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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영화이야기] 그때 ‘알라딘’엔 있었고, 지금 ‘알라딘’엔 없는 것들

입력 : 2019-06-29 14:00:00 수정 : 2019-06-28 17: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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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 중인 영화 ‘알라딘’(감독 가이 리치, 2019)은 1992년 애니메이션 영화 ‘알라딘’(감독 존 머스커·론 클레멘츠)의 실사판 리메이크 작이다. 

 

이번 ‘알라딘’에서는 더 이상 로빈 윌리엄스의 ‘지니’ 목소리도 들을 수 없고, 알라딘과 쟈스민이 매직 카펫을 타고 ‘어 홀 뉴 월드’를 부르며 구경했던 곳들 중 피라미드, 스핑크스, 파르테논 신전, 자금성 등도 볼 수 없다. 

 

27년이라는 시간 차이와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라는 차이 덕분에 두 영화는 닮은 듯 매우 다른 모습을 갖게 됐다. 둘 다 디즈니가 제작했고, 기본 스토리와 주연 캐릭터, 음악 등 상당 부분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달라진 부분도 여럿 눈에 띈다. 

 

오늘은 1992년 ‘알라딘’과 2019년 ‘알라딘’을 비교해볼까 한다. 1992년 ‘알라딘’은 개봉 당시 인종차별, 성차별 논란에 휩싸였는데, 특히 관련된 변화들이 눈에 띈다.  

 

우선 1992년 ‘알라딘’ 속 아그라바는 좀 무시무시한 공간이었다. 

 

첫 장면부터 으스스했는데, 붉은 화염 속에 자주 빛 연기가 피어오르며 영화 제목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어지는 주황빛의 광활한 밤 사막 장면에서는 낙타를 타고 가는 한 남자가 ‘끝없이 펼쳐진 뜨거운 사막은 펄펄 끓는 가마솥 같지만, 재미난 아라비안 나이트를 한번 겪어보라!’고 노래한다. 

 

사실 이 노래 ‘아라비안 나이트’의 가사는 원래 ‘얼굴이 마음에 안 들면 귀를 잘라버리는 잔혹한 곳이지만, 여기가 우리 집이야’ 식이었다. 인종차별 논란이 커지자, 비디오 출시 버전에서 가사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아그라바는 첫 등장부터 공포가 신비로움으로 포장됐다. 

 

영화 ‘알라딘’(감독 가이 리치, 2019) 속 알라딘(왼쪽)과 지니.

 

게다가 알라딘이 첫 등장하는 아그라바의 뒷골목과 시장골목은 온통 기인 천지였다. 피리를 불어 호리병에서 뱀을 나오게 하는 사람은 당연히 있었고, 공중부양 중인 사람도, 입에다 긴 칼을 넣다 빼는 사람도 있었다. 

 

빵을 훔쳐 도망가는 알라딘을 긴 칼을 휘두르며 쫒아가는 경찰들의 노래 가사도 심상치 않았다. ‘도둑은 잡아서 손목을 잡아버려야 한다.’는 식의 가사 역시 아랍에 대한 서구의 편견이 그대로 담긴 전형적인 표현들이었다. 

 

반면 2019년 ‘알라딘’ 속 아그라바는 좀 더 웅장해졌지만 더 이상 음침하고 무시무시한 공간이 아니다. 바닷가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곳으로 묘사되고, 골목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 역시 기인이나 차력사들이 아니다. 아그라바를 묘사하고, 좀도둑 알라딘을 공격하는 노래 가사들에서도 인종차별적 시선은 사라졌다. 

 

영화 ‘알라딘’(감독 가이 리치, 2019) 속 쟈스민 공주.

 

아그라바라는 공간과 사람들에 이어 주인공들도 바뀌었다. 다들 좀 더 인간다워졌다.  

 

쟈스민 공주(사진)의 변화가 가장 컸다. 알라딘과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한다는 용감함은 변함이 없지만, 세상물정도 모르고,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할 방법도 모르던 철부지가 더 이상 아니다. 쟈스민은 왕이 되고픈 야망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논리적이고 주체적인 인물로서 리더의 자질도 확보했다.

 

알라딘도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쟈스민도 구하고, 나라도 구하는 만능 알라딘이었다면 이번엔 좀 더 인간적인 모습을 장착했다. 알라딘은 더 이상 생각과 행동이 모두 곧지만, 돈만 없던 알라딘이 아니다. 자스민 앞에서 마냥 자신감에 넘치지 않고, 선택의 상황에서 고민도 더 많이 한다. 

 

알라딘이 자스민과 세트로 구해야했던 왕도 좀 더 왕다워졌고, 마냥 전형적인 아랍 악마 같았던 자파도 외모로 보나 행동으로 보나 현실적인 인간으로 표현됐다. 지니도 인간다워졌다. 실사영화의 특성과도 연관이 있겠지만, 예전 ‘알라딘’에서 화려한 현대판 의상들을 수없이 갈아입으며 노래하면서 ‘지나치게 미국화’되었다고 비판받았던 그 모습은 사라졌다.

 

‘알라딘’(감독 가이 리치, 2019) 속 자파.

 

영화 전체적으로 더 밝아졌고, 색감도 진분홍과 초록 등의 색감을 기반으로 해 더 화려해졌다. 사람 사는 곳처럼 묘사된 아그라바라는 공간에서 입체적인 성격이 부여된 인물들이 더 밝고 화려한 색감으로 표현되면서, 이번 ‘알라딘’은 흥이 넘쳐흐르는 유쾌한 영화로 변모되었다.  

 

또한 “램프에 얽힌 이야기를 해줄게”로 시작됐던 영화가 “내 얘기를 해줄게”로 바뀌면서 관객들의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생생한 이야기를 기대하게 되는 거니까.    

 

영화만 변했겠는가. 27년이 흐르면서 세상도 변했고, 사람들도 변했다. 그에 따라 영화도 당연히 변해왔고, 새 ‘알라딘’ 속 공간과 사람들이 예전 보다 덜 함부로 다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전히 온갖 차별이 존재하는 세상이지만, 영화로 나마 변화를 느낄 수 있었기에 더 유쾌했다. 

 

개봉 당시 ‘알라딘’과 쌍벽을 이루며 흥행과 동시에 논란을 일으켰던 ‘라이온 킹’도 올 여름 실사영화가 개봉 예정이다. 어떤 변화를 발견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서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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