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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칼럼] ‘조국=촛불’이라는 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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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4-02 23:33:29 수정 : 2019-04-02 23:3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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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상식 무시한 ‘코드 인사’ 참사 / 문제도, 책임도 없다는 靑의 오만

보수 진영의 대표적 이론가인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는 노무현정부 초대 총리 후보로 천거됐다. 노무현 당선인으로부터 직접 이 얘기를 들은 김대중정부 고위 공직자는 “어떻게 신자유주의자를 총리 자리에 앉히느냐”고 펄쩍 뛰었다고 한다. 다른 이들 반대도 컸던지 ‘박세일 카드’는 무산되고 ‘고건 카드’로 대체됐다. 그 역시 내부 비판에 부딪혔지만 노 당선인이 밀어붙였다. 몽돌(노무현)을 잘 받치도록 안정적인 나무 받침대(고건)가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초대 통일부장관으로 당시 야당인 박근혜 의원 발탁을 검토하기도 했다.

 

김중권, 이종찬 등 구여권 인사들을 요직에 등용한 김대중정부에서도 내부 반발이 적잖았다. 김 대통령은 “진정한 정체성이란 국민이 원하는 바를 하는 것이다. 과거 야당에서 고생한 후보가 있어도 국민들이 그 사람보다 이 사람이 좋다고 하면 그걸 받드는 게 우리 정부의 정체성”이라고 설득했다고 자서전에 썼다. 제 편만으로는 국정 운영이 어려우니 인재풀을 넓게 쓰려고 애쓴 흔적들이다. 문재인정부에서는 과문한 탓인지 그런 발상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한때 호남 출신 중진 정치인의 입각설이 나돌았으나 구민주 세력을 끌어안으려는 정치공학적 접근이었을 뿐이다. 설사 성사됐다고 해도 국민 눈에는 ‘그 나물에 그 밥’이었을 거다.

황정미 편집인

‘촛불 정부’를 표방하는 현 정부는 유독 자기편 인사에 집착했다. “코드 인사는 나쁜 게 아닙니다. 정권을 잡았으면 자신의 정책을 펼치기 위해 소신과 배짱이 맞는 사람끼리 호흡과 손발을 맞추는 것이 당연합니다.” 정권 출범 후 대통령 인사 검증을 책임지는 조국 민정수석의 말이다.(‘진보집권플랜’) 문재인 대통령 생각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캠(캠프)·코(코드)·더(더불어민주당)’ 인사가 이어진 걸 보면 말이다. 역대 정부도 코드 인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반문할지 모른다. 조 수석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문제는 코드 인사를 하더라도 법과 상식을 존중해야 한다는 겁니다.”

 

청와대가 발표한 7대 인사 검증기준이야말로 ‘법과 상식’에 근거한다. 본지 특별취재팀 보도에 따르면 2기 내각 후보 7명 모두 이를 위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낙마한 조동호 과학기술부 장관 후보자는 가족 보유의 농지 관련 법률 위반 및 위장전입, 연구 부정행위 의혹과 장남 인턴 특혜 채용 논란에 휩싸였다. 청와대는 “해외 부실 학회 참석을 신고하지 않아 몰랐다”는 이유로 그의 지명을 철회했지만 이미 다른 의혹들로 임계점에 다다른 상태였다. 다주택 소유자에 갭투자 의혹을 받은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벌이는 정부 기조에 맞느냐는 논란 끝에 자진사퇴했다. “사전에 체크됐다”는 청와대 측 설명대로라면 인사 책임자들 상식과 국민 상식 수준이 다른 셈이다.

 

야당 비토에도 임명 강행이 점쳐지는 김연철 통일부장관 후보자는 더 심각한 케이스다. 금강산관광 중단을 초래한 박왕자씨 피격 사건은 “통과의례”, 천안함 폭침 사건은 “우발적 사건”이라고 언급했던 그가 청문회에선 “사과와 진상조사, 재발방지 대책 필요”, “천안함은 북한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정부 입장 그대로”라고 말을 바꿨다. “김 장관 내정은 미국과 관계없이 한반도 정세를 밀고 가겠다는 것”이라는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발언을 감안하면 청문회 문턱을 넘기 위한 표변에 가깝다.

 

인사 참사의 압권은 “문제가 없으니, (책임)조치도 없다”는 청와대의 독선이다. 집권 2년간 한 명의 지명 철회, 열 명 안팎의 주요 고위 공직자 후보가 낙마했어도 조국 수석은 건재하다. 검찰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가 청와대로 번지는데도 언론 탓, 야당 탓, 시스템 탓만 한다. 조국이 흔들릴 때마다 여당 의원들은 “촛불정권의 상징”이라며 엄호하기에 바쁘다. ‘조국표’ 개헌은 물건너갔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같은 검찰 개혁 운명은 국회로 넘어갔다. 그런데도 그를 ‘촛불’과 동일시하는 도그마에 빠져 있다. 대통령의 절대적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청와대 간담회에서 “촛불 정권이 촛불에 타 버릴 수 있다”고 했다는 한 시민단체 대표의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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