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007’시리즈를 대표하는 故 로저 무어의 팬서비스가 회자된다.
복수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소개된 이 사연은 지난해 ‘CNN’에 알려질 정도로 네티즌들의 시선을 모았다.
사연은 1983년 프랑스 니스 공항에서 시작된다. 7살이던 사연 속 주인공은 할아버지와 함께 공항을 거닐다 로저 무어를 발견했다. 당시 007 주인공 제임스 본드의 사인을 받고 싶던 소년은 할아버지를 앞세워 사인을 요청했다. 이에 로저 무어는 흔쾌히 비행기 티켓 뒷펀에 사인과 행운의 메시지를 적었다. 하지만 소년은 제임스 본드의 본명인 ‘로저 무어’는 모르는 상태였다.


소년은 이 사실을 할아버지에게 알렸고, 할아버지는 다시 로저 무어에게 다가가 “손자가 말하길 당신이 이름을 잘못 쓴 거 같다고 하군요. 당신이 제임스 본드라던데요?”라고 물었다. 이를 들은 로저 무어는 무언가 깨달은 표정으로 소년을 불렀다. 몸을 낮추며 주변을 살핀 뒤 특유의 눈썹치켜올리기를 보인 그는 귓속말로 “나는 로저 무어라고 사인할 수밖에 없어. 그렇지 않으면 내가 여기 있다는걸 블로펠드가 알아낼 지도 모르거든. 제임스 본드를 봤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줘”라고 속삭였다. 자리에 돌아온 소년은 세상에 하나뿐인 비밀을 간직하게 됐고, 제임스 본드냐고 묻는 할아버지에게 “아니요”라고 고개 저었다.
세월이 흘러 소년은 유니세프와 관련된 촬영작가로 일하게 됐다. 당시 유니세프 대사로 활약한 로저 무어가 촬영장을 방문, 글쓴이는 그에게 과거 이야기를 털어놨다. 이를 들은 로저 무어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음, 기억은 안 나지만 제임스 본드를 만났다니 좋았겠네요”라고 답했다.

촬영이 끝나고 로저 무어는 복도에 있던 글쓴이를 지나쳤다. 그러다 다시 글쓴이에게 다가온 그는 주위를 둘러본 뒤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론 우리가 니스에서 만난걸 기억하고 있지. 하지만 저 안에선 카메라맨 때문에 말할 수 없었어. 누구든지 블로펠드를 위해 일할 수 있거든”이라고 말했다. 서른 살의 직장인이 7살 소년으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이종윤 기자 yagubat@segye.com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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