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보험 가입률이 낮은 상황에서 임씨는 극히 드문 사례다. 최근 보험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업계는 젊은 층을 공략하고 펫보험 등 새로운 보험을 출시하는 등 고군분투하고 있다. 반면 불의의 사고나 병을 얻어 보험의 중요성을 직접 경험한 이들은 여러 보험을 중복 가입하고 지인들에게도 열정적으로 가입을 권한다.
비 오는 날에 대비한 우산인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파고든 상술인가.
보험이 만들어진 이후 거듭된 논란이다.
29일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처음 선보여 6·25전쟁 이후 급속히 성장한 국내 보험 시장 규모는 2017년 수입보험료 기준으로 세계 7위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입보험료 비율은 약 11.6%로, 세계 5위, 1인당 수입보험료는 약 3500달러로 세계 14위 수준이다. 최근에는 저금리에 젊은 세대의 외면 등 구조적 문제로 비상국면을 맞고 있다. 판매채널과 트렌드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는 발 빠른 혁신이 필요한 시기다.

◆보험의 뿌리는 5000년 전으로
인류 역사상 보험의 기원은 기원전 3000년 바빌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배를 통해 물품을 운송하던 상인들은 전복, 좌초 등의 사고로 물품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에 상인들은 선박이나 적자화물을 담보로 한 ‘모험대차’ 계약을 했다. 지금의 상식으로 보면 조금 기이한 계약이다. 상인은 운송 도중 물품이 없어지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자신 소유의 배를 비롯해 전 재산, 심지어 가족까지 담보로 걸었다. 모험대차 계약을 한 상인의 배가 풍랑에 전복될 시 상인은 한순간에 가진 것 하나 없이 거리로 나앉는 신세였다.
1666년 영국에서 ‘런던 대화재’가 발생한다. 일요일 새벽 한 빵집에서 시작한 불은 수요일까지 4일간 런던 시내 주요 건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당시 런던 주민 8만명 중 7만명이 살던 주택이 파괴됐다. 사실상 런던 자체가 초토화했다. 의사이자 건축업자이던 니컬러스 바본은 화재 1년 뒤인 1667년 화재보험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화재보험 판매가 시작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은 1699년, 영국에 머서즈 컴퍼니라는 생명보험사가 나타난다. 머서즈 컴퍼니는 남편이 아내보다 먼저 죽으면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형태의 보험을 팔았다. 가입 대상은 60세 이하 남성으로 50파운드에서 300파운드 이내 금액을 일시불로 납입할 수 있었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100만∼6700만원이다. 남편이 먼저 사망하면 아내는 남편이 납입한 금액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을 평생 받고 아내가 먼저 숨질 경우 보험금은 없다. 처음 보험을 설계할 때 회사는 남편이 먼저 죽을 확률과 아내가 먼저 죽을 확률이 반반이라고 가정했지만 보험을 팔고 보니 아내가 먼저 죽은 사례는 20%에 그쳤다.
제대로 된 생명보험사는 18세기가 돼서야 등장한다. 1764년 영국에서 에쿼터블 생명보험이 설립됐는데 에쿼터블 생명보험은 생명표를 토대로 연령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산출했다. 이는 과학적이고 통계적인 보험 운영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돼 근대적 생명보험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보험 상륙
한반도에서 근대적 의미의 보험이 탄생한 건 구한말 때다. 1891년 일본의 제국생명이 부산에 대리점을 두면서 보험업이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21년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보험사 ‘조선생명보험주식회사’가 탄생한다. 조선생명은 양로보험, 결혼보험 등을 판매했지만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제대로 실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다 1962년 보험업법이 마련되면서 조선생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보험사는 메리츠화재로 꼽힌다. 1922년 설립된 조선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가 전신이다. 조선화재는 1950년 ‘동양화재’로 상호를 바꿨고 2005년 현재 이름인 메리츠화재로 이어졌다. 1970년대 경제성장기에는 단기 저축보험, 교육보험 등 개인보험이 활성화했다. 보험업은 1990년대 후반 경제위기를 겪기 전까지 저축수단으로 여겨지면서 비약적 성장을 이뤘다. 경제위기 이후 새로운 보험 상품이 속속 출시됐다. 변액보험, 치명적질병(CI)보험, 종신보험, 퇴직연금 등이 대표적이다. 사회 변화에 맞춰 지속적으로 변신을 거듭한 결과, 국내 보험시장은 세계 7위 규모의 ‘빅마켓’이 됐다.

최근 보험산업은 장기 침체기를 겪고 있다. 세계적으로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자산운용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잠재적 보험가입자인 2030세대가 보험을 외면하면서 새 고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생명보험사들은 과거 팔았던 확정형 고금리 상품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1%대 저금리가 올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팔았던 고금리 상품들이 부메랑이 됐다. 손해보험사들은 자동차보험과 실손의료보험의 손해율이 치솟으면서 다른 부문에서 난 이익금으로 이 두 보험의 적자를 메우는 실정이다.
수입보험료에서 보험금과 사업비를 뺀 것으로, 보험사 수익성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인 보험영업 현금흐름은 올 1분기 427억원 적자로 나타났다. 2015년 34조6000억원, 2016년 32조6000억원, 2017년 19조2000억원, 2018년 9조7000억원으로 현금흐름이 계속 줄고 있다. 손해보험사도 올 1분기 6000억원 적자를 나타냈다. 원수보험료 증가율이 둔화세를 보이고 있지만 손해액과 사업비가 증가하면서 수익성이 악화한 것이다.

◆보험사들의 살아남기 경쟁
보험사들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어른이(어른+어린이) 보험, 온디맨드(On-demand) 보험 등 2030세대 맞춤형 보험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어른이 보험은 일반 보험 상품과 비교했을 때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보장성도 높은 편이다. 보험사 입장에서 어른이 보험은 포화된 보험 시장 속에서 2030세대 고객을 아우를 수 있는 묘책 중 하나다. 고객 수요에 맞춰 맞춤형으로 제작되는 온디맨드 보험도 2030세대에게 큰 인기다. 온디맨드 형태의 대표적 보험으로는 온·오프 여행자보험을 들 수 있다. 한 번만 인증해 놓으면 여행 때마다 별도 절차 없이 기간 설정과 보험료 결제만으로 가입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판매채널 변화는 보험업계에서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변화다. 전통적으로 보험 판매채널은 회사에 소속돼 있는 설계사였다. 지금은 독립보험대리점(GA)이 세를 키우면서 특정 회사가 아닌 여러 회사의 상품을 판매하는 GA 중심의 판매채널이 공고해진 상태다. 판매채널이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송금업체 토스에서 보험을 가입하는 등의 모습이 일례다.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보험업이 미래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층 더 빨라진 시대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보험가입이 간편해지면서 생활밀착형 보험, 헬스케어 보험 등의 수요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보험 등 생활밀착형 보험이나 단기 보험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생활밀착형 보험이 세를 키울 것”이라고 봤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