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왕조시대는 정치독점시대였다. 왕족이 아니면 임금의 자리를 넘보지 못했다. 왕족 중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가 아닌 어리바리한 자는 감히 왕의 자리를 넘볼 수 없는 절대군주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에 백성은 왕조가 거느리는 관원들에 짓밟혀 권력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다.
그런 절대군주 시대에도 긴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자 왕이 음식을 줄이며 백성의 눈치를 보았다. 또 ‘절대권력자’ 왕이 즐겨먹던 고기반찬을 백성들에게 나눠주며 굶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왕조시대가 무너지고 사회가 급변해 임금이 아닌 국민이 투표로 뽑은 대통령이나 총리가 지배하는 국가가 탄생했다.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일본식민지에서 독립했다. 1948년 8월 15일에는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중시한 민주공화국이 수립됐다. 헌법에 국민주권주의, 자유민주주의, 복지국가원리, 국제평화주의를 기본원리로 하는 대통령 중심제 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국정을 수행하도록 권한을 위임했다.
대통령은 절대권력자가 아닌 국민이 위임한 권한만 행사하는 위탁관리자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보면 대통령은 때때로 왕조시대 절대권력자보다도 더한 권력 행세를 하려고 했다. 일부 대통령은 국민의 아픔을 보지도, 하늘을 찌르는 원성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오직 ‘마이웨이’를 걷기도 했다. 그러다 쫓겨 난 세계 지도자가 많다.
국민에게 축출당한 지도자들은 너 나 없이 충신 같지 않은 충신들 틈에 끼어 허구한 날 눈만 껌벅였다. 그 모습이 마치 재주 부리는 곰과 같았고, 동물원에 갇힌 앵무새와 같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공작처럼 화려한 깃털을 휘날리며 보낸 나날이 찰나인 줄도 몰랐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요즘 국내외 지도자들은 코로나19 사태 대응에 동분서주하며 리더십을 평가받고 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바이러스 사태를 비관적으로 보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감추지 않고 전달해 국민적 신뢰도를 높였다. “독일 인구의 3분의 2가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고 현 상황에서 정부가 모든 걸 할 수 없다. 각자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제 시작” “우리는 전쟁 중”이라며 수차례 시민에게 각성을 촉구했다. 존슨 영국 총리는 “호들갑 떨지 말고 견디자. 영화관 가지 말자”고 호소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속하고 적극적인 검사와 진단, 확진자 동선 추적 등을 관계 부처에 지시했고 코로나19 상황은 호전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우리나라를 방역 모범국가로 꼽고 있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코로나 사태의 심각성을 오판하고 느슨하게 대응했다가 큰 화를 불렀다. 두 나라는 코로나 사태 내내 소극적 대응을 했다가 팬데믹의 중심지가 됐다. 독선으로 일관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는 사태가 악화하자 허둥대는 모양새다.
사람이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해도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과 의견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 위정자들은 그런 점이 부족하다. 위정자들은 항상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왕조시대 임금보다도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자유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들답게 귀를 열고 눈을 크게 뜨고 국민의 아픔을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가뭄에 가슴 아파했던 임금이 고기반찬을 백성에게 나눠주며 고통을 함께하는 그런 모습을 말이다.
한정규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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