바로 의미를 전달한다는 데 있다. 이에 비해 글은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하지 않는다. 글을 통해 우리가 의미를 구성하려면 눈을 통해 들어온 텍스트에 상상력을 가미해 우리만의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긴 과정이기도 하고 모든 이가 성공하는 과정이 아니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글에 비해 영상은 의미 전달이라는 점에서 훨씬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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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한 서울시립대 교수 영문학 |
나름대로 의미 구성과 전달에 훌륭한 영상에 이의를 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영상이 지닌 매력 뒤에 숨어 있는 위험성이 적지 않다. 이 위험성은 영상이 너무 매력적이기에 영상을 본 사람들이 영상과 사실을 혼동할 수 있다는 데서 비롯한다. 심지어 다큐멘터리조차 사실이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재단된다. 제작자가 전달하고 싶은 의미를 설정하여 어떤 사실은 강조되거나 삭제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다큐멘터리로부터 구성된 의미도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과 일치한다고 할 수 없다.
허구가 가미되기 마련인 영화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감독과 배우가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연하려는 의도가 있다 할지라도 영화는 감독의 의도에 따라 채색되기 마련이고, 배우가 연기한 역사적 인물도 배우가 형성한 이미지에 의해 채색되기 마련이다.
영화는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영상매체는 아니다. 영화는 오히려 나름대로의 사실을 구성하는 매체라 해야 옳을 것이다. 감독과 배우에 의해 채색돼 구성된 사실 말이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영화는 제작자, 감독, 작가, 배우 등이 함께 노력해 완성한 역사적 사실의 허구적 재구성이기에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고 칭송받아야 한다. 다만 예술과 현실을 혼동하면 안 되며, 예술과 현실을 혼동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영상이 지배적인 의미 구성과 전달의 핵심이 된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영상이 지닌 순기능과 역기능을 이해토록 하는 시도가 좀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인한 서울시립대 교수 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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