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에서 중국인 관광객 등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진 환자로 속속 진단돼 방역 당국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혐중 정서도 확산 중이라고 외신이 전했다.
중국인에 대한 혐오인 시노 포비아(Sino-phobia)를 넘어 비슷한 외모의 아시아인 전체를 대상으로 한 아시아 포비아(Asia-phobia) 정서가 세를 얻고 있다는 전언이다.
프랑스 매체 CNEWS가 지난 29일(이하 현지 시각) 보도한 바에 따르면 현지 트위터에선 ‘#JeNeSuisPasUnVirus‘(저는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해시태그 운동이 진행 중인 가운데 자신을 인종 차별의 피해자라고 주장한 이들도 속속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저는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 자신에 대한 프랑스인의 모욕과 공격을 공론화하고 있다는 게 이 매체의 전언이다.
BBC 코리아도 31일 프랑스에서 해시태그 운동에 동참한 이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전했다.
캐스 트란은 영국 공영방송 BBC에 전날 일터로 가던 중 두 남성으로부터 “조심해, 중국 여자애가 우리 쪽으로 오고 있어”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캐시는 “인종 차별에 대해 말하는 아시아인은 흔하지 않다”며 “우린 고통 받고 있다고 알려졌으나 지금은 정도가 너무 심하다”고 밝혔다.
프랑스 내 혐중 정서는 중국인을 넘어서 아시아계 전체로 번졌다는 게 BBC의 전언이다.
베트남 및 캄보디아계인 샤나 챙은 프랑스 수도 파리의 시내 버스에서 “저 중국 여자가 우리를 오염시킬 것”이라며 “자기 나라로 가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프랑스에 체류 중인 한국인도 혐중 정서의 타깃이 됐다고 한다.
이날 한겨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프랑스 현지 누리꾼의 글을 인용해 실상을 보도했다.
이 누리꾼은 “어느 중년 할아버지로부터 ‘저 더러운 X’ 소리를 들었다”며 ”고교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은 ‘꺼져’라고 대놓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심지어 길 가던 어느 노숙자가 저 보고 ‘XX’라는 원색적인 욕설을 해 울컥했다”며 “한국인이라고 하는데도 일단 아시아인들은 ‘다 꺼지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우려했던 일이긴 한데 실제로 당해보니 혐오의 무게가 굉장히 두렵다”며 ”사람 많은 곳은 가기가 두렵다”고 털어놨다.

혐중 정서 확산에는 현지 언론도 가담했다.
프랑스의 지역신문인 르 쿠리에 피카르(Le Curier Picard·사진)는 지난 25일 발행한 1면 헤드라인에 ‘누런둥이 주의’(Alerte Jaune)라는 문구를 넣고, 이와 함께 마스크를 쓴 중국인 여성의 사진을 실어 전체 아시아인의 분노를 샀다.
이 기사로 인종 차별 논란이 일자 이 신문은 바로 사과하고 “아시아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보여 줄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파리에 사는 최모(27)씨는 이날 이데일리에 “최근 르몽드지에서 ‘동양인이 길에서 코를 풀고 있다고 신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봤다”며 “기사에 등장하는 내용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고 밝혔다.
르몽드지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일간지 중 하나다.

이 같은 인종 차별에 ‘저는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캠페인이 확산하고 있음에도 프랑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 전체에 대한 원색적인 혐오가 들끓는 중이다.
프랑스의 한 누리꾼은 트위터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발병지로 지목된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의 화난 수산물 시장에서 판매된 것으로 보이는 박쥐 수프 사진을 공유한 뒤 “중국인들은 개를 먹는 것으로도 부족해 박쥐까지 먹는 거냐”고 비꼬았다.
이외에도 “만약 중국인들이 기침하는 소리를 들었다면, 그 중국인은 분명 최근 박쥐가 들어간 샐러드를 먹었을 것”, “내 중국인 친구가 ‘우리 집에선 먹고 자는데 어떤 문제도 없다’고 말한 다음날부터 나는 기침을 시작했다”, “중국인을 볼 때마다 기관총으로 갈겨 버리고 싶다” 등 극단적 언사를 담은 게시글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지난 30일 기준 프랑스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확진을 받은 이들은 모두 6명이다. 최초 확진자 2명은 중국 우한 출신 30대 남녀로 지난 18일 여행을 위해 프랑스에 입국했다.
보르도에 거주 중인 48세의 중국계 프랑스인은 중국에서 돌아오던 중 우한에 잠시 체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지난 28일엔 파리에서 80대 중국인 남성이, 이튿날엔 이 남성의 딸인 30대 여성이 확진자로 각각 판정됐다. 이들 부녀는 신종 코로나 바리어스 감염증이 기승을 부리는 중국 후베이성 출신으로 파리에 여행을 위해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장혜원 온라인 뉴스 기자 hoduj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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