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부가 어제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고·국제고 등 특수목적고를 2025년에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내용의 ‘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을 발표했다. 설립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상대적으로 학생 수가 적은 과학고·영재고는 존치된다. 대신 일반고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고교학점제 선도지구 운영, 학생 맞춤형 교육 등에 5년간 2조2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잦은 입시제도·고교체제 개편으로 학생과 학부모들은 혼란스럽다.
교육부는 자사고 등을 단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입시부정 의혹’ 사태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정시 확대를 지시하자 일괄전환 방침으로 급선회했다.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은 졸속 행정이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현재 고교가 일류·이류로 서열화돼 위화감 등 문제가 있다는 국민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였다”고 했다. 근거로는 “여론조사에서 자사고·외고 폐지 찬성이 50% 넘게 나왔다”는 점을 들었다. 일관성·안정성이 중요한 교육정책이 대통령 말 한마디와 여론에 휘둘리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교육 표퓰리즘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의 실행이 차기 정부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대통령령)을 고쳐서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없애겠다고 한다. 시행령은 국회 논의 절차 없이 정부가 단독으로 고칠 수 있다. 대통령이 바뀌면 시행령은 또다시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2022년에 들어설 차기 정부가 내세울 교육정책에 따라 자사고 등의 일반고 전환이 무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교육이 정파적 이익에 휘둘릴 위험성이 커지는 것이다.
자사고 등을 폐지한다고 해서 입시 위주의 고교 교육이 달라질지 의문이다. 인재 양성이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평등주의 교육은 시대착오적이다. 하향 평준화만 부를 뿐이다. 자원이라곤 두뇌밖에 없는 나라에서 수월성 교육을 가로막으면 무슨 수로 인재를 길러낼 것인가. 정권 입맛에 따라 백년대계가 흔들려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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