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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과 신뢰로 日서 창업 성공 … “사내 대물림 경영” [마이라이프]

, 마이 라이프

입력 : 2019-03-30 02:00:00 수정 : 2019-03-29 2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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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배 키스코재팬(주) 회장 / 韓 IT 인재 日 진출 1세대 / 교보정보통신 일 지사 파견 인연/ 2001년 몇명과 소규모로 창업 / 현재 프로그래머만 수백명 일해 / 韓·美·日에 자회사만 6개나 설립 / 양국 기술력 교류 강화 필요/ 그간 채용 한국 인재만 1000여명 /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 보면 보람 / 日 은행 문턱 낮아 자금 조달 쉬어 / 100% 노력한다면 성공 확률 높아 / 기업은 개인 아닌 사회 것 / 자신 소유물로 착각 땐 돈만 좇아 / 내 자식에게 회사 맡길 생각 없어 / 직원이 임원·경영자 되는 것 바람직 / 갑을관계 아닌 동반자 의식 가져야
“나 같은 사람이 기사꺼리가 되나요? 다른 훌륭한 분들도 많은데…” 자신을 낮추면서 처음 건넨 말에 고개가 숙여진다. 한국 IT의 성공 역사에서 (주)키스코재팬 전희배(65)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국내 IT붐이 일어나던 시절 미지를 개척했던 세대에 속한다. IT인재 일본진출의 1세대에 속하는 전 회장은 (주)교보정보통신 일본지사로 파견되었다가 IT기술에 매료되어 거의 평생을 바쳤다. 열심히 갈고 닦아 지사장 겸 임원 자리에 올랐으나 2000년 무렵 퇴직해야했다. 22년 동안 다녔던 회사를 40대 중반 나이에 갑자기 퇴직하니 막막할 수 밖에 없다. 살을 에는 듯한 추운 날씨보다 `마음의 추위`가 더 매서웠다고 전 회장은 당시를 떠올린다.

 

“아침에 출근할 곳이 없는 그 허전함이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그러던 내게 임원 시절 신뢰를 쌓았던 일본 대기업 임원들이 손을 내밀었어요.”

전 회장에게 일본은 직장을 잃은 눈물의 땅이 아니라 기회의 땅이 되었다. 2001년 전력제어 및 시스템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사업 기회를 잡아 창업한 키스코재팬. 직원 1명과 함께 시작했으나, 지금은 프로그래머만 200여 명이 일하는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척박한 일본 땅에서 자리를 잡았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일본과 한국, 미국에 자회사를 6개나 설립했다. 올초 해외 한인기업인에게 수여하는 대통령 표창도 받아 성가를 높혔다.

“해외 사업 기회로 본다면 일본보다 나은 나라가 어디 또 있을까. 한국보다 매출도 훨씬 많이 나오는데다 기업가에게는 사업 기회가 넓다. 정치인들이나 언론매체들은 일본 얘기만 나오면 벌때처럼 언성을 높히곤 하지만, 기업인에게 일본은 아주 큰 기회의 무대이다.”

전희배 회장은 인터뷰에서 “30년간 쌓은 인맥과 입소문을 탄 신뢰도에 끌려 한국 또는 일본 진출을 엿보는 양국 기업인이 자주 찾아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솔직히 IT 강국으로 대접받기 이전 한국은 대부분 일본의 기술 이전에 의존했다.

“과거의 경우 불과 3개월만이라도 일본 연수를 다녀오면 선진국 기술을 배운 인재로 인정받았다.”

전 회장은 도시바, 후지쓰, 후지제록스, 교세라, 일본 IBM, 메트라이프 등 일본을 대표하는 IT기업들과 소프트웨어를 거래하고 있다.

IT인재 일본 진출의 개척자로 주목받는 그에게 성공의 비결을 물어보았다.

“그 사람은 약속을 잘 지킨다, 그 사람은 믿을 수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없으면 외국인, 특히 한국인이 자리 잡기는 어렵다. 특히 일본에서의 평판은 무섭다. 잘못된 평판을 한 번이라도 나돌 경우 이를 회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혹시 일본 기업인들과 만나 비즈니스를 성사시키는 요령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평소의 행동은 나의 최고의 영업전략이다. 지금은 손해를 봐도 오래 사귈 수 있다면 결국은 이득이라고 생각해 거래처 관계자와 신뢰관계를 쌓는 데 집중했다.” 상투적인 답변이긴 하지만, 실천은 어렵다. 전 회장은 그렇게 인맥을 쌓는데 20년을 쏟았다.

“‘과연 믿을 만한 회사인가’, ‘중소기업과도 거래할 수 있는 회사인가를 먼저 보았다. 첫 거래를 위해 찾아간 굴지의 일본 대기업 임원 앞에서도 자신있게 대응했다. 속으론 정말 무섭고 두려웠지만 말이다.”

이처럼 당당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전 회장만의 기술력과 노하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래전 일이다. 일본 대기업에서 새로운 프로그램 언어 Flex를 활용한 시스템을 개발하려 했지만, 개발된 지 얼마 안 된 신언어였기에 벽에 부닥쳤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인 프로그래머가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운 언어인 Flex를 배운뒤, 의뢰받은 과제를 차분히 해결한 소프트웨어를 내놓으니 놀래더라.”

이 소식은 곧 Flex 기반 앱 개발에 의욕을 보이던 일본 대기업에 퍼지면서 키스코재팬의 신뢰도는 업그레이드 되었다.

‘제2의 손정의’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그는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너무 부족하니 그런 얘기는 하지마시고…한국 IT인재들의 뛰어난 기술력이 바탕이 되었기에 키스코재팬의 성장이 가능했다. 프로그래머의 80% 가량은 한국에서 온 젊은 인재들이다.”

‘한국과 일본의 기술력 차이는 있는가’라는 질문에 전 회장은 냉정한 평가를 내놓는다.

“한국의 IT 기술이 이전보다 크게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게임산업, 스마트폰 보급에 먼저 눈을 돌린 것이 주효해 한국의 기술력이 일본보다 우위를 점하는 분야가 상당히 늘었다. 그러나 일본은 먼저 한국으로 기술을 이전한 IT 선진국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5배에 달하는 거대한 시장을 갖고 있다.”

전 회장은 일본 시장에 대한 기업인의 견해를 내놓았다.

“첨단 기술력이란 한 나라에서 독점되는 것이 아니다. 경제 발전 속도에 맞춰 기술력도 이전되는게 일반적이다. 중국이 IT 분야에서 급속한 발전을 이뤄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면서 미래를 전망했다.

“이미 성숙 단계에 접어든 일본과 한국의 IT 시장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일 간 기술력 공유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함께 모색해야 한다.”

전 회장이 창업 이래 가장 힘을 쏟는 분야 중 하나는 한국 IT 인재의 일본 진출이었다. “양국의 IT 교류를 위해 많은 젊은 인재들이 일본에 진출하는 것은 정말 바람직하다.”

그간 전 회장이 채용한 한국 젊은 인재만 1000명이 넘는다.

전 회장의 경영 철학은 특별하다.

“기업은 어느 정도 규모에 이르면 혼자할 수 없는 일이다. 개인의 것이 되면 그 기업은 사회에 유화되지 못하고 돈만 쫓는 천박한 상인에 그친다. 기업은 그 기업의 조직원이나 사회의 것이 되어야 한다.”

전 회장은 ‘대물림 경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단호하게 잘랐다. 이 대목에선 한국 기업인들에게 경종이 될 만하다. “내 자식들에게 회사를 맡길 생각은 없다. 전문경영인에 의한, 또는 사원 출신 임원이 키스코를 이끌게 하고 싶다.”

그러면서 뛰어난 경영능력자에게 물려줄 것을 준비한다는 인생 3막의 목표를 소개한다. “내 직원들이 임원이 되고 경영자가 되어 조직원들과 함께 키스코를 오래 이끌어가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전문 경영인에 의한, 사원 출신 임원·경영인이 키스코를 이끌도록 해야할 것이다.”

전 회장이 주축이 돼 도쿄에 설립한 ‘재일한국소프트웨어협회’에는 코스모컨설팅, 토마토, PDS, 일한정보, PHP 등 IT기업 15개 회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 단체는 능력있는 한국 IT 인재들이 제 역할을 하도록 돕고 있다.

“일본 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은 게 사실이지만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기술력이면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협회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일본 시장의 장점을 몇가지 소개했다. 그 중 인상적인 것은 사업자금 조달이다.

“일본에서는 은행 문턱이 낮다. 돈이 없어 사업을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상적으로 성실하게 경영하다 잠시 어려워져도 회생 불가능한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외국인도 차별이 없다. 은행들은 자금을 줄 때 주로 기업을 본다. 국적과 상관 없이 기업 활동하는 데 문제가 없는지를 주로 들여다본다. 100% 노력을 다한다면 일본에서도 기업인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것 같다.”

일본내 기업 활동 여건에 대한 전 회장의 견해다.

“일본 기업들은 세계적인 불황에도 되살아나고 있는데 이는 끊임없이 갈고닦은 기술력 때문이다. 일본의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의 상당수가 중소기업 출신이란 점에서도 드러난다. 일본에서는 기업 규모나 배경과는 무관하게 우수한 기술력이 오랜기간 저변에 깔려 있다. 경제규모가 한국의 4~5배지만, 기초 기술을 포함한 기반 기술력은 이보다 몇 배 더 크다고 본다.”

전 회장은 “한국에서 흔히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지나친 갑을 관계도 사라져야 할 폐단”이라면서, “갑을 관계가 아닌 동반자적인 의식이 강해야한다. 신용을 쌓아서 한 식구가 되면 공동 동반자가 돼 함께 협력한다”고 했다.

“키스코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오면 우선 전문가로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인재들이 전문인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보람을 느낀다. 이들 중 일본내 명문 중고교와 대학에 입학시켜 자녀를 훌륭히 키우는 것을 볼 때 기업의 사회적인 기여가 매우 중요하다.”

그는 한국의 젊은 인재들에게 특별히 당부한다. “일본이나 미국 등 제3국에서 창업하면 언어의 장벽부터 기업 문화 차이 등 어려움이 많지만, 성과는 두 배 이상이라고 본다. 두나라 문화나 비즈니스 특징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훨씬 경쟁력을 갖출 수 있으니까.”

그는 특히 “성장 가능성이 엿보이는 젊은 인재들이 함부로 이직을 하거나 전직을 해서 재능을 썩히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전희배 회장은…

 

1954년 전북 익산생, 한국외대 석사, 호서대학교 박사학위 취득, 교보정보통신 일본지사 사장, 키스코재팬 설립 대표이사,주일한국대사관 자문위원, 재일본한인회 고문, 중소기업중앙회 일본 민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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