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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영상 매체의 매력과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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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12 20:07:12 수정 : 2018-01-12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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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청각 자극 상상력 발휘/의미 구성·전달 강점 있지만/제작자·감독 의도 따라 채색/순·역기능 이해하는 시도 필요 우리의 질곡의 과거사를 다룬 영화 ‘국제시장‘ ‘군함도’ ‘1987’ 등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영화화된 사건과 인물도 재조명을 받고 있다. 역사적 사실의 충실한 재현이 이루어졌는가, 영화 속 인물이 실제 인물의 충실한 반영인가 등의 논의가 그것이다. 영화라는 영상매체가 강력한 이유는 한번에 어떤 이슈나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고취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글’은 의미 구성과 전달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영상’이 대중과 교감해가며 의미를 구성하고 전달하는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영상이 매력적인 이유는 우리의 오감 중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해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더라도 곧바로 의미를 전달한다는 데 있다. 이에 비해 글은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하지 않는다. 글을 통해 우리가 의미를 구성하려면 눈을 통해 들어온 텍스트에 상상력을 가미해 우리만의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긴 과정이기도 하고 모든 이가 성공하는 과정이 아니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글에 비해 영상은 의미 전달이라는 점에서 훨씬 효과적이다.

전인한 서울시립대 교수 영문학
그러나 영상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영상은 우리가 상상력을 발휘할 공간을 주지 않는다. 영상은 이미 완성된 이미지와 소리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이미지와 소리는 우리 스스로가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닌 타자가 자신의 상상력을 체화시킨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글로 의미를 구성할 때 독자는 소비자이자 생산자이지만 영상을 통해 이미지를 전달받는 시청자는 의미의 소비자에 지나지 않는다. 필자는 원칙을 하나 가지고 있다. 글과 영상을 섞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은 대학생 때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어서 원작 소설을 찾아 읽었다가 드라마를 통해 전달받은 이미지 때문에 소설에서 이미지를 새로 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것을 깨닫고 난 이후부터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았으면 원작이 있더라도 따로 읽지 않는다. 원작을 읽어봐야 의미 구성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작을 읽었으면 가능한 원작이 영상화된 영화는 보지 않는다. 애써 상상력으로 만든 형상이 영화의 분명한 이미지로 인해 깨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상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보다는 제한하는 한계가 있다.

나름대로 의미 구성과 전달에 훌륭한 영상에 이의를 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영상이 지닌 매력 뒤에 숨어 있는 위험성이 적지 않다. 이 위험성은 영상이 너무 매력적이기에 영상을 본 사람들이 영상과 사실을 혼동할 수 있다는 데서 비롯한다. 심지어 다큐멘터리조차 사실이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재단된다. 제작자가 전달하고 싶은 의미를 설정하여 어떤 사실은 강조되거나 삭제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다큐멘터리로부터 구성된 의미도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과 일치한다고 할 수 없다.

허구가 가미되기 마련인 영화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감독과 배우가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연하려는 의도가 있다 할지라도 영화는 감독의 의도에 따라 채색되기 마련이고, 배우가 연기한 역사적 인물도 배우가 형성한 이미지에 의해 채색되기 마련이다.

영화는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영상매체는 아니다. 영화는 오히려 나름대로의 사실을 구성하는 매체라 해야 옳을 것이다. 감독과 배우에 의해 채색돼 구성된 사실 말이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영화는 제작자, 감독, 작가, 배우 등이 함께 노력해 완성한 역사적 사실의 허구적 재구성이기에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고 칭송받아야 한다. 다만 예술과 현실을 혼동하면 안 되며, 예술과 현실을 혼동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영상이 지배적인 의미 구성과 전달의 핵심이 된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영상이 지닌 순기능과 역기능을 이해토록 하는 시도가 좀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인한 서울시립대 교수 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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