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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판사·배석판사 ‘갈등의 골’…합의재판부 '삐걱'

입력 : 2018-07-16 19:19:59 수정 : 2018-07-16 17: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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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내 ‘벙커 부장판사’ vs ‘벙키 배석판사’ 논쟁 / “폭언에 야근·주말근무도 당연시” / “초안 완결성 떨어져 일일이 수정” / “폭언에 야근·주말근무도 당연시” / 고충처리위원회 접수… 수면위로 / 인사 적체로 배석 근무 늘어난 탓 / “1심 단독화·2심 대등재판부” 주장 / 23일 법관회의서 논의 여부 주목
인기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의 이야기 중심은 서울중앙지법 민사44부 재판부다. 인간미 넘치는 한세상 부장판사(재판장)와 냉철한 엘리트 임바른 판사(우배석), 정의감에 불타는 신참 박차오름 판사(좌배석)가 주인공이다. 살아 온 환경과 성격, 직업관 등이 제각각인 세 사람은 때론 의견 차로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서로 보듬고 존중하며 정의롭고 제대로 된 판결을 위해 힘쓴다. 팀워크가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에선 이와 다른 모습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법원 내 ‘벙커’와 ‘벙키’ 논쟁이 대표적이다.

벙커와 벙키는 각각 정말 힘들게 해서 함께 근무하고 싶지 않은 부장판사와 배석판사를 가리키는 판사들 사이의 은어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중앙지법 한 재판부의 부장판사와 배석판사들이 갈등을 겪고 있다는 내용을 법원 고충처리위원회가 접수했다. 고충처리위는 해당 부장판사 사무실과 나란히 붙어 있는 배석판사들 사무실을 다른 층으로 옮겼다. 이 재판부는 다음달 사무분담이 바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또 다른 재판부도 부장판사와 배석판사 간 갈등으로 배석판사들이 단독판사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법원 내 ‘벙커 부장판사’와 ‘벙키 배석판사’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올해 한 법관 워크숍에서 발표된 배석판사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부장판사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 배석판사들은 판결문 수정이 필요할 때 부장판사가 고쳐야 할 점을 정확히 지적하지 않고 화를 내거나 판결문을 대폭 뜯어고치는 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무 외적으로도 △배석판사와 협의 없는 재판 일정 결정 △야근과 주말근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인식 △폭언이나 부적절한 언행 △전임 배석이나 좌·우 배석 간 비교 등도 자제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재경지법의 A배석판사는 “배석판사들이 야간·주말근무를 자주 하지 않는다며 사명감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배석판사들은 대등하게 이뤄져야 할 합의부 판결이 사실상 부장판사 중심으로 결정된다는 점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부장판사들도 배석들이 작성하는 판결문 초안의 질 등을 놓고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대법원 규칙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 제2장 4조에 따르면 합의부의 경우 재판장에 대해 주심사건을 분담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이 규정에 따라 합의부 사건별 판결문은 주심인 배석판사가 쓰고 부장판사가 최종 수정하는 게 관례다. 재경지법의 B부장판사는 “배석판사가 기록을 꼼꼼하게 보고 완결성이 높은 판결문 초안을 쓰지 못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부장(판사)들 몫”이라고 말했다. 수정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 배석판사들을 보면 속 터지기도 한다.

양측 갈등은 배석판사 기간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변호사업계 불황 등으로 ‘경력 법관’과 법복을 벗지 않는 고참판사가 늘면서 법원 내 인사적체가 심각한 상황이다. 그만큼 각 법원에서 배석판사로 근무해야 하는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전국 최대 규모인 서울중앙지법만 해도 법관 임관 15년째인 사법연수원 33기까지 배석판사로 근무하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배석판사들의 법관 경력이 높아졌음에도 부장판사 중심의 대등하지 못한 합의부 판결이나 판결문 작성 등 기존 합의부 관습이 유지되면서 배석판사들의 불만기류가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소재 법원 C판사는 “전에는 길어야 5년가량 배석판사로 근무했다면 지금은 보통 7∼8년, 심지어 10년을 넘기기도 한다”며 “이런 추세라면 배석 기간이 더 늘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법원 내에서 1심을 전원 단독화하고 지방법원을 중심으로 항소심을 대등재판부로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오는 23일 예정된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이 같은 문제가 논의될지 주목된다.

염유섭·배민영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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